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체육을 담당하던 대한체육회와 생활 체육을 내건 국민생활체육회가 3월 통합해 하나가 됐다. 체육 전문가, 경기인, 정책 당국은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 전환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한다. 해방 이후 체육 정책은 소수 정예의 엘리트 선수 발굴과 국제대회 입상을 통한 국가 홍보, 권력의 내부 통치 수단화 등에 활용됐다. 올림픽 메달 숫자는 국가 주도 체육의 계량화된 성과로 받아들여졌다.
올림픽 톱 10이 되면 대한민국의 위상도 세계 톱 10이라는 착시 효과를 불러왔다. 그러나 엘리트 스포츠의 폐해는 70년간 누적됐다. 한 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선수들이 희생됐다. 기계처럼 훈육돼 운동 외에 다른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간 엘리트 선수들을 국가는 책임지지 않았다. 21세기 부모들은 메달이나 대표 선수의 꿈에 올인하는 리스크를 더 이상 감내할 생각이 없다.
스포츠에서 개인적 가치를 찾고,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가 확산되면서 생활 체육 저변은 넓어지고 있다. 갈수록 엘리트 선수 충원이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생활 체육의 풍부한 토양에서 우수 선수가 나오는 선진국형 선순환 구조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여야의 합의와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입법에 따라 강력한 추진력을 얻어 탄생한 통합체육회는 한국 체육의 구조를 근원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평을 열었다. 지금까지 별개였던 두 단체가 벽을 허물고 대중의 스포츠 복지 확대와 전문 선수의 양성 등 영역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통합의 힘이 나오기까지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상층부의 외형적 통합은 이뤄졌지만, 양 단체 내부 구성원들의 화학적 결합은 없다. 하부 단위에서의 통합은 격렬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양 단체가 자율성을 갖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낸 통합이 아니라 정부가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면서 나온 부작용이다.
통합체육회는 시대적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해야 한다. 민간 스포츠 문화 단체의 생명력은 자율성과 창의성에서 나온다. 통합체육회 예산의 98%를 지원하는 정부는 통제권을 쥐려고 한다. 정권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아야'한다. 통합체육회도 재정 자립의 원대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선진국형 체육 문화로 가는 과정은 한 나라의 지적, 도덕적, 경제적 수준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 체육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관료의 책상이 아니라 현장의 선수, 행정가, 연구자 등 체육 전문가들로부터 나온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필자)
(☞원문 보기 : 통합체육회는 한국 체육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통합체육회, 왜 중요한가
1920년 일제 시대 때 조선체육회를 모태로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한체육회와 1991년 창립된 국민생활체육회(당시엔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일 대 일로 통합을 했지만 사실 동급은 아니다. 일제 때 해산됐다가 1945년 해방 이후 다시 구성된 대한체육회는 1948년 런던 올림픽을 비롯해 현재까지 각 올림픽에 선수를 파견해왔고, 대외적으로 한국 아마추어 체육의 간판 단체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엘리트 선수를 관리 육성하는 만큼 예산이나 행정 인력 면에서도 규모가 훨씬 크고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해방 이후의 정치 지도자들의 민족주의 성향과 압축 성장 시대의 체력은 국력이라는 기치에 영향을 받은 대한체육회는 소수 정예의 선수를 발굴해 키우는데, 최종적인 귀결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 입상으로 수렴돼 왔다. 흔한 예로 축구 대표 팀을 관리하는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해 대한농구협회, 대한야구협회 등 57개의 가맹 경기 단체가 대한체육회를 구성하고 있다.
학교는 엘리트 선수를 배출하는 산실 구실을 했다. 정부는 교육부와 교육청을 통해 초등학교 시절 재능 있는 자원을 학교 운동부로 끌어 모으는 등 교육 공간을 엘리트 선수 육성 기지로 삼았다. 정부는 또 행정력을 발휘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지방체육회 회장을 겸임하도록 했고, 이들 지방자치단체는 전국체전이나 소년체전을 개최하고 자체 실업 팀을 보유해 일부 선수들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엘리트 체육을 측면에서 지원해왔다. 대한체육회와 학교, 지방자치단체의 이런 선수 육성 구조를 통해 한국의 스포츠 스타들은 탄생했다.
국민생활체육회는 대한체육회와 달리 건강한 삶으로서의 스포츠를 지향한다. 1990년대 들어 엘리트 체육의 한계가 드러나고 생활 복지 차원에서의 스포츠 가치를 인식하게 되면서 정부 주도로 국민생활체육회가 만들어졌다. 이를 기점으로 생활 체육은 엘리트 체육과 함께 정부 체육 정책의 한 축이 됐다. 초기에는 광범위한 동호인 조직 탓에 정치인들의 표밭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활 스포츠에 대한 참여와 관심의 꾸준한 증가로 생활 체육은 2015년 현재 500만 명 이상의 동호회 조직으로 급팽창했다. 조기 축구나 배드민턴 동호회는 가장 활성화된 생활 체육의 대표 종목이다.
체육이라는 한 울타리에 두 개가 돼버린 집을 통합해야 한다는 얘기는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예산의 효율성, 사업의 연계성, 규모의 효과 등 통합은 여러 장점을 불러올 수 있다. 역대 각 정부도 통합체육회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통합을 모색해왔다. 결국 2015년 여야의 합의해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면서 체육회 통합 법정 시한을 2016년 3월 27일로 못박았다. 체육 단체 일원화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로는 선수 충원을 통한 전문 체육 강화,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학교 스포츠 클럽의 심화 확대, 생활 체육 참가자들에 대한 서비스 증대, 체육계 일자리 확대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 선진국형 스포츠로 발돋움하기 위한 조건들이다.
바뀐 시대, 바뀐 체육
문체부가 격년 발행에서 2015년 매년 발행으로 바꾼 국민생활체육참여실태조사 통계를 보면 생활 체육 참가자는 경향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 7년간 10살 이상 인구 중 주 2회 생활 체육 참가율을 보면 2008년(34.2%)에서 2010년(41.5%), 2012년(35%), 2014년(43.5%), 2015년(45.3%)까지 변화를 보인다. 2012년 감소세가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참여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 엘리트 선수들은 어떨까. 대한체육회의 홈페이지에서 검색 범위를 학교·직장의 운동부로 좁혀 57개 경기 단체의 등록 선수 현황 통계를 보면 2012년치부터 자료가 나온다. 등록 선수는 2012년(7만262명), 2013년(7만2772명), 2014년(7만5506명), 2015년(9만5092명), 2016년(8만4837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올림픽 메달 종목이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종목에서의 선수 변화 추이는 하향세가 뚜렷하다. 체조의 경우 2012년(1970명)부터 2016년(993명)까지 5년 새 등록 선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운동량이 많은 격투기 종목 유도의 경우 2012년 2000명 수준의 선수층은 2016년 1861명으로 감소했다. 역도, 씨름, 레슬링, 하키, 핸드볼 등 올림픽 메달 효자 종목에서도 비슷한 감소세가 나타난다. 야구의 경우 등록 선수는 2012년(7145명)부터 2015년(8359명)까지 지속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2016년(7800명)에는 상승세가 꺾였다. 학교 현장의 체육 교사들은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힘든 운동을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하는데 통계적으로도 뒷받침한다. 2015년 선수 총계가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에어로빅이나 바둑, 보디빌딩, 택견 등에서 1만 명 이상이 선수로 등록을 했기 때문이다. 선수가 늘어났다기보다는 통계에 잡지 않았던 숫자를 추가한 요인이 컸다.
과거에는 학교 운동부의 감독이나 체육 교사가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재능이나 체격이 뛰어난 선수를 입도선매하듯 운동부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학부모들은 이들의 설득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올림픽 메달을 따거나 해당 종목의 대표 선수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운동에만 전념하다가 중도에 포기할 경우 기회비용이 너무 커진다. 그렇다고 전문 선수의 길로 유도한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선택했다가 탈락하는 것은 우리 사회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책임"이라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지닌 사람도 있다.
전문 운동선수로 충원의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장기간 수업 결손이 불가피한 전국 대회의 숫자를 줄이고, 주말 리그제 시행으로 학습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합숙이나 과도한 훈련 등 성적 지상주의 문화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학생들의 스포츠 활동이 크게 늘고 있다. 학교체육진흥법은 초·중·고 학생들에게 스포츠 활동의 기회를 주도록 의무화했는데, 교장이 학교에서 스포츠 활동을 장려하지 않으면 불법이 된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축구나 농구, 탁구 등 학교 스포츠 클럽 팀의 대표로 시·도 대회를 거쳐 전국 대회까지 출전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과 학교 스포츠의 새로운 변모는 엘리트와 생활 체육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다. 학교 스포츠 클럽 활동에서 초등학교 때 이미 전문 선수로서의 폼을 완성한 엘리트를 배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선수 자원을 발굴할 수 있는 풀이 조금은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몸으로 스포츠의 가치를 체험한 학생들은 커서 생활 체육과 생애 체육의 기반이 된다. 스포츠 소비자로서 전문 선수들을 후원하는 두터운 팬층으로 편입할 수도 있다. 스포츠 시장이 확대되면 전문 지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 선수 출신들이 선수 생활 마감 뒤 일자리를 찾기도 수월해 진다. 생활 체육 동호회 회원들은 좀 더 높은 난도의 기술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올림픽 조정 선수가 의사가 되고, 수영 선수가 변호사가 되기 힘들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엘리트 선수들이 운동을 그만뒀을 때 느끼는 좌절감은 매우 크다. 사립 명문대 출신의 한 선수가 대학 졸업 뒤 특기를 살리지 못해 배달 업무 등 임시직을 전전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메달이라도 따면 연금도 받고 후광으로 대학이나 기업에 자리를 잡을 수 있지만 그런 선수는 1%에도 못 미친다. 시대정신은 기득권 집단의 소모품처럼 돼버린 운동선수가 겪어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혁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통합 완결엔 시간이 필요하다
국민체육진흥법의 개정에 따라 구성된 통합준비위원회는 지난해 6월 1차 회의를 시작한 이래 올해 3월까지 9개월 만에 통합을 이뤄냈다. 역대 정부에서도 통합은 논의가 됐지만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입장 차이가 있고, 갈등이 폭발할 경우 정치적 부담도 있어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체육 관련 개혁 입법을 주도해온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노력과 집권 새누리당 쪽에서의 정책 경쟁으로 여야가 법으로 통합체육회 구성 시한을 정하면서 통합은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됐다. 결국 올해 3월 발기인대회를 거쳐 한시적으로 두 명의 공동회장이 운영하는 통합체육회의 설립 등기가 이뤄져 형식상 통합체육회가 출범은 했다. 4월에는 통합체육회 이사회와 첫 대의원 총회도 열렸다.
하지만 이것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중앙 조직 간의 통합일 뿐이었다. 각 시·군·구별로 조직된 각급 체육회와 생활체육회의 통합은 진행 중인데, 종목별로 양쪽 단체의 위상이 천차만별이고 자리가 줄어드는 바람에 갈등과 대립이 표출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난 뒤인 9월에는 회장 선출 선거인단을 구성하여 명실상부한 통합체육회 새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지만, 선거인단 구성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애초 통합의 주체는 양 단체였지만 정부 주무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실상 통합을 주도했다. 문체부는 정보·예산·인사까지 전 영역에서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일단 통합체육회를 출범시키게 된다. 문체부는 그 과정에서 대한체육회 구성원이나 경기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자산 규모나 인적 규모, 전문성, 경험, 역사성 등에서 자긍심을 갖고 있던 대한체육회는 일 대 일 통합이 불만이었다. 이에 비해 국민생활체육회는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아 초기부터 통합을 추진한 문체부에 매우 협력적이었다. 문체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며 대한체육회를 몰아붙였는데, 사실상 대한체육회의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전방위적 압박이 이뤄졌다.
체육계 4대악 추방이라며 체육회 가맹 경기 단체의 부실한 회계 관리나 관행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일부 지도자들을 선수들의 훈련비를 가로챈 파렴치한으로 몰리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체육회 입장을 강하게 대변해온 대한수영연맹회장은 검찰의 대한수영연맹 비리 수사로 중도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업무상 횡령 혐의로 사회적 매장을 당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의 유도 대표 팀 감독이나 대학 교수가 나중에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은 대한체육회에 대한 무리한 압박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렇다고 대한체육회가 잘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통합이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했다면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통합을 거부하는 이미지로 비치면서 주도권을 문체부에 빼앗겼고, 통합체육회 구성에서도 사무총장직을 생활체육회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를 본 것은 대한체육회가 아니라 한국 체육이다. 현재 통합체육회 사무총장은 경기인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의 입장에 충실한 허수아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신욱 단국대학교 교수는 "아래로부터의 통합이 아니라 물리적인 통합이 되면서 불씨를 안게 됐다. 조직이 정서적이고 인간적으로 교류하고 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일단 통합만 해놓고 보자는 식이 돼서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안정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과 한계
2016년 통합체육회의 예산은 약 3800억 원이다. 이 가운데는 진천 국가대표훈련장 건립비(1150억 원)가 들어가 있어 실제는 2650억 원 규모의 재원을 생활 체육(970억 원)과 엘리트 체육(1420억 원) 등의 육성에 쓴다. 국가대표훈련장 건립비를 포함한 연간 예산 3800억 원 가운데 통합체육회 자체 수입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지원금과 평창동계올림픽 마케팅 권리금 등 81억 원에 불과하다. 통합체육회의 재정 자립도는 2%(81억 원/3800억 원)에 불과한 셈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스포츠토토나 경정, 경륜 등을 운영해 조성한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100% 조성되지만, 예산을 주무르는 게 정부여서 체육 단체는 끌려갈 수밖에 없다. 올해 초 문체부는 통합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앙 경기 단체 가운데 생활체육회와 먼저 통합을 하는 쪽에 예산 지원을 확대하고, 대신 나중에 통합하는 단체에는 예산을 줄이겠다는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관료가 책상머리에 앉아 착상한 기발한 발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경기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정부가 체육을 대하는 방식은 매우 정치적이다. 10년 이상의 장기 구상은 없고, 청와대 권력의 주기인 5년짜리 정책만이 판친다. 권력의 의향에 따라 해바라기성 정책을 내는 관료한테 철학을 기대하는 어렵다. 문체부 2차관과 체육국장을 통해 한국 체육의 대계가 결정되는데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조변석개다. 한 체육단체 관계자는 "스포츠토토 지원금을 예전에는 유소년 육성에 상당 부분 쓰더니, 새 정부 들어서는 갑자기 스포츠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골프 산업 쪽에 대거 돌리고 있다. 창조나 일자리가 붙은 항목은 지원을 하다보니까 인기 경쟁하듯이 이름만 그럴듯한 사업이 늘어난다"고 했다. 정치 논리에 따라 정책이 운용되면서 백 년 구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정부가 마음에 드는 사업만을 강요하고, 담당 공무원은 수시로 바뀐다. 체육단체에서 10년 이상 지속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장기 사업은 엄두를 못낸다.
문체부의 체육계 통제는 '유신 때보다 더하다'라는 말에 압축돼 있다. 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방향은 옳지만 속도에 문제가 있다’며 쓴 소리를 한 경기 단체 회장은 문체부가 5년 전 회계 처리 잘못을 끄집어내자 물러났다. 지방체육회의 부회장 직을 겸직하고 있는 것도 못마땅한지 문체부는 해당 지방체육회 사무처장한테 문자를 보내 견제구를 날리는 등 인사 압력으로 비칠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방체육회의 인사권은 지방자치단체장인 시장한테 있어 도를 넘어선 패악이다.
문체부는 통합체육회의 집행부 구성안을 짤 때부터 개입해 민간 스포츠 단체의 자율성을 심대하게 훼손했다. 문체부의 눈치를 보는 현재 통합체육회 인적 구조로는 주체적이고 발전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가 없다. 세계적인 수영 선수 박태환이 국제올림픽위원회나 세계반도핑기구에서 인정하지 않는 로컬 규정의 이중처벌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는 등 민감한 현안이 불거져도 대응 능력을 상실했다. 사무총장은 문체부의 기류를 파악했는지, '국내 규정도 규정이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만 반복하고 있다. 최근 17새 시도의 체육회 사무처장은 통합체육회 사무총장 면전에서 "현장은 문체부가 생각하는 교과서처럼 되지 않는다. 통합체육회가 중심을 잡아야지, 문체부가 하라는 대로 해서는 안 된다"며 성토했다.
체육 정책은 유행이 아니다
체육 정책은 과거 권력이나 정권의 이해가 크게 작용했다. 현재는 주무 부서인 문체부 관료의 세계관에 따라 체육 정책이 좌지우지되고 있다. 막대한 예산권으로 통합체육회에 엄청난 권력과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족 지도자나 권력이 실세 등 거물급이 맡았던 과거의 대한체육회장과 달리 현재의 통합체육회 수장은 위상도 낮고, 발언권도 없다. 공익적 가치의 체육 정책은 정부의 지원과 민간의 자율성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야 하는데, 한쪽 바퀴가 비대해지면서 다른 쪽은 질질 끌려가고 있다.
통합체육회가 주체적으로 서기 위해서는 재정 자립을 이뤄야 한다. 이 부분에서 정부가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대중적 인기가 높은 프로 야구나 프로 축구에서도 흑자를 내는 구단이 없다. 시장이 큰 미국처럼 엘리트 선수나 대표 팀을 활용한 마케팅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운 일본처럼 엘리트나 생활체육의 참가자들이 비용의 상당부분을 감당하는 구조도 아니다.
때문에 통합체육회가 안정적으로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제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국내 스포츠 재원의 젖줄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스포츠토토나 경정, 경륜 운영권 가운데 일부를 통합체육회에 넘기는 것은 하나의 방안이다. 주머니돈이 쌈짓돈이라고 하지만, 정부를 통해 다시 지원금 형식으로 재원이 내려오면서 관료 집단의 영향력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하향식 체육 정책의 관통은 이뤄지고 있으나, 상향식의 현장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말 잘 들으면 1년 더 예산을 배정하는 식으로 사안을 ‘재정적 프레임’으로 환원시키는 관성으로는 선진국형 체육 복지가 이뤄질 수 없다.
체육이나 스포츠 소비자들의 '체육은 공짜'라는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운동하는 학생, 공부하는 선수'라는 정책은 학교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클럽의 학생 선수들은 종목별로 시·도·전국대회에 나갈 때 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주말 황금 휴일을 반납하고 인솔하는 교사들이 교통비와 식비까지 내는 경우도 있다. 대회를 주관하는 사람들의 헌신과 열정에도 한계가 있다. 지난달 수도권의 중학교 탁구 클럽 시 대회 현장에서는 5명의 출전 선수들이 단복식 5경기에서 경기 당 11점 1세트로 승패를 가렸다. 경기당 3내지 5세트로 우열을 가리는 정식 경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탁구 승패를 11점 1세트로 끝내는 것은 지나쳐 보였다.
이런 현상은 학교 클럽 스포츠에만 있지 않다. 공부하는 선수를 만들기 위해 주말에 '엘리트 선수'들이 벌이는 초, 중, 고, 대학 축구 리그에는 900여 개 팀이 8개월 간 총 1만여 경기를 한다. 비용도 연간 70억~80억 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2만5000명이 내는 등록비는 일인당 1만 원이 전부다. 팀의 참가비도 30만 원을 밑돈다.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축구협회는 정부 지원도 받지만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액수가 만만치 않다. 20년 넘게 고정된 1만 원의 참가비는 초현실적이다.
리우 올림픽 이후인 9월에 선출할 통합체육회 새 회장은 온갖 난제를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자그마한 학교도 교장이 누구냐에 따라 스포츠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듯이, 누가 통합체육회 회장이 되느냐에 따라 대정부 협상력이 달라진다. 정책 능력과 비전, 조직 융합력과 집행력을 갖춘 회장이 와야 정부의 관료주의와도 싸울 수 있고, 한국 체육의 밝은 미래도 앞당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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