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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비박' 위협…차기 공천권 확보 목적"

[분석] 황교안 '정치사정' 깔린 임기 후반기 정국 구상

대통령이 정쟁의 중심에 섰다. 정치적 위기에 부딪혔을 때마다 나왔던 특유의 '돌파력'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야당 대표 시절이나, 여당 비대위원장 시절과 다르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대통령이다. 통합의 정치를 내세워 사회 갈등과 정치권 갈등을 풀어나갈 책임도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25일 오히려 갈등에 불을 댕겼다. '6.25 선전포고'다. (☞관련기사 : 박근혜 '거부권' 행사 국무회의 발언 전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고지도자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냈다"며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다"라고 지적했다. 이 명예교수는 "그야말로 조선시대 4색당쟁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야당이 친노와 비노의 프레임에 갇힌 것과 더불어 빗댄 발언이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정국은 얼어붙었다. 박 대통령이 비난의 언어를 구사할수록, 박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살리기 법안 처리는 당분간 물 건너갔다. 일부 법안은 야권으로부터 의료 영리화 추진법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다, 지지자의 여론을 중시하는 야당 입장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에 찬성할 명분을 찾을 수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이 "당리당략"의 소산으로 두 차례나 언급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은 호남 지역의 숙원 사업이었다. 게다가 여야 합의로 이미 통과됐는데도, 박 대통령은 "국민 세금(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의 사례로 언급했다. 역시 여야 관계와 지역 화합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15조 재정 투입'의 효과도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대통령의 발언으로 오늘 추경을 포함한 15조 재정투입과 같은 경제적 '빅 이벤트'가 묻혔다. 추경은 '심리적 효과'도 있는 것인데, 그런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박 대통령은 '6.25발언'을 내놓아 갈등의 뇌관을 쳤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9%이다.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메르스 사태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무능은 여론조사 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분노'가 정치권을 향해 터져 나온 셈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 특히 지지층에 호소하는 전략을 택했다. 향후 박 대통령은 TV 노출을 극대화하며 민생 행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野 해석에 동조, 與 일부를 적으로 돌리는 '저의'는 뭘까

박 대통령이 유능한 과목은 있다. 정치 게임이다.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 동력 상실로 생긴 여백을, 반대파에 대한 비판으로 메꾸려는 의지가 실려 있다. 모든 책임은 반대파에 있다. 그래서 정치권을 '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기는 '공천권'이다.

국회법 개정안의 핵심은, 정부가 국회에서 제정한 모법을 넘어서는 시행령을 제정할 때 국회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그나마 '요구'는 '요청'으로 완화됐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위헌이 아니라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이를 '위헌'으로 규정했다. 또 여당은 강제성이 없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강제성이 있다"는 야당의 해석에 동조했다. 심지어 수많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던 정의화 국회의장의 해석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반기를 들었다. 과거 1998년, 1999년에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에 찬성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거부권 행사 명분이 약해진 상황임에도, 거부권 행사를 밀어붙였다. 이미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거부권 행사 이유를 뛰어넘는 정치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첫째,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한 것이, 자신에 대한 반대 세력의 "저의"가 있는 것으로 봤다. 정치권이 불순한 음모를 통해 대통령을 "당리당략"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데 대한 "배신감"이 서려 있다.

둘째, 박 대통령은 "정부여당"과 "정부여당"을 돕지 않는 그룹으로 정치권을 갈라놓았다. 전선을 야당 초소 앞이 아니라 여당 내 비박(非朴) 세력 앞에 그었다. 비박·야당그룹으로 반대파를 설정하고, 그 반대파를 "심판해달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당 소속 의원을 '심판해달라'고 읍소하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 브랜드를 내세워 배지를 달아놓고, 국정 발목을 잡는 야당에 동조하고 있는 세력은 "존재" 이유가 없다는 '사심'을 가감 없이 내보였다.

현재 청와대 정무 기능은 마비됐다. 정무수석은 공석이고, 두 명의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인 윤상현, 김재원 의원은 조정 역할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스피커' 역할에 충실하다. 정무기능이 없는 상태에서 작성된 이같은 '원고'는 누구의 작품일까. 여권 안팎에서도 설왕설래한다.

확실한 것은 여야 막론하고 "나를 반대하는 이들과 같이 일 못한다"는 메시지다. 여권은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대통령 탈당과 함께, 당이 쪼개지는 것도 감안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이같은 발언을 내놓을 수 없다. 국회의 거부권 재의결 여부와 관계없이 추후 당청 관계의 대변혁을 예고한 것이다.

왜 이런 수를 뒀을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과거 여권 내 권력 투쟁을 지켜봐 왔던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대통령이 국회법 거부권 행사를 통해 국회를 윽박지르고 새누리당 비박계 숨통을 위협, 차기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전략이라 분석한다"며 "친박들이 나서서 비박에게 가혹한 비판의 날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는, 임기 반환점 이후 새로 그린 정국 구상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교안 국무총리를 앞세워 "부패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첫 타겟을 "정치권 부패"로 잡은 것도 맥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 장악력을 이용해 '성완종 리스트' 수사 등 '정치권 사정'과 함께, 공천 개입을 통해 총선을 앞두고 '구태 정치인' 물갈이를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정'이 들어간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은 당분간 박근혜 대통령 앞에 납작 엎드릴 전망이다. 그러나 '비박계' 등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옥죄기 시작했다고 판단할 경우, 여권은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비박계 대표주자인 이재오 의원은 이미 박 대통령을 겨냥,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그 후폭풍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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