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사학자 및 교사들의 사관을 문제 삼으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힌 가운데, 보수 언론에서는 진보 성향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에 대한 왜곡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13일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은 "강남 고교서 '박정희 더 일찍 죽였어야" 수업...학생 반발" 제하의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해당 동영상은 한 교수가 지난해 11월 문화다양성 포럼 초청강연에서 '세월호를 통해 본 한국현대사'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영상이다. 해당 기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에 비유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했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발언들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고 전했다.
TV조선과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시작으로 14일, 15일에도 비슷한 기사들을 번갈아 쏟아냈다. 공세가 이어지자 다른 언론사들도 이를 받아썼다. 채널A는 14일 자 "'박정희, 만주서 죽였어야…' 막장 수업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연합뉴스도 14일 기사에서 "영상에 "박정희 더 일찍 죽였어야" 내용도"라는 부제가 붙은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경제TV 또한 "한홍구 "이승만은 세월호 박준석 선장과 같아" 동영상 봤더니 '경악'"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TV조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14일 <이슈해결사 박대장> 프로그램을 통해선 "금수저 좌파, 한홍구의 정신세계"라는 이름으로 한 교수 발언 내용을 약 17분간 다뤘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월간조선> 한 기자는 한 교수가 해당 강연에서 "김일성이 얼마나 훌륭한 독립운동가인가 이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한 교수는 15일 자신에 대한 보도들이 왜곡됐다며 강력 대응할 뜻을 밝혔다. 그는 자신은 '박정희 더 일찍 죽였어야', '살해했어야 한다' 등 극단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으며, 발언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박정희를 죽였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밝힌 실제 발언은 다음과 같다.
"저놈(김창룡)이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거든요. 그런데 그때 죽여도 될 사람을 하나 살려줬어요. 남로당이 한국군부에 침투시킨 최고위 프락치였으니까 그때 기준으로 치면 뭐 죽여도 여러 번 죽였어야할 자인데 그자를 만주에서 같이 놀던 놈이라고. 그놈이 잡히니까 '김창룡을 만나게 해 달라.' '김형 나 좀 살려주쇼.' 그랬더니 이제 살려줬어요. 아 그때 딱 죽여 버렸으면 우리 역사가 조금은 바뀝니다. 대통령이 두 자리는 확실하게 바뀌어요. 박정희니까. 박정희 그때 죽여 버렸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죠. 우리 언니는 태어나기도 전이에요. 태어나 보지도 못하는 거였는데 살려 줬습니다. 오늘의 박근혜를 있게 한, 오늘의 박근혜가 있기까지는 뭐 이런 분들의 다 은덕이 있는 거죠."
한 교수는 "숙군 책임자 김창룡이 박정희의 호소나 박정희의 만주군 선배인 원용덕, 백선엽, 정일권 등의 구명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고, 박근혜는 태어나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을 뿐"이라며 "이 이야기가 왜 박정희를 죽였어야 한다로 들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두 시간짜리 동영상 어디에서도 김일성의 독립운동을 언급한 것이 주를 이루기는커녕 언급조차 없다"며 반박했다.
그는 "근 1년 전에 한 강연이 지금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다수의 국민과 거의 모든 역사학자들이 반대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호도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 TV조선은 한 교수의 영상을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근거 자료로 엮고 있다. TV조선 14일자 <뉴스쇼 판>의 "문제의 '한홍구 강연 동영상' 살펴보니" 보도를 보면 "어른이 봐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은데, 어린 학생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자연스럽게 이러니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겠다고 하는거지 이런 말이 나올 정도"라는 앵커 멘트가 나온다.
한 교수는 "하지도 않은 말로 인격 살인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왜곡보도에 대한 사과와 정정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11개월 전 강연을 이제와 사실에 사실 확인도 없이 악의적으로 왜곡보도하고 무책임하게 퍼나른 것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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