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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시' 중용한 정치 지도자들, 그들의 말로는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십상시와 중국 '환관' 정치의 교훈

'십상시'(十常侍)라는 중국 역사 속의 단어가 연말연시의 술자리의 안줏거리가 된 지 오래다. 한나라 말기 황제의 권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열 명의 환관을 뜻하는 말로서, 정윤회 씨 등 현 대통령 비선(秘線)들의 국정개입 의혹을 빗댄 말이다. 십상시로 대표되는 중국의 환관 정치는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현재 한국의 사건에 이 단어를 사용할까?

중국 환관의 역사

'환관'(宦官)은 거세된 남자로서 궁중에서 황가의 잡무를 맡던 말단관리를 가리킨다. 태감(太監)·시인(侍人)·엄인(閹人)·중관(中官)·내시(內侍) 등 다양한 명칭이 존재한다. 이는 고대 그리스, 이집트 등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우리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역대 환관들에 의한 전횡은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이들은 재물욕, 권력욕 심지어는 색욕까지도 일반인보다 강했다고 하는데, 그 원인으로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왕조 중 진(秦), 한(漢), 당(唐), 명(明)의 멸망은 환관의 전횡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목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바로 진의 환관 조고(趙高)의 전횡을 가리키는 유명한 말이다. 조고가 어느 날 황제 앞에 신하들을 모아놓고 사슴을 끌고 와 이것이 말이라고 하자, 여기에서 조고의 권세에 눌려 아첨하는 자들은 조고와 같이 말이라고 말하고, 양심 있는 관리들은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답했다고 한다. 그 이후 자기의 말에 반대하며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말했던 이들은 모두 조고에게 처형당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욕 '바카'(ばか)가 바로 지록위마를 줄인 '마록'(馬鹿)에서 비롯된 것으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의 십상시(十常侍)는 삼국지에도 등장하고, 최근 널리 알려지게 되어 그다지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당대 환관의 발호는 더욱이 심해져 심지어는 '문생천자'(門生天子)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즉, 환관의 문하에서 나온 황제라는 뜻으로, 환관이 황제의 권세를 등에 업은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마음대로 황제를 즉위, 폐위했다는 말이다.

당의 대표적인 환관으로는 당 현종에게 양귀비를 소개시켜주며 승승장구했던 환관 고력사(高力士)를 들 수 있다. 이 이후 당은 '안사의 난'과 절도사의 난립, 환관의 발호 등으로 명목만 황실을 유지하다가, '황소의 난' 이후 급성장한 주전충(朱全忠)이 환관을 소탕하겠다라는 명분으로 당 황실에 쳐들어가 결국은 망하게 되었다.

명대에 이르러 환관의 전횡은 극에 이른다. 명대에는 황제의 권한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특무기관인 금의위(錦衣衛)와 동창(東廠)·서창(西廠)을 설치해 신하들을 감시했다. 과거 우리의 '안기부'와 비슷한 성격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특무기관들의 장으로 환관을 삼았다는 것이다. 특히 명 말의 위충현(魏忠賢)과 같은 환관은 이 특무기관들을 이용하여 양심 있는 정치가들의 모임인 동림당(東林黨) 등을 대대적으로 탄압하여 명의 멸망을 가속화하였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여 황제를 칭송하는 '만세'(萬歲)보다 바로 한 단계 아래인 '구천구백세'(九千九百歲)로 불리었다고 한다.

환관 전횡의 원인과 그 교훈

사실 중국의 많은 황제들은 환관의 전횡이 곧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璋)은 미천한 신분에서 어렵게 천하를 얻은 이였다. 그는 명의 기반을 탄탄히 하기 위해서 역사에서 많은 교훈을 찾았고, 그 결과 환관의 위험성을 깨달아 "內臣不得干預政事, 預者斬"(환관은 정사에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하는 자는 벤다)라는 철패(鐵牌)를 궁문에 세워두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결국 환관을 중용하여 그의 바람과는 달리 명을 멸망으로 몰고 갔다.

그럼 황제들은 대체 왜 환관을 중용했을까? 물론 황제 스스로가 게을러서 환관들에게 정치를 아예 맡겨버린 사례도 있지만, 중국 환관 전횡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되는 흐름이 있다. 어린 황제가 등극하면 보통 황제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외가 친척', 즉 외척(外戚)들이 권력의 요직을 독점한다. 이들은 장성한 황제가 친정(親政)을 하는데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그럼 황제는 외척들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주변에 있는 '심복'(心腹)인 환관들을 중용하게 된다. 그 원인은 앞서 말했듯이 환관은 황제의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적이지 못한 이들이기 때문에 황제는 환관에게 어느 정도 안도감을 가지며 그들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이용하여 외척 세력을 견제하다보니, 결국 이들에게 인사권, 재정권, 군사권 등 과도한 권한을 주게 되어 후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환관을 중용하여 목적을 달성하지만,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어 갔던 것, 이것이 바로 환관에 의해 망했던 중국 역대 왕조의 흐름이다.

명대에는 사례감(司禮監)의 병필태감(秉筆太監)이라는 환관의 직책이 있다. '황제의 붓을 관리하는 환관'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바로 환관의 최고 직책이다. 각지에서 상소문 등이 올라오면 황제가 일일이 확인하고 빨간색으로 자신의 의견을 적는다. 이를 주비(朱批)라고 하는데, 바로 황제의 결정권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기에서 국가의 대사가 결정된다. 하지만, 황제들은 이 권한을 병필태감에게 맡겨 국정을 환관들에게 맡긴 것이다.

이렇게 능력이 검증된 관리들에게 국정을 맡기지 않고, 그저 자신의 심복인 '환관'을 중용하여 나라를 멸망으로 내몰았던 어리석은 황제들은 결국 망국의 길을 걷게 되어 끊임없는 후세인들의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나라야 어찌 되든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서만 살아간 이들은 결국 '천고(千古)의 죄인'이 된다는 사실은 바로 이렇게 역사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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