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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앞으론 파견업체 통해 취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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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앞으론 파견업체 통해 취직해라?

[해설] "나이·연봉 많으면" 무조건 파견?

같은 교사인데, 연봉이 많아지면 파견업체에 수수료를 줘야한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만 55세가 넘으면 파견 노동자 신세가 된다?

정부가 이런 내용의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현행 32개 업종으로 제한돼 있는 파견허용 업종의 빗장이 사실상 완전히 풀어지는 효과가 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평생 파견 노동자로 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욱이 어떤 개인의 '인적 속성'을 특수화해 파견을 허용하는 입법례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55세 이상은 파견으로만 일해라?"…고령자부터 파견의 빗장 풀고 그 다음은?

정부가 지난달 29일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에는 "파견제한 합리화"라는 대목이 들어 있다. "선진국에 비해 경직된 파견 대상 및 업종 제한에 대한 규제를 합리화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이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의 재취업 활성화를 위해 파견 허용을 확대하고, △인력난이 심한 업종을 대상으로 파견규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에 담긴 핵심은 결국 현행 32개 업종으로 제한된 파견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전면적인 확대는 쉽지 않다. 노동계 등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회로를 택해,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을 우선 내세웠다. 고령자는 이미 파견법이 정한 기간제한 2년의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에 더해 고령자의 경우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및 절대금지 업무"를 제외하고, 전체 업종에서 파견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55세 이상 노동자가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고 취직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는 셈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이미 65세 이상은 거의 다 비정규직이고, 55~64세에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매우 높게 나오는데 고령자 파견을 전면 허용하면 그나마 있는 정규직 일자리마저도 다 파견 일자리로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집행위원은 "고령자부터 파견의 빗장을 열고, 그 다음은 50세 이상 준고령자, 그 다음은 공공부문 취업이 제한되는 35세 이상으로 확대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유선 소장 역시 "고령자에 대한 파견이 보편화되고 나면 55세 이하도 파견을 규제하는 방어 논리 자체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사실상 전연령대로 파견을 제한없이 풀기 위한 전초 작업 아니냐는 시선이다.

'고소득 전문직' 파견 빗장 풀어주면 그 불똥은 어디로?

▲정부가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파견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파견 허용은 더 기이하다. 정부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한국표준직업분류 상 관리직(대분류1)과 전문직(대분류2)에 대해 파견을 허용하고, 기간제법과 동일하게 기간제한 2년 예외로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표준직업분류상 관리직과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직업은 40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현재 파견법 시행령이 허용하고 있는 파견 허용 업종은 16개에 불과하다. 물론 '고소득자'라는 제한이 붙어있긴 하지만, 엄청난 비율로 파견 허용 업종이 확대되는 꼴이다.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대책에는 '고소득'에 대한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간제법과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하면 연봉 5400만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기간제법 시행령은 비정규직 사용 기간제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고소득 전문직'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다. "한국표준직업분류상 대분류2(전문직) 직업에 종사하는 자의 근로소득 상위 100분의 25"가 그것이다. 즉, 전문직 종사자의 상위 4분의 1에 들면 '고소득'인 것이다. 연봉 5400만 원은 이 계산의 결과물이다.

이에 속하는 직업들을 살펴보면, 판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등 이른바 '사'자가 들어가는 전문직과 기업 대표이사, 고위임원,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 대학교수, 연구원, 번역가, 통역가와 같은 직업들이 포함돼 있다. 이런 직업들은 이미 사실상의 프리랜서로 자유로운 이직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굳이 파견업체에게 일정액의 수수료를 주면서 직업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인 셈이다.

결국 이 정책이 도입되면 불똥은 '가짜 전문직'에게 튈 수밖에 없다. 한국표준직업분류상 관리직과 전문직에는 초중고등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 보험 및 금융 관리자, 자동차 부품 등 기술 영업원, 기자 등도 포함돼 있다. 이 직업에서 연봉이 낮을 때는 파견이 허용되지 않다가, 연봉이 높아지면 파견업체를 '끼고' 취업해야하는 일이 벌어지는 꼴이다. 김유선 소장은 "결국 교사도 인력업체 통해서 뽑겠다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비록 제조업은 파견이 금지되고 있지만, '전문가'에 대한 폭넓은 해석을 통해 직접 생산 라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가 파견 노동자로 채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민규 기획위원은 "자동차 공장의 경우 자동차 품질관리 업무, 기계장치 수리지원 업무, 물류배송 전문 업무, 포장 선적 업무 등도 모두 전문가로 분류해 얼마든 파견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특정한 인적 속성에 파견을 허용하는 입법례, 유례 찾기 힘들다"

문제는 또 있다. 노동부 계획처럼 "'특정한 인적 속성'에 따라 파견을 허용하는 입법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민규 기획위원은 "기간제법은 기간제로 일하고 있는 어떤 사람 중심의 법이지만, 파견은 특정 업무를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쉬운 말로 이 업무가 연봉 5400만 원이 넘는 업무인지를 따진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비판했다.

파견 허용은 보통 업종별로 이뤄지며,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파견을 허용하는 업종을 특정하는 방식(포지티브 리스트)과 파견을 금지하는 업종을 명시하는 방식(네거티브 리스트)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현재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정부 계획대로라면 고령자와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게다가 '기간제한 2년'까지 예외로 하게 되니, "사실상 평생 파견이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규제 완화"라고 오민규 기획위원은 비판했다.

김유선 소장도 "불법파견 문제는 거의 모든 재벌 기업들이 맞딱드리고 있는 문제인만큼, 정부의 진짜 목적은 비정규직 사용기간보다 오히려 파견의 벽을 허물고 사내하청을 양성화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파견 업종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노동부 관계자는 "그렇게 보면 고령자도 마찬가지"라며 "특정한 인적 속성을 기준으로 풀어주자는 것인데 파견 근로가 열악한 일자리라는 인식이 많아서 전문직까지 늘려 이런 인식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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