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오는 22일부터 총파업에 나섭니다. 금융, 은행 노동자, 철도, 지하철 노동자,건강보험, 국민연금, 가스공사 노동자, 공공병원, 보건, 의료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섭니다. 정부는 공공 기관과 공기업을 '개혁'하겠다며 성과주의를 들이 밀었습니다. 또한 공공 분야가 비효율적이라며, 국민을 상대로 이윤을 추구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또 비정규직 수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노동 시장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맥'이 닿아 있습니다. 퍼즐은 맞춰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14일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에너지 분야 공공기관 중) 민간이 더 잘 할 수 있는 부문은 민간으로 이양하고(…) 더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는 기능은 과감하게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공공 부문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MB의 '민영화 밑그림', 박근혜가 '화룡점정')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프레시안>은 가스 판매 민간 개방(민영화) 기점으로 정부가 설정한 2025년의 어느날 풍경을 '민영화 씨'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다뤄보았습니다. 물론 픽션입니다. 아니 픽션이면 좋겠습니다.(편집자)
2025년, 38살 민영화 씨의 추석 풍경
코리아철도주식회사 입사 10년차인 38세 민영화 씨, 그리고 동갑내기로 육아휴직 중인 사유화 씨. 자녀는 둘이다. 큰 아이는 3살, 둘째는 엄마 사유화 씨의 뱃속에 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민영화 씨는 전경남도 부광시 고향을 찾기로 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하지만 매년 이맘때면 민영화 씨는 묘한 심경에 빠져들곤 한다. 2016년 최악의 더위를 갱신한 2025년 여름은 워낙 유별났지만, 고향을 향하는 그의 마음엔 이른 추위가 들이닥쳤다.
민영화 씨가 다니는 코리아철도주식회사 주식 절반은 정부와 정부 유관기관이 보유 중이다. 사실상 민영철도인데, 정부는 민영철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적용을 받고 있다. 성과연봉제 도입 이후 민영화 씨는 가계부 쓰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왔다. 매년 소비 지출 구조가 불규칙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성과만 내면 연봉이 올라간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는데, 문제는 그 성과라는 게 안 난다는 데 있었다. 돈 안되는 공공 분야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국내 굴지의 삼숭그룹처럼 성과까지 내라니. 결국 국민을 상대로 이윤을 뽑아내라는 말인가.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몇 가지 없었다. 돈 안되는 노선을 줄이거나 팔아 치우고,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자 '정도'로 통했다. 마침 정부와 의회가 개정한 노동법은 하청과 파견을 대규모로 허용해줬다.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민영화 씨는 열차 정비 하청업체를 관리감독하는 부서에 배치돼 있는데, 간혹 직접 정비를 나가기도 한다. 무슨 기술이 있느냐고 하는데, 그냥 현장에서 배우면 된다. 비정비 인력도 정비하는 게 가능하도록 회사가 허가(라고 쓰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만약 하청업체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민영화 씨가 장비를 들고, 컵라면 하나 쯤 들고 직접 선로에 나가야 한다.
민영화 씨의 올해 추석 보너스는 지난해에 비해 100% 깎였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드릴 용돈 액수도 함께 줄어들 것이다. 주변에 돌리던 선물도 올해는 포기했다. 고향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부모님은 어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참외 값이 폭락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살 사람이 없는데도 참외를 내놓으니 당연히 값은 떨어진다. 부모님 주머니도 가벼워질 수밖에. 참외 팔아 사던 조기 한두름도 올해는 포기해야 하니, 민영화 씨네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섬마을, 어촌의 한숨 소리도 높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영화 씨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철도 회사 직원인데도 회사 철도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방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민영화 씨는 수성역에서 출발하는 KTX 표를 끊을 수밖에 없다. 수성KTX 주식회사가 등장하면서 민영화 씨가 몸담은 코리아철도주식회사는 지금 망조가 들어가고 있다. 당연한 게, 초기 투자 비용도 없이 알짜 노선 운영권을 얻은 수성역 KTX가 흑자를 법으로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올해도 엄청난 적자...방만 경영은 여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한 신문의 1면에 깔리면 누군가는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한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팔아치운 공공 서비스 회사는 보조금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 꿀을 빨고 있다.
수성KTX주식회사가 흑자를 볼 수록, 민영화 씨가 내야 할 성과지수는 곤두박질 친다. 민영화 씨는 고등학교 때 배운 삼투압 현상을 떠올린다. 소금물에 담긴 오이처럼 코리아철도주식회사는 수분을 빨리면서 점점 쪼글쪼글해지고 있다.
경쟁사의 표를 구입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표 값은 왜 이렇게 오른 건가. 작년에 비해 20%가 올랐다. 왜 오르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성과' 때문인 것 같다. 성과는 곧 이윤이니까. 이윤을 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격을 올리면 된다. 공공 서비스를 포기하면 된다. 정부는 경쟁 체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그들의 요금 인상을 봐준다. 하긴 민영회사의 요금을 누가 통제한단 말인가. 예전에는 고향에 내려가면 기차 타고 인근 도시에 사는 친척들을 만나러 다녔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돈 안되는 노선은 사라졌고, 돈 되는 노선은 요금이 올랐다.
현관 문이 열렸다. 사유화 씨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길이다. 사유화 씨는 민영화 씨 앞에 봉투 꾸러미를 툭 던졌다. 전기요금 고지서다. 민영화 씨는 올해 초부터 SKY그룹이 내놓은 인터넷, 통신요금, 전기요금 결합 상품인 '해피해피 하나로 행복 요금제'를 쓰고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지서를 들췄다. 심플한 누진제, 싼 기본요금, 인터넷 및 전화 요금과 연동성 강화 등을 따져보고 가입을 했는데, 올 여름처럼 유난히 더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게 민영화 씨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누진 기준 구간을 넘어서자 SKY사는 엄청난 요금 폭탄을 투하했다. 민영화 씨는 올 겨울 가스비가 벌써 걱정되기 시작한다. 주식회사 퍼스코와 SKY그룹은 2025년부터 가스 판매 허가를 받아 경쟁적으로 가스 관련 상품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TV에서는 벌써부터 '가스비 이제 걱정 뚝, 가스는 역시 가정용 퍼스코 가스'라는 광고가 흘러나온다. 전기 민영화 당시에도 그랬다. 그 때는 정말 전기요금 걱정이 사라질 줄 알았었다.
사유화 씨는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렇게 힘들었다. 민영화 씨와 상의해, 둘 중 임금이 낮은 사유화 씨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회사가 사유화 씨의 두 번째 임신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긴 했다. 사람값이 떨어져 가는 상황을 견디기도 어려웠다. 사유화 씨는 환자 급식 담당 영양사였는데, 최근 현두그룹이 운영하는 병원은 급식을 외주화했다. 사유화 씨는 그대로 있는데, 소속된 회사 이름이 바뀌었다. 임금 체제도 바뀌었다. 환자 급식에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여튼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환자 급식은 파견업체의 몫이 돼 버렸다.
사유화 씨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민영화 씨에게 조심스레 입을 뗐다. "우리 사랑이(첫째 아이) 앞으로 가입해 둔 거, '아이 안심 질병관리 토탈케어'에서 연락이 왔는데, 사랑이가 아토피에 판정을 받게 될 확률이 도무지 줄어들지가 않는대. 추가 예방 영양제를 공급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돈 들어갈 일 투성이야." 민영화 씨도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랑 장인, 장모님도 그거 하나 들어주기로 했잖아. 요새 어르신들 다 한다는데, 건강보험 데이터 분석해서 암 확률 계산해주고, 예방부터 건강 관리까지 케어해주는 상품, 추석 선물로 해드리기로 했잖아. 이래 저래 걸리지도 않은 병에 병원비 지출이 늘고 있어서 큰일이야. 가계부 쓰는 것도 이제 두렵다고."
두 상품 모두 최근 현두그룹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내놓은 것들이다. 정부가 국민건강 빅데이터를 병원에 제공키로 하면서 대기업 병원들은 연일 새로운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정치 방송만 온종일 틀어대는 종편은 의료 상품 광고로 먹고 사는 것 같았다. 마치 예전에 케이블 방송업계를 휩쓸었던 '사채 광고'나 '보험 광고'를 보는 듯 했다.
빅데이터가 일반 기업에 제공되면 '신산업'의 블루오션이 열리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제도 좋아진다고 했다. 인간은 이제 이미 발생한 일이 아니라, 발생하게 될 일, 혹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발생할 수도 있는 일에 돈을 쓴다. 쓸 돈은 줄어들고 있는데, 걸리지도 않은 병을 치료하게 생겨버렸다. 남들 다 한다니까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돈은 누가 벌지? 최근 삼숭그룹이 운영하는 병원의 주가가 엄청나게 치솟고 있다는 얘길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민영화 씨는 내일 새벽 출근이라 일찍 자야 한다. 특별한 근무가 기다리고 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벌이는 이른바 '철도 총력 서비스 지원의 날' 행사다. 양복을 차려입고 '고객님이 하라면 하겠습니다'라는 띠를 두르고 개찰구에 일렬로 서서 집단 인사를 해야 한다. 지난해 같은 행사에서는 회사 고위 관계자가 민영화 씨의 서비스 태도를 못마땅해하면서 그의 소속과 이름을 적어갔었다. 그리고 민영화 씨는 서비스 점수 항목에서 낙제를 기록, 성과연봉제에 따라 임금을 반납해야 했다. 올해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민영화 씨는 용산역 댄싱팀에 배정을 받았다.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기획 아래, 개찰구 한 쪽에서 직원들이 각종 춤을 추는 것인데, 민영화 씨는 뽀로로 인형탈을 쓰기로 결정이 됐다.
안 그래도 철도종합인력이라는 용역회사가 새로 생겼는데, 잘못하면 하청 업체 관리직마저 용역을 줄 수도 있겠다는 소문이 회사에 돌고 있었다. 하청을 하청받아 관리하는 세상이다. 조금 더 지나면 하청을 관리하는 하청 업체 관리까지 하청을 줄 지도 모를 일이다. 인력을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를테면 최근 코리아철도주식회사는 철도 직원들을 위해 특화된 영어인증시험을 수십억 원을 들여 개발했다. 이 인증제를 통과하지 못하면 곧바로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 연봉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민영화 씨는 일찍 자야 하지만, '세계로 나가는 철도 영어'라는 회사가 발행한 책을 기어코 펼쳐 들었다. 한장 한장 침을 발라 넘겼다.
글로벌 철도를 표방하며 서울역에 일렬로 늘어서 큰 목소리로 "웰컴 투 코리아레일, 땡큐 베리 머치"를 외치는 선진 철도 직원을 꿈꾸는 민영화 씨의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있다. 다음 추석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아마도 그때 쯤엔 몸담는 회사 이름이 바뀔 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박흥수 철도기관사가 2009년 <서울기관차 노보>에 기고한 픽션 '본격 실명 구라 손재홍'을 필자의 허가를 받아 기자가 다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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