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고, 살해되는 영아들
88명, 87명, 63명, 49명, 87명, 127명, 139명, 225명. 2006년부터 2013년까지 통계에 잡힌 버려진 영아들의 숫자다. 4명, 11명, 12명, 12명, 18명.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통계에 잡힌 살해된 영아들의 숫자다. 언론에서 사건이 보도됐을 때만 반짝 관심이 쏠렸다가 다시 잊힌다.
영아 시신 택배 사건은 많은 사람의 기억에 조금 더 오래 남겠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역시 잊힐 것이다. 영아 시신 택배 사건에 대한 충격이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 모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의 보장, 촘촘한 복지제도, 출생등록제 도입 등의 실천 행동으로 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조만간 새로운 영아 살해 유기 사건에 놀라고 또 잊어버리기를 여전히 반복할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A(35·여) 씨는 혼자 사는 여자가 출산했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생활고로 아이를 키울 능력도 없는데 아이가 울자 주위에서 출산을 알까 봐 입을 막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영아 살해를 다룬 기사들 말미에 나오는 '근본 원인은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이다'는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우리 사회 편견 "혼자 사는 여성이 출산했다"
우선 혼자 사는 여자가 출산했다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말에서 알 수 있는 점을 보자.
첫째, 혼자 사는, 즉 결혼 상태에 있지 않은 여성의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 인식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 많았지만, 90년대 이후부터는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대다수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성관계의 결과가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면 문제가 달라진다. 아이를 생산한 두 남녀가 결혼으로 이어지면 최고의 혼수품이라 하여 환영을 받고,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은 여성은 행실이 나쁘고 무책임하다고 욕을 먹는다.
불륜이 아닌 이상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성관계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할 사람도 없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결과인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왜 비난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미혼모 기사가 뜨면 수없이 달리는 부정적인 댓글의 하나가 피임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리석은 여자가 성관계를 왜 하느냐는 것이다. 음주 운전이 아니어도 운전을 하다 보면 사고를 낼 수 있는 것처럼, 피임해도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음주 운전 등 8대 중과실로 사고를 내지 않는 이상, 사고 낸 사람보고 사고 낼 거면 운전을 왜 하냐고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험으로 만일의 사고를 대비한다. 실제로 복지국가로 소문난 스웨덴에서는 1990년대에 임신과 출산 양육의 위험을 사회적으로 함께 해결하는 국가 가정 보험 제도를 만들었다.
자동차 운전에 따르는 사고가 가져올 개인적 위험은 사회적으로 대비하면서 국가와 사회 존립의 기반이 되는 남녀 간의 사랑이 가져올 개인적 위험은 왜 사회적으로 대비하지 않는가? 오히려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고자 출산하고 양육하는 미혼모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우리 사회이며 이를 방치하고 조장해온 것이 우리 국가라는 것을 봐야 한다.
둘째, 영아 시신 택배 사건에서 느끼듯이 한번 결혼했다가 혼자 사는 여성들의 사랑과 연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다.
가까운 가족들조차도 미혼, 이혼, 사별한 부모들은 다시는 사랑해서는 안 될 존재로 여기고 애 키우는 데만 정신을 쏟으라고 하거나,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저 애를 입양 보내라 한다.
성추행을 포함한 범죄인 성폭력과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불륜과 달리 인간적인 성과 사랑은 누구도 제한하거나 제한받아서는 안 되는 기본권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도대체 아빠는 어디에 있는가?
셋째, 누구도 살해된 영아의 아빠 책임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거하다 헤어진 후 산모가 되었고, 여전히 근처에서 살며 일하고 있었음에도 그 남성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책임을 느끼는지 인터뷰한 기사를 왜 볼 수 없을까? 그 기사에 대한 반응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이 댓글로 임신 미혼모에 대해 피임도 못 하고 안 하는 어리석은 여자라고 욕하지만, 사실 여성들의 피임 실천을 제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여성들이 사랑을 나누는 그 남성이라는 것은 여성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미혼부의 무책임성을 지적하고 나는 이렇게 안 해야겠다고 해야 남성 중심적인 성과 사랑도 돌아보게 된다. 그래야 책임을 지고자 하는 남성들의 개인적 결심을 지지해주지 않는 정치·경제·사회 현실과 제도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여성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임신한 불안정 노동자의 권리는…
A 씨가 생활고로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고 한 점을 보자. 이 여성은 출산 직전에 새벽 2시까지 일하고, 월세 25만 원의 고시텔에서 난방비도 없이 살고 전화 요금이 연체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법에는 임산부가 되면 경미한 노동으로 바꿔주고, 유급으로 산전 진찰도 받게 하고, 한 달 전부터는 출산 휴가에 들어가게 한다고 되어있다. 왜 이 임산부 노동자는 출산 직전과 출산 직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또 그러면서도 왜 생활고에 시달렸을까? 이 점을 밝혀야 한다.
첫째, 이 임산부 노동자가 일했던 식당처럼 미혼모이건 아니건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과 영세 사업장의 문제가 있다.
근로기준법과 '남녀 고용 평등 및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보장된 권리를 모든 임산부 노동자에게 적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이 문제라면 정부가 대책을 함께 세워줘야 하지 않나? 난임 가정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우면서 임신해서 일하는 여성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도 왜 지켜주지 않나?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은 이 사건이 자신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기나 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어떤 여성도 임신·출산으로 차별받지 말아야 하고,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임신·출산·양육을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여성 차별 철폐 협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법을 지켜야 하는 기관이 나서지 않았다.
부모가 누구든 모든 아이는 차별 없이 생존권과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의 4가지 권리를 보장받게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의 가입국이라면, 어떤 아이들은 정규직 부모에게서 태어나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받은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고, 어떤 아이들은 비정규직, 영세 사업장에 일하는 엄마에게서 태어났다고 빈곤 상태에 내몰리는 차별을 방치해서 되겠는가?
임신했다고 차별하는 노동 현장
둘째, 미혼모 노동자를 차별하는 직장이 문제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보장하기는커녕,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다고 해고하고, 사직을 권고하는 직장 상사가 아직 많다. 뻔뻔하다고 수군거리는 직장 동료들이 여전히 많은 상태에서, 자신도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미혼 임신 노동자들은 남들이 알기 전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임신 4-5개월에 직장 그만두고, 있는 돈 다 써서 출산 직전이나 직후에 벼랑 끝에 몰리는 미혼모들이 참 많다. 직장 잃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는데 생활비가 떨어지면 만삭이 된 임산부라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밤늦은 시간에 포장마차에서 일하고, 아이 방금 낳은 임산부라도 부업을 할 수밖에 없다.
신청주의 장벽 높다
셋째, 자기가 신청해야만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문제다.
미혼모 지원 제도와 긴급 지원 제도 모두 본인이 신청해야 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로 사각지대에 있는 복지 대상자를 발굴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모든 복지 지원 제도는 공급자인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대상자에게 알려줄 의무가 없다. 알려줄 의무가 없으니 홍보할 의무도 없다. 그래서 지원 대상에 해당해도 본인이 알아서 신청하면 받는 것이고 몰라서 신청하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복지제도가 잔여적 복지제도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다, 대상자에게 알릴 의무조차 없으니, 정보 접근권이 낮은, 더 힘든 사람들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사건의 임산부는 많은 사람들이 임산부라는 점을 알 수 있는 식당이나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였다. 그럼에도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넷째, 지원 제도조차 그림의 떡인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미혼모들이 만삭까지 일하면서도 난방비와 전화 요금조차 못 낼 정도의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도록 전국에 정부 지원을 받는 미혼모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미혼모 시설의 소관법률인 '한 부모 가족 지원법'에서는 미혼모를 결혼하지 않은 상태(비혼)가 아니라,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미혼) 상태라 규정한다. 이 때문에 이혼이나 사별한 여성이 아이를 가졌을 경우에는 법적 미혼모 시설에 입소할 수 없다. 광역시도에 한두 개 있는 미혼모 지원 거점기관의 긴급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사건의 여성은 법적 이혼도 안 되어 있는 상태라, '한부모가족 복지시설(모자원)'에도 들어갈 수 없다. 같은 이유로 부양 의무자가 있다 하여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대상자가 될 수도 없다. 경제적 문제로 별거 상태이니 긴급지원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계단에서 진통을 느껴 아이를 낳은 것을 보면 출산일을 정확하게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산부인과 진찰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임산부라면 누구나 50만 원 상당의 의료비를 사용할 수 있는 고운맘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난방비도 내지 못할 정도면 건강보험료도 연체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고운맘카드로 발급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지원제도조차 이 여성을 모조리 피해갔을 때 이 여성이 과연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을까? 어떤 법학 교수는 국가가 낙태를 막았으면 어떤 경우에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국가가 무책임하다고 한다. 완전히 동감한다.
출생등록제 시행해야
마지막으로 영아의 입장에서 현행 출생신고제의 문제를 살펴보자.
만일 이 여성이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친정어머니에게 좋은 곳으로 보내 달라 부탁을 하지 않고 은밀히 시신을 치웠다면 이 사건은 드러나지 않고, 이 여성이 구속되어 처벌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아이가 태어났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현행의 출생신고제는 출생 후 한 달 이내에 부모가 신고하게 되어있다.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신생아에게 국가의 보호가 없는 이 한 달은 무척 위험할 수 있다. 이 기간에 아이는 버려질 수도 있고 불법 입양이 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흔적조차 없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유엔 아동 권리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제7조에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지며,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하여 양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우리나라는 미혼모들을 포함하여 대부분 병원에서 출산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출생 등록을 하면 된다. 부모의 뜻과 상관없이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자동 절차로 출생 등록을 시킨다면 영아 유기와 불법 입양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임신부터 출산까지 병원을 전혀 가지 않는 경우에는 출생 등록도 안 되니 위험성을 없앨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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