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대표는 29일 오전 국회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라며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며 "국민의당은 초심을 잃지 않겠다. 저와 국민의당은 앞으로 더 열심히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고 했다.
천정배 공동대표도 "저희 두 사람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고 대표직을 사퇴한다"며 "그동안 성원해 주신 국민·당원동지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천 대표는 "앞으로도 우리 당과 정권 교체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두 대표의 사퇴 회견 직후 기자 간담회를 열어 "어제와 오늘, 저 개인적으로나 의원들, 최고위원들 거의 전원이 만류했지만 결국 '책임 정치'의 모습을 위해 두 대표가 사퇴했다"면서 "그러나 두 분 공동대표는 앞으로도 당의 발전과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기로 약속했고, 또 소중한 우리 당의 잠재적 대통령 후보들이기 때문에 누가 당을 이끌건 주요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의혹 관련자 3인(박선숙·김수민 의원, 왕주현 사무부총장)에 대한 처리 문제와는 별개로, 두 대표의 동반 사퇴로 정치적 책임 문제를 감당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국민의당은 의혹 관련자 3인에 대해서는 전날 의원총회를 통해 '사법처리 결과를 보고 당헌·당규에 따라 징계한다'고 결정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무관용·엄격·단호" 강조했으나, 조치 시기는 "사법 판단 결과 따라")
박 원내대표는 간담회에서 박·김 의원에 대해 추가로 탈당 권유 등의 조치를 할 가능성에 대해 "이미 어제 다 얘기했다. 그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잘랐다.
박지원 "'안철수 당'이기 때문에 더 혹독한 조치"…부메랑 맞은 安
박 원내대표는 두 대표가 사퇴에 이르게 된 경과에 대해 "(처음) 문제가 발생했을 때부터 안 대표는 3인에 대해 출당·제명 조치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제가 말렸다"며 "그러나 국민 정서와 요구는 '안철수 당'이기 때문에 더 혹독한 조치를 원했고, 우리는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기 때문에 저도 (여론 악화 후) 출당·제명에 동조했다"고 했다.
그는 "수 차례 최고위·의총을 열어 논의했지만, 결론적으로 의원들과 최고위원들은 '원칙대로 가자'는 것을 채택했다"며 "(이에) 안 대표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책임을, 사퇴로 이어지는 것을 말했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안 대표는 어제부터 그런(사퇴) 얘기를 했고, 어제 상경한 천 대표와 오늘 아침에 만났다. 천 대표도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면 사퇴해야 한다. 더 이상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고 해서, 다시 한 번 최고위원들이 모여서 읍소하듯 설득했지만 두 대표의 결단을 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안 대표 본인이 주장해온 바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평이 많다. 안 대표는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새 정치'를 내세웠고, 비리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그 '새 정치'의 핵심처럼 내세웠다.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대약진한 것도, 이런 선전이 유권자들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박 원내대표가 "안철수 당이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은 이 지점을 상기시킨다.
특히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진 이후 국민의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김경록 대변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받았다"(안 대표)며 초반에는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여론 악화에 직면해서야 이상돈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 조사단을 꾸렸다. 진상 조사단에서도 '당으로 유입된 돈은 없다'는 발표를 성급하게 내놓으면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당 지지율은 급락했고(☞관련 기사 :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속 지지율 폭락), 최근에는 텃밭인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지지율 역전을 허용하기도 했다. 리베이트 의혹 본건과는 별개로, 의혹에 대처하는 국민의당의 태도에 유권자들이 실망감을 느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당 향후 지도부 구성은?
박 원내대표는 향후 당 대표 공백 사태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해 "최고위원들에게 연락해서 가능하면 오늘 저녁이라도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비대위를 구성할지, (두 공동대표를 제외한) 그 지도부에서 대표 대행을 선출할지는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봐야 한다"며 "비대위 체제로 갈 것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고만 했다.
당 대표가 공석일 때에 대해 국민의당은 자체 규정으로 이렇게 정하고 있다.
국민의당 당헌 30조(당 대표의 임기)
①당 대표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
②당 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다음 각 호에 따른다.
1. 당 대표가 궐위된 날부터 2개월 이내에 임시전당대회를 개최해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한다. 다만, 궐위된 당 대표의 잔여 임기가 8개월 미만인 때에는 중앙위원회에서 당 대표만 선출한다.
2. 당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는 최고위원회에서 호선된 최고위원이 당 대표의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원내대표는 당 대표의 직무를 대행할 수 없다.
3. 제1호에 따라 선출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 임기로 한다.
이에 따르면, 박 원내대표와 김성식 정책위의장, 박주선·이상돈·박주현·이준서·한현택 최고위원 등 7명이 최고위원회 회의를 열어, 투표를 통해 최고위원 가운데 1명을 대표 직무대행으로 선출해야 한다.
박 원내대표는 30조 2항 2호 단서에 따라 대표 직무대행을 맡을 수 없다. 당헌 126조에 따라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비대위원장을 맡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 역시 원내대표가 당 대표를 대행할 수 없도록 굳이 제한 규정을 둔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국민의당 당헌 126조는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 상황의 해소를 위해 비대위를 둘 수 있다"고 정하고 있고,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쳐 임명한다"고 돼 있을 뿐 누가 맡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문제는 국민의당은 현재로서는 최고위 소집조차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몇 분 최고위원은 자기도 동반 사퇴하겠다'고 하고 있다"며 "내일 워크숍 후 긴급 의총을 열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당헌 30조에 따라 최고위원회 체제를 유지하면서 최고위원 가운데 1인이 대표 대행을 맡는 체제로 가기보다는 당헌 126조에 따라 비대위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다소 높은 것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최고위원 가운데 한현택 최고위원은 현직 기초단체장(대전 동구청장)이고, 이준서 최고위원은 청년 몫으로 지명된 데다가 본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현직 국회 부의장이다. 정책위의장이 당 대표 직무를 대행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지만, 원내대표의 당 대표 직무 대행을 금지한 취지에 비춰 보면 김성식 의장이 대행을 맡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남는 것은 이상돈 최고위원 정도인데, 그 역시 진상 조사단 단장을 맡는 등 이번 의혹 사태에 대해 완전히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김성식·이상돈·이준서 최고위원은 대표적인 '친안(安)'파다. 박 원내대표가 언급한 대로 '동반 사퇴'가 이뤄진다면 이들이 앞장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안 대표 외에 다른 누가 당의 간판을 맡더라도 정치적 중량감이나 파급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국민의당의 최대 고민거리다. 박 원내대표의 말처럼, 아직까지도 '안철수 당'으로 불리는 국민의당이다.
한편 박 원내대표는 두 대표의 사퇴로 조기 전당대회 개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아닌지 묻는 질문에 대해 "제가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도 "물리적으로, 지역위원장 일부를 선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당 체제 정비가 안 됐다"며 당장 전당대회를 열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헌 부칙상, 차기 전당대회 시기는 내년 2월 말로 정해져 있다.
그는 일각에서 당 소속인 정동영 의원이 비상 등판할 가능성이나,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을 영입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전혀 그런 논의가 없었다"며 "만약 비대위가 구성되면 비대위에서 논의할 문제"라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