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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경연 그 이상, 유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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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경연 그 이상, 유로비전

[함께 사는 길] "모두를 죽였어요. 그리고 죄가 없다고 말했지요"

2016년 유로비전(Eurovision)의 우승자는 우크라이나의 가수, 자말라(Susana Jamaladinova)가 차지했다. 해마다 개최되는 '유로비전 노래 경연대회(Eurovision Song Contest)'는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최장수 국제 방송 프로그램이다. 1956년부터 스위스, 벨기에, 덴마크 등 유럽방송연맹(European Broadcasting Union, EBU) 소속국을 중심으로 참가국이 확장돼 왔다. 역대 유로비전 참가국을 추계하면 52개 국가들이 최소한 한 번 이상 참가했다. 무려 60년 동안 매해 치러지고 있는 유로비전의 시청자는 적게는 1억 명에서 많게는 6억 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1974년에는 스웨덴 출신의 혼성그룹, ABBA(아바)가 그 유명한 '워털루(Waterloo)'라는 곡으로 우승했다. 1981년에는 영국의 벅스 휘즈(Bucks Fizz)가 '메이크 유아 마인드 업(Making Your Mind Up)'으로, 1988년에는 스위스 대표로 나온 셀린 디옹(Celine Dion)이 '돈 리브 위드아웃 미(Don't leave without me(원곡명 : Ne partez pas sans moi))'라는 곡으로 우승했다.

▲ 2016년 유로비전 참가자들. ⓒAnna Velikova

유로비전에 열광하는 이유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유로비전에 지리적으로 꼭 유럽에 위치한 국가만 참여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유럽을 서쪽에 둔 이스라엘과 키프로스 공화국, 터키, 러시아,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도 대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북아프리카에 있는 모로코가 참가한 때도 있다. 2015년부터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도 참가해 기량을 뽐내기 시작했다.

대회의 방식은 이렇다. 각 참가국 대표 가수는 생방송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공연할 고유의 신곡 하나를 제출한다. 승자는 심사위원 점수 및 가장 좋은 노래로 선택된 표 수 등을 종합하여 환산한 점수로 결정된다. 이때 참가국 심사위원들은 자국이 제출한 노래에는 투표할 수 없다. 총점은 각국에 동등하게 분배돼 있어 인구수가 많을수록 영향력이 큰 것도 아니다. 해당 국가의 인구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개개인이 던지는 한 표에는 가중치가 있게 된다.

노래가 무대에서 공연되는 동안 사람들은 자국 외 다른 참가국의 노래에 표를 던지고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노래가 공개되며 승자가 결정된다. 우승한 나라는 이듬해 대회 개최지로 자동 결정된다. 역대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나라는 7번을 우승한 아일랜드다. 이어 스웨덴이 6회,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영국이 각각 5회씩 우승했다.

유로비전은 노래경연이지만, 세계의 변화와 맞물려 돌아간다. 소련이 해체되고 난 뒤에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의 첫 우승 소식이 전해졌다. 구소련 연방에 속했던 에스토니아는 2001년, 라트비아는 2002년, 우크라이나는 2004년, 아제르바이잔은 2011년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편, 유로비전은 자국을 제외한 참가국에만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별 관계의 친선 잣대로 보이기도 한다. 러시아는 2013년 유로비전에서 자국 가수가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며 항의에 나섰다.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의 결승 진출 가수에게 0점을 줬기 때문. 반면 아제르바이잔 가수는 러시아에서 최고 점수인 12점을 받았다. 그해 5월 21일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아제르바이잔 외교부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 가수가 아제르바이잔 시청자들로부터 받은 표가 집계되지 않았다며 유로비전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우려한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러시아 가수에게 0점이 부과된 배경을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을 정도다.

2014년 유로비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오스트리아 가수 콘치타 부어스트(Conchita Wurst)는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명 '수염 난 여인'으로 불리는 부어스트는 긴 머리에 진한 화장을 한 여장남자이면서 수염을 절대 깎지 않는 점이 독특하다. 그런데 당시 BBC가 동성애에 우호적이지 않은 러시아 사회가 부어스트의 우승에 대해 찬반으로 양분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실제 러시아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어스트의 우승을 비난하면서 러시아가 더 이상 유로비전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공식화하자는 주장도 나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로비전 결승에서 러시아 국민들은 정작 부어스트에게 많은 지지를 보냈다. 유로비전 투표 결과 러시아 국민들은 결승 참가자 26팀 중 세 번째로 많은 표를 부어스트에게 던졌다.

노래로 담은 타타르족의 비극

올해 유로비전에서 우승한 우크라이나 대표 자말라는 크림반도 출신의 타타르족이다. 아시아에서 발원한 타타르족은 유럽 동남부로 이주해 18세기에 번성했으나 1787년 러시아로 병합됐다. 이후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가 4년 만에 다시 소련에 편입됐다. 스탈린은 1944년 타타르족을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 등지에 강제 이주시켰다. 타타르족은 구소련이 해체된 후 일부가 크림반도로 돌아왔지만, 상당수는 중앙아시아에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자말라는 자신의 증조할머니가 "강제 이주당했던 25만 명의 타타르족 중 한 명"이며 유로비전 우승곡인 '1944'을 할머니에게 바친다고 했다. 이는 '1944' 가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 모두를 죽였어요. 그리고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말했지요. 나는 고향에서 청춘을 보낼 수 없었어요. 당신은 평화를 앗아갔죠."


자말라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 노래는 1944년 사건뿐 아니라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도 다루고 있다"며 "지난 2년간 크림반도의 부모와 친척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먼 옛날이 아니라 2014년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 병합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 2014년 3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땅이었던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소련에 의해 강제 이주당한 뒤 소련 해체 후, 비로소 고향인 크림반도로 돌아간 타타르족 입장에서는 또다시 러시아의 탄압이 우려되는 게 당연지사.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의 전말은 이렇다. 2013년 1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가 이듬해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 및 야권 주도 임시정부 설립까지 이어지자 러시아계 주민이 많았던 크림반도에서는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에 반대했다. 이에 러시아군은 2014년 2월 27일 무장병력을 투입해 크림반도의 주요 시설들을 점령한다. 크림공화국에 러시아군을 주둔시킴으로써 사실상 러시아의 지배하에 놓은 것. 이어 크림 의회는 독립국가를 선포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합병의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본디 크림 반도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위기는 고조되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공화국이 주민투표로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정한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우크라이나 헌법 조항은 영토변경은 주민투표가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비전은 단순한 노래경연을 넘어 국제관계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양상이다. 내년에 열리는 유로비전은 노래와 별개로 또 어떤 내용을 던져줄까.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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