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이 이겼다. 대부분이 예측한 대로다. 17일 오전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 다수 주주가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 편에 섰다. 이로써 지난달 28일 <니혼게이자이> 신문 보도를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 국민에게 약 20일 간 생중계 된 롯데 그룹 경영권 분쟁은 한 고비를 넘겼다. 신격호 롯데 그룹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회장이 한국과 일본 롯데 그룹을 통째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94세 신 총괄회장의 고집이 부러졌다.
차남 신동빈은 어떻게 해서 아버지를 등에 업은 형을 이길 수 있었나. 크게 세 측면에서 이유를 살펴봤다.
산업화 이후 창업한 일본 롯데, 산업화 시작과 함께한 한국 롯데
첫 번째는 한국과 일본의 산업화 역사의 차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차남 신동빈에게 한국 롯데를,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일본 롯데를 맡겼다. 그리고 경쟁을 붙였다. 신동주, 신동빈 형제가 각각 지닌 그룹 경영권 지분은 늘 엇비슷했다. 신 총괄회장이 마지막 순간까지 캐스팅 보트를 쥐기 위한 고려였을 수 있다. 고작 한 살 터울인 두 아들을 치열하게 경쟁시키려는 장치였을 수 있다. 정확한 이유는, 신 총괄회장만 안다.
아버지는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를 아우르는 '원 리더'다. 그 자리를 물려받으려면,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 가운데 어느 쪽에 터를 잡는 게 좋을까. 얼핏 생각하면 답은 일본 롯데다. 한국 롯데 그룹을 지배하는 건 호텔롯데다. 호텔롯데 지분 대부분은 일본 롯데가 갖고 있다. 일본 롯데를 장악하면, 한국 롯데도 움켜쥘 수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사업을 시작한 곳 역시 일본이다. 일종의 정통성까지 있는 셈. 이렇게 보면, 일본 롯데를 맡은 장남 신동주가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승자는 차남 신동빈이었다. 왜 그럴까. 한국과 일본의 산업화 역사를 살피면, 힌트가 나온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롯데제과를 세운 건 1948년 6월 28일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군정 시기였다. 둘 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고, 소비 욕구가 짓눌린 상태였다. 하지만 산업화의 출발점은 완전히 다르다. 일본은 이미 한참 전에 스스로 전함과 전투기를 개발해서 미국과 전쟁을 치렀다. 한국은 산업이랄 게 아예 없었다. 요컨대 일본에서 롯데가 창업한 때는, 산업화 이후다. 반면, 롯데가 한국에 진출한 건 산업화 시작과 함께였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한국에 진출했다. 1967년 설립된 롯데제과가 한국 롯데의 출발점이다.
이미 산업화가 진행된 일본에서 롯데가 할 수 있는 사업은 한계가 있다. 총수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점 역시 약점이다. 일본 롯데는 그래서 지금도 제과, 서비스, 유통, 부동산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중후장대형 제조업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반면, 한국에선 기회가 훨씬 많았다. 롯데의 진출과 산업화 시작이 겹친다. 정부는 자본에 목말랐고, 외자 유치를 위해서라면 어떤 특혜건 내줄 준비가 돼 있었다. 게다가 5.16 군사쿠데타로 이른바 '만주인맥' 후배들이 권력을 잡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 관동군 하급 장교 출신이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아주 가까웠던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 고위 관료 출신이다. 요컨대 신격호는 박정희의 '만주인맥' 선배와 절친한 사이였다. 최고 권력과 통하는 인맥까지 확보한 셈. 한국 롯데는 한국 경제의 가파른 성장 곡선을 타고 함께 올라갔다. 일본에선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업종을 한국에선 시도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게 정유, 철강 등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신격호 총괄회장은 중후장대형 제조업에 관심이 많았다. 다만 일본에선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을 뿐이다. 반면, 이제 막 산업화 첫걸음을 떼는 한국에선 기회가 많았다.
신격호 "내가 하고 싶었던 건 호텔 아닌 철강업"
신격호 총괄회장은 <월간조선> 2001년 1월호 인터뷰에서 "호텔업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철강업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신 총괄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맨 처음 우리 정부(박정희 정권)에선 날 보고 정유공장을 지어달라고 했다가 걸프가 등장하자 종합제철소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1년 반 동안 일본 내 후지(富士)제철소(현 신일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를 만들었습니다. 연간 100만 톤 생산 규모로 설계하여 총 투자가 1억 달러가 소요될 계획이었습니다. 그 중 3000만 달러는 제가 출자를 하고 나머지 7000만 달러는 일본에서의 차관 등을 통하여 건설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그 뒤 우리 정부에서는 태도가 바뀌어 정부가 직접 하겠다고 하더군요.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한국전력 등 공기업의 민영화가 거론될 때 포항제철을 롯데가 인수하는 것을 검토해 본 적도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제한이 많아서 중단되었습니다."
비록 철강업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정유업은 하고 있다. 1979년 한국 롯데 계열사로 편입시킨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이다.
실제로 한국 롯데는 일본 롯데에 비해 포괄하는 산업의 범위가 훨씬 넓다. 석유화학부터 금융(롯데카드, 롯데캐피탈 등) 및 정보통신(현대정보기술 등)까지 두루 아우른다. 일본 롯데는 여전히 식품과 부동산 중심이다. 아우르는 산업의 범위가 넓다는 점은, '문어발 경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국민경제 차원에선 옳은 비판이다. 그러나 총수 입장에선 다르다.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고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요컨대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맡았다는 점은, 그 자체로 거대한 기회였다. 성장 가능성은 한국 롯데가 훨씬 우월했다. 총수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경제사적 조건이 그랬다. 어쩌면 신격호 총괄회장의 구상이었을 수도 있다. 장남에겐 그룹의 뿌리인 일본 롯데를 맡기고 차남에겐 성장 가능성이 큰 한국 롯데를 맡겼다. 요컨대 장남에겐 정통성을, 차남에겐 기회를 준 것이다. 차남이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실적으로 정통성을 꺾을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신동빈 회장의 말처럼,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의 매출은 각각 '95 대 5' 비율이다.
"1997년 IMF 위기부터 2008년 세계금융 위기까지…활발한 M&A로 몸집 불려"
이번에는 신동빈 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을 꺾을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를 살필 차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급격히 진행된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배경이다.
신동주, 신동빈 형제의 후계 경쟁이 시작된 건 1990년이다.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 경영에 발을 들인 게 그때다.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로 취임하면서였다. 신 회장의 최측근 가신으로 꼽히는 황각규 롯데 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석유화학 엔지니어였던 황 실장은 그 이후 지금까지 신 회장을 보필했다.
1990년은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아직 뜨거울 때였다. 반면, 일본 경제는 거품 붕괴와 함께 장기 침체에 들어선 때였다. 이는 소비재 위주의 내수 기업인 일본 롯데에게 직격탄이었다.
신 회장 입장에선 이른바 '천시(天時)'가 좋았던 셈이다. 기회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겐 재앙이었다. 그러나 "사업은 원래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라던 한국 기업의 상식에서 롯데는 비켜서 있었다.
"몸에서 열이 나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기업에 있어서 차입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주 하던 말이다. 고금리 환경에서 경쟁 기업들이 무리한 차입 경영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이, 한국 롯데는 영토를 넓혀 갔다. 상대적으로 넉넉했던 현금이 무기였다.
2000년대 들어 한국 롯데는 인수합병(M&A) 관련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됐다. 10년 간 35개 기업을 인수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엔, 가속 페달에 더 힘이 들어갔다. 마침 정치 환경도 좋았다. 일본 오사카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롯데에 우호적이었다. 하이마트, 두산주류 등 우리에게 익숙한 대기업이 한국 롯데에 흡수된 것도 이 때다.
경제지들은 신동빈 회장을 'M&A의 귀재'로 추어올렸다. 그럴 만 했다. 한국 롯데가 재계 서열 5위에 오른 건 상당 부분 신 회장이 주도한 M&A 덕분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초엔 엇비슷하던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의 매출 규모가 지금은 '95 대 5'로 벌어졌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들 역시 이런 명백한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게다. 신동빈 회장의 승리 원인, 두 번째는 활발한 M&A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1997년 외환 위기부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까지 진행된 '신자유주의 금융화' 흐름이 있었다. 재무구조가 나쁜 기업들을 쪼개고 사고팔기 좋은 정책 환경이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기업 구조조정이 쉬워졌다. 금융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M&A의 귀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 쳤다. 신 회장의 지식과 경험도 딱 맞아 떨어졌다. 그는 노무라 증권에서 일했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전형적인 금융통이다.
"확장 경영에 빨간불…위험한 중국 투자"
하지만 신 회장에게 유리했던 '천시(天時)'가 영원하리라는 법은 없다. 최근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 회장이 주도한 중국 사업의 대규모 부실이 드러났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 스코어'에 따르면,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의 중국 및 홍콩 소재 법인들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1조1513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연도별 손실액은 2011년 927억 원, 2012년 2508억 원, 2013년 2270억 원, 2014년 5808억 원이다.
특히 롯데쇼핑 자회사인 홍콩 롯데쇼핑홀딩스의 지난해 순손실 규모는 3439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491%나 늘었다.
중국 투자는 신 회장에게 유리했던 흐름의 연장선 위에서 이뤄졌다. 즉 각종 규제 완화로 자본 조달 및 유출입이 쉬워졌다. 이런 조건을 활용해,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중국 시장에 투자한 것이다. 일본 자금을 고도성장기 한국에 투자해서 성공했던 사례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빨간불이다. 중국 투자 실패가 분명해지면, 17일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을 지지했던 주주들이 등을 돌릴 수도 있다.
상사에서 일한 신동주, 증권사에서 일한 신동빈
신동빈 회장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세 번째는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다. 경영권 다툼은 결국 권력투쟁이다. 누가 기업 권력을 잡는지를 놓고 싸우는 것이다. 권력투쟁은 결국 집요한 사람이 이긴다. 기업 권력을 규정하는 게 기업지배구조다. 지배구조에 대해 더 집요하게 탐구하고 공을 들인 사람이 이기는 게 당연하다.
이 대목에선 확실히 신 회장이 유리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아들들에게 롯데 경영을 맡기기 전에 다른 회사에서 경험을 쌓게끔 했다.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미쯔비시 상사에서 일했다. 신동빈 회장은 노무라 증권에서 일했다. 신 전 부회장이 실물 거래를 배웠다면, 신 회장은 주식을 배웠다. 주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아무래도 신 회장이 앞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주주총회 표 대결 승리를 위해 유리한 조건이다.
그뿐 아니다. 신 회장은 '차남은 한국 롯데, 장남은 일본 롯데'라는 공식이 공공연하던 시절에도 일본 롯데홀딩스 임원들과 종종 물밑접촉을 했다고 알려졌다. 요컨대 형의 영역에 잠입했던 것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최측근이던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을 자기 사람으로 만든 것 역시 그 결과라고 한다. 언젠가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놓고 형과 싸워야 한다는 점을 깊이 새기고 있었던 까닭이다. 17일 주총 승리는 이 같은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남는다. 창업보다 어려운 게 수성이다. 경영권을 잡는 것보다 중요한 게 경영을 잘 하는 것이다.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우수한 경영능력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가 될 수 있다. '내부정치'에 대한 집착은, 시장 변화를 보는 눈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또 과감한 혁신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제조업체인데, 공장을 경험한 임원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주총의 패배자인 신동주 전 부회장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자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롯데 경영진은 왜 시게미쓰 아키오(신동빈 회장) 쪽 편을 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옛날부터 근무했던 토박이 임원을 모두 쫓아내고 쓰쿠다 대표이사 라인의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우리는 제조업체지만 지금 공장(현장)을 경험한 이사가 한 명도 없다. 뭔가 문제가 있을 때 심각한 정도를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걸 걱정하고 있다.
식품 메이커 하나에서 사고가 나면 모두 부서질 수 있는 시대다. 기술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롯데는 신제품 개발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제조업체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투자를) 하지 않으면 혁신 상품이 나오지 않는다.
투자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은행 출신의 사람이 경영진에 오르며 (회사가) 실패를 하지 않는 방침으로 바뀐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없다. 디자인과 신제품도 결정하지 않고 기계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듯하다."
의미심장한 지적이다. 'M&A'를 통한 성장, 경영권 집착으로 인한 '내 사람 심기', 제품 경쟁력보다 재무건전성에만 치우친 경영 등 신동빈 식 경영방식이 과연 제조업체에 어울리느냐는 지적이다.
신동빈 식 경영방식은 고도성장기, 중국의 부상, 신자유주의 금융화 등의 환경에서 잘 작동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조건 가운데 지금 해당하는 건 없다. 17일 주총 승리 이후, 신동빈 회장 앞에 펼쳐질 미래가 마냥 밝아보이지는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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