척박한 절해고도의 섬에서 생명을 키워낸 모든 제주인의 어머니 '제주해녀'. 한때는 천시받는 직업으로 취급 받았지만, 그녀들의 고된 노동과 희생이 있었기에 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제주해녀의 소중한 가치를 전 세계가 인정하는 날이 왔다. 인류가 공감할 만한 위대한 문화유산의 하나로 '제주해녀문화'가 선정됐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사무국은 1일 오전 12시 25분(국내기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제11차 무형문화유산 보호 정부간위원회를 열고 '제주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Women Divers)'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교육, 과학, 문화 등 지적 활동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추진하는 유엔전문기구 '유네스코'는 산업화와 지구화 과정에서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2001년부터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지정·등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104개국에 있는 336개 유산이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대해 '전통 문화인 동시에 살아있는 문화'라고 규정한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하고 ▲인간과 주변 환경, 자연의 교류, 역사 변천 과정에서 공동체와 집단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하며 ▲공동체·집단에 정체성과 지속성 부여하고 ▲문화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을 증진하며 ▲공동체간 상호 존중·지속가능발전에 부합하는 특징을 지닌다.
즉, 전 인류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문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종묘 및 종묘제례악(2001년), 줄다리기(2015년) 등 모두 18개가 등재됐다. 2009년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이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등재 사례는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제주해녀문화를 포함해 강릉단오제, 종묘제례, 한산 모시짜기 정도에 불과하다.
제주는 칠머리당영등굿에 이어 이번 제주해녀문화까지 두 개를 등재 목록에 올리면서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제주 로컬리즘(localism)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제주해녀문화는 여성이 주체가 되면서 더욱 의미가 크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제주해녀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보전될까?
유네스코는 정부 차원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보호장려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보호장려책은 무형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 줄 장인(匠人)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춘다. 국내의 경우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중요무형문화재 장인들을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제주해녀 역시 문화재보호법 범위 안에서 해녀 전승 활동을 지원하도록 검토될 전망이다. 다만 그 대상이 다수인 점을 고려해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2012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의 경우, 전 국민이 부르는 노래인 만큼 아리랑 관련 축제·행사·공연을 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제주해녀문화 역시 도민과 국민들에게 선보이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제주해녀 활동이 계속 유지돼야 인류무형문화유산도 유지되는 것인 만큼 지원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내년 무형문화재, 무형문화유산 예산으로 9억원을 책정했다. 제주해녀문화를 포함한 19개 무형문화유산 관련 예산이 여기에 포함된다. 9억원을 어떻게 사용할 지는 국립무형유산원이 결정한다.
제주도는 가칭, '제주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중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계획의 큰 방향만 정해진 상태인데 ▲해녀 자긍심 제고 방안 마련 ▲국가문화제 등재 추진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추진 ▲다양한 사업·지원 등이 제시됐다.
이 가운데 해녀 자긍심 제고 방안으로 제주해녀의 날 지정, 유네스코 등재 백서 발간, 등재 기념 동판 제작·배포 등이 제시됐으며, 사업·지원은 연구·조사, 해녀학교 체계적 지원, 생업 지원 확대 등이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유네스코 등재로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해녀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중장기 전승·보전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제주해녀 연구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안미정 연구교수(한국해양대)는 "제주해녀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그동안 우리가 저평가해온 제주해녀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이자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다. 도민사회 인식이 바뀌고 해녀를 생업으로 할 수 있는 여건과 해양자원 복원 같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해녀는 이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 연구교수는 "제주해녀를 할머니, 어머니 세대들이 하던 일로만 인식해서도 안된다. 젊은 해녀도 등장하고 투잡으로서 해녀도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해녀를 할 수 있는 세대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런 인식에서 해녀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동일한 지원정책은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불어 나이 많은 해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그 분들은 생태지식은 많은데 환경자원 보존 지식은 비교적 부족하다"고 밝혔다.
10년 넘게 우도에 거주하면서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해온 이성은 작가는 "일본 해녀들이 모이는 아마(일본 해녀) 축제에서는 일본 전역에 있는 해녀들이 모여서 일종의 정상회담 같은 자리를 연다. 바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환경 변화에 따라 해녀의 역할은 무엇인지 논의한다. 전문가, 행정, 어촌계 같은 관계자들도 참여해 제시된 의견을 반영한다"며 제주에도 보다 생산적인 해녀행사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 작가는 "해녀 연구를 위한 지원도 늘어나야 하고, 연령대 별 해녀 교육도 필요하다.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걸맞게 제대로 존중받는 교육, 복지정책, 의료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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