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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소길댁' 이효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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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결혼식, '소길댁' 이효리처럼?

[함께 사는 길] '인스턴트' 결혼은 이제 그만~

혼인 적령기에 접어든 건지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시집·장가를 가고 있다. 축하를 건네기 위해 주말이면 종종 예식장을 찾곤 하는데, 몇 번의 결혼식에 다녀본 결과 나는 신혼부부라는 게 공장에서 찍어내는 건 줄 알았다. 개성 있는 결혼식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긴 결혼생활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예식보다 결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앞둔 친구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혼부부들의 속내를 들어보면 그것도 아닌 게, 결혼식을 준비하며 대부분 많이 싸웠다고 한다. 심지어는 결혼 준비과정에서 헤어지는 예비부부도 있다. 지난 주말의 결혼식과 이번 주말의 결혼식이, 심지어는 30분 전 치러진 어느 부부의 결혼식과 지금 내가 참석한 결혼식이 사람만 바뀌었을 뿐 판박이 같은, 이른바 '인스턴트' 예식을 소비하는데도 왜 예비부부들은 이리도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인스턴트를 택한 간편함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사치인 건 알지만, 옆집만큼은 해야…

우선 대부분의 신혼부부와 혼주는 국내 결혼 문화가 호화롭고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2013년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결혼 문화에 대한 인식을 보면, 무려 85퍼센트(%)의 응답자가 '결혼 문화에 호화사치 풍조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데도 작금의 상황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과소비에 동참한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괴리의 이면에는 체면을 중시해 남만큼 써야 하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 앞선 조사에서 신혼부부와 혼주들은 결혼 문화의 사치풍조 원인으로 '남만큼 호화로운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는 의식(27.6%)이 가장 크다고 답했으며, 그 외에 '물질만능의 사회풍조'(24.6%), '사회 지도층의 과시적 혼례'(21.5%), '건전한 결혼모델 부재'(17.4%) 등을 꼽은 바 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 분석학자 라캉은 말했다. 이는 생존과 사회화를 위한 인간 본성의 요소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의 주체성을 앗아가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각종 매체를 통해 쉽게 남과 비교해볼 수 있는 오늘날에는 부정적 영향이 커져만 가고 있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겪는 이 고통을 동반한 욕망이 진정 나의 욕망인지 부모님의 욕망인지 이웃의 욕망인지 혹은 웨딩 업체의 욕망인지를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실제 한 지인은 결혼을 준비하며 다른 이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걸 그만뒀다고 고백한다. 계속해서 남과 비교하게 되니 예비부부가 처음 원하던 결혼식 방향과 자꾸만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 이산화탄소 배출을 상쇄하는 러브 그린. ⓒ그린웨딩포럼

그렇다면 실제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결혼 비용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한국소비자원의 조사를 보면 주택 마련을 제외한 비용 즉, 약혼식부터 함들이·청첩장·예단·예물·예식비용·신혼여행 비용·이바지 비용 등 모든 절차를 빠짐없이 이행했다 가정한 경우, 가장 저렴한 1인당 비용은 334만 원으로 나타났으며 최대는 3억3650만 원으로 나타났다. 똑같이 한 번 하는 결혼식인데, 100배나 차이가 난 것이다. 여유가 충분하다면야 사회적 낭비 문제로 그치겠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부담이 되면서도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하고 여기에 '인생에 한 번 하는 것'이란 생각마저 겹쳐 무리하게 된다. 허영심에 신혼부부에게 남는 건 거의 펼쳐보지도 않을 사진첩과 부담뿐이다. 부담은 곧 불행이 되기 쉽다.

공공시설에 주목하다

예물, 예단, 봉채, 꾸밈비, 함, 이바지, 답바지 등 결혼의 벽은 높고도 험하다. 그런데 실제 결혼한 부부들은 시간이 지나자 결혼 과정에서 한 낭비를 대부분 후회하고 있었다. 결혼 정보 회사 듀오웨드의 설문조사를 보면, 신혼부부들은 축소하고 싶은 가장 후회하는 결혼준비 품목으로 예단(41.3%)을 꼽았다. 그 뒤로 예물(18.2%), 웨딩패키지(16.4%), 혼수용품(10.1%) 순이다. 특히 이 조사에서 기혼자의 70%는 "다시 결혼준비를 한다면 비용을 최소화하겠다"라고 답했다. 다행히 예단과 예물 등은 점점 간소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선택권이 거의 없어 울면서도 겨자를 먹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예식장과 피로연,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 대여·메이크업'의 앞 글자) 등 예식 비용이다. 예비부부들은 웨딩 업체 직원이 백지를 들고 와서는 "원래는 얼마인데 얼마까지 맞춰 주겠다"며 부르는 값에 따를 수밖에 없다. 예단과 예물이 간소화돼도 전체 예식비용이 쉽게 줄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데 일반 예식장은 태생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주중 5일은 비워두고 주말에만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우리나라의 과비용 예식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은 공공시설 결혼식에 주목했다. 그린웨딩포럼 이광렬 대표는 "본인이 아무리 예산을 절감하려 해도 웨딩 컨설팅 업체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예식장을 예약하려고 찾아가도 그들이 갖고 있는 기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는 15년 전부터 공공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다니며 주말에는 예식홀로 개방할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비협조적이었지만,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고 주말 공간에 대한 여유가 생기면서 공간을 개방하는 공공시설이 늘었다. 이 대표는 "공공기관(시설) 예식은 일반 예식보다 대략 60~70퍼센트 정도의 비용으로 진행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서울시 시민청에서 결혼할 경우 대관료와 웨딩연출비가 모두 무료이기에 본식 비용(드레스, 턱시도, 메이크업, 본식 촬영 비용)인 110만 원만 내면 결혼할 수 있다.

다양한 결혼식 가능해져

공공시설을 이용한 결혼식은 작은 결혼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장점도 있다. 기존 예식장이나 예식 업계의 경우 피로연 보증인원(최소인원)이 있어 작은 결혼식이 불가능했으며, 많은 낭비를 초래했다. 하지만 공공시설을 이용한 결혼식은 하객 수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알찬 결혼식을 올릴 수 있으며, 기호에 따라 콘서트나 파티 형식으로 구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 화분 꽃길로 꾸며진 공공기관 예식장 전경. ⓒ그린웨딩포럼

물론 공공시설 결혼식에도 부족한 면은 있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작은결혼정보센터 사이트에서 조회할 수 있는 공공시설 예식장은 총 148개나 되지만, 실제 이용할만한 경쟁력 있는 공공시설 예식장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와대 사랑채의 경우 전시장으로 쓰고 있는 곳을 예식장으로 대여하는 곳인데, 아무런 기물도 없거나 지원되지 않아 예식장으로 세팅하는 데만 200만 원이 든다. 비용이 일반 예식장보다 더하면 더했지 경쟁력이 없다." 이 대표는 서울 기준으로도 안내할만한 곳이 20개가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대부분의 공공시설은 제공되는 서비스가 부족하다 보니 소비자가 공공시설의 공간만 이용하고 다른 준비는 다시 웨딩 컨설팅 업체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공공시설 개방의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기존 결혼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런 변화와 시도는 단순히 검소한 결혼식, 허례허식이 사라진 결혼식을 추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비부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기도 하고 개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쌍의 커플이 결혼식을 치르게 되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4395킬로그램(kg)이나 발생하는데, 그린웨딩포럼의 러브 그린 캠페인에 동참하면 결혼식에 일회용이 아닌 화분으로 된 꽃길과 다시 심을 수 있는 뿌리 부케, 재생용지 청첩장을 이용하는 한편 숲 가꾸기에 기부하는 등 참여를 통해 결혼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상쇄할 수 있다. 평소 지구의 미래에 관심이 많았던 커플이라면 선택할만하다.

다양한 시도는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3년 가수 이효리는 옥수수와 한지, 쐐기풀 등 자연에서 뽑아낸 섬유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했다. 대중에 알려진 그녀의 삶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사회적기업인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작품이었는데, 친환경 웨딩드레스 제작으로 시작한 이 업체는 최근 동네 맛집, 동네 미용실 등 지역 인프라를 활용해 결혼식을 진행하는 '마을결혼식'도 추진하고 있다. 기왕 할 결혼이면 우리 마을에 보탬이 되고, 사라져 가는 동네 상권을 지키는 동시에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렇게 친환경 드레스와 소품을 이용하거나 마을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기존 결혼식 비용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저렴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결혼식을 손수 준비했던 당사자들의 만족도 매우 크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 의미 없는 낭비로만 점철된 지금의 결혼 문화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나의 결혼식을 꿈꾸자

앞선 사례들은 하나의 예시일 뿐 답은 아니다. 따라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라면,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결혼식을 원하는지 자문해보길 권한다. 글머리에 밝혔듯 인스턴트도 좋다. 하지만 인스턴트의 본질을 잃어버린 값비싸고 낭비 일색의 인스턴트 결혼식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의 결혼식도 아닌 나의 소중한 결혼식임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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