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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국수' 권하는 박근혜 정부"

[주간 프레시안 뷰] "강남 재개발 투기 열풍, '찻잔 속 태풍' 그칠 것"

"불어터진 국수"

"지난번 부동산 3법도 작년에 어렵게 통과됐는데 비유하자면 아주 퉁퉁 불어터진 국수".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23일 수석비서관회의) 입니다. 이어서 또 "그것을 그냥 먹고도 경제가, 부동산이 힘을 좀 내가지고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활성화되고 집 거래도 많이 늘어났다"며 "불어터지지 않고 아주 좋은 상태에서 먹었다면 얼마나 힘이 났겠는가"라며 한탄까지 했죠.

이 "불어터진 국수"는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어떤 이는 국민은 불어터진 국수라도 많이 먹기를 원한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서민은 그런 국수 한 가닥도 먹지 못했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대통령 지지자들은 절묘한 비유라고 환호를 보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부동산 3법 덕분에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둘째, 서비스발전 기본법, 의료법 개정안, 관광진흥법 등 규제완화와 관련한 법들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셋째, 앞으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건 야당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우선 "불어터진 국수"=부동산3법이란,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주택법' 개정안, 2017년까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의 유예, 그리고 재건축 조합원 주택수를 3주택까지 허용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말합니다. 누가 봐도 건설 경기를 부추기려는 정책들이죠.

이 부동산 3법은 작년 12월 29일 본 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지금은 총리가 된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나섰습니다. "부동산 3법 의결과 관련하여 야당 측에서 반대 토론과 함께 반대 표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 소속 의원님은 한 분도 빠짐없이 지금 즉시 본회의장에 입장하시어 찬성 표결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문자를 보냈죠.

과연 새해 들어 첫째, 재건축 아파트를 둘러싸고 투기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근접하고 심지어 매매가격보다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면서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 말을 따라 집을 사는 사람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5년 들어 서울 아파트값은 0.35% 올랐습니다. 서울에서는 서초(0.86%), 강동(0.78%), 강남(0.48%), 송파(0.47%) 순으로 실제 매매가격이 올랐는데 하나 같이 재건축이 유력한 지역이죠. 곧 조합이 구성될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는 아예 매물이 자취를 감췄답니다. 한편 강북의 노원(0.44%), 서대문(0.36%), 강서(0.35%), 성북(0.34%)의 경우는 중소형 아파트 위주로 값이 올랐는데 이 경우는 두 번째, 즉 전세의 매매 전환에 따른 가격 상승이겠죠.

문제는 전세시장입니다. 서울(1.63%), 신도시(0.56%), 경기·인천(0.84%)이 모두 올랐는데 상승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재건축을 하면 기존 주민들이 집을 구해야 하니까 앞서 말한 첫 번째 재건축 지역의 전셋값은 3%p 이상 오르고 있습니다(☞ <건설타임즈> 부동산시장 '봄바람' 강남권 아파트값, 매매·전세 쑥쑥↑).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4년 12월 말 전국 아파트의 전셋값과 통계청의 2014년 2인 이상 도시 근로자 가구 평균 소득을 비교해 보면, 서울의 전셋값 평균은 3억3849만원으로 지난해 도시 근로자 가구의 연소득 5682만원의 5.96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근로자가구 6년치 소득). 서울의 소득 대비 전셋값 비율은 2004년 4.13이었는데 10년 만에 1.83이나 더 오른 겁니다. 한 푼도 안 쓰고 6년을 모아야 겨우 전세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과연 정상일까요?

한편에서는 또 다시 "대박의 꿈"이,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민들의 "밀려 밀려 주택 구입"이 집값 상승과 이보다 더한 전셋값 상승을 부르고 있는 겁니다. 이게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이 환호작약할 현상일까요? 나아가서 주택시장 규제 철폐에 이어 의료와 관광 서비스 산업 규제철폐가 과연 서민들에게 "먹음직한 국수"일까요?

"독이 든 국수"

이런 국수는 한 가닥이라도 먹으면 배탈이 나고, 배부르도록 먹으면 목숨마저 위험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전혀 국수에 손도 안 댄 일반 시민마저 폭탄을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부는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는 기대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과연 앞으로도 집값이 계속 오를 수 있을까요? 30년 이상 경제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장기적인 인구구성의 변화, 장기 경제성장율 추이, 단기 경기 예측 모든 면에서 단호하게 "No"입니다.

박정희 시대 이래 한국 경제정책 기조였던 수출-투자주도 성장은, 세계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미국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번엔 중국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유럽은 EU의 붕괴마저 걱정하고 있을 정도인데 어떻게 투자가 과거처럼 두자릿 수 증가율을 보일 수 있을까요? 2년째 원화 표시 수출 금액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수출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소득과 소비 증가율 역시 추세적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2.1%였고, 소비증가율은 이보다 더 낮아서 1.5%에 그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빈부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을 쓰지 않는 한 소비가 늘어날 전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언제, 얼마나 인상할지가 문제입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고용을 중시하는 학자 출신이라서 조기에(예컨대 6월에) 큰 폭의 인상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 화요일(24일, 미국 시간) 미 상원 은행소위에서 옐런 의장은 적어도 3월과 4월의 두 차례 공개시장위원회(FOMC, 우리의 금융통화위원회에 해당)에서는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며, 이른바 '선제 안내'(forward guidance) 용으로 사용했던 "신중하게(patient)"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도 금리인상의 신호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위원회가 열릴 때마다("meeting by meeting basis") 금리인상을 고려하겠다고 밝혀서 경제상황에 따라 금리를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미국 금융시장은 6월이 아닌 9월이나 10월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으로 해석했습니다).


문제는 현재 한미간 2%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 때,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자본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입니다. 지금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다면 거시건전성규제 3종 세트를 강화하고 미리 금리를 낮춰서 자본유입을 줄여야 할 텐데 박근혜정부는 오히려 거시건전성 규제를 완화할지도 모릅니다. 사후에 자본유출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를 따라 올린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GDP 대비 가계부채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꿈틀대기 시작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올라갈 거라고 예측하는 건 망상에 가깝습니다.

현재 강남 재개발 지역 투기 열풍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만일 시중의 유휴자금을 건설로 유도하고 중산층에게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정책이 성공한다면 그건 "독이 든 국수"가 될 겁니다. 빚을 더 내지 않고, 평생 살 집을 사는 건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금리가 낮다고 빚으로 주택을 구매하는 건 "독이 든 국수"를 먹는 겁니다. 문제는 그 국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일반 시민마저 폭탄을 맞게 될 거라는 데 있습니다.

나아가서 의료법 개정이나 서비스발전 기본법 등 남아 있는 국수는 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습니다. "제발 경제 좀 그냥 내버려 두세요" 대통령에게 품는 단 하나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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