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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불평등'…"하청이 먼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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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불평등'…"하청이 먼저 죽는다"

인권위 조사…조선업·철강업 사내하청 산재사고의 92% '사실상 은폐'

죽음은 정말 모든 이에게 평등한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드라마 <미생> 속 장그래도 모두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죽음의 위협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심지어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두 노동자를 비교해도 이런 불평등은 드러난다. 사고가 늘 도사리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어도, 그 소속이 원청이냐 하청이냐에 따라 일하다 다치거나 죽을 가능성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관련 기사: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와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주영수 교수)이 함께 실시해 16일 발표한 '산업재해 위험직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이 조사는 하청 노동자의 산재 실태 조사에 집중된 것이지만, 현장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실제 현장 노동자가 느끼는 '죽음의 불평등'을 확인할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 심각…철강업 하청 노동자 92% "하청 노동자의 산재 위험이 더 높다"

이번 조사는 조선업과 철강업, 건설플랜트의 세 가지 업종에 한해 시행됐다. 연구팀은 각 업종별로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고, 그 밖에도 원청 노조 간부, 원청 안전 담당자, 안전보건공단 실무진을 상대로 집단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또 안전보건분야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도 수행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설문조사다. 이 조사에 응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791명에 달한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현대제철 당진사업장, 현대하이스코 등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충남 및 여수 지역의 건설플랜트 하청 노동자들이 대상이 됐다.

조사 결과를 보면, 작업장 내에서 원청과 사내하청의 산재 위험 정도를 묻는 질문에 "하청 노동자의 산재 위험이 더 높다"는 대답이 조선업은 84.3%, 철강업은 92.3%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물론 이는 주관적 응답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 스스로 사업장 내에서 산업재해 위험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위험의 격차는 해당 노동자의 주관적 느낌만이 아니다. 비록 "원청과 하청의 산재실태에 대한 공신력 있는 비교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통계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현실을 엿보게 해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인영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2012년부터 2014년 6월까지 조선업 중대재해 현황을 분석해 본 결과, 이 기간 동안 사망한 전체 노동자 69명 가운데 83%, 53명이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작업장 내에서 원청과 사내하청의 산재 위험 정도를 묻는 질문에 "하청 노동자의 산재 위험이 더 높다"는 대답이 조선업은 84.3%, 철강업은 92.3%로 나타났다.ⓒ프레시안(여정민)


왜 하청 노동자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까? 이는 조사 대상 업종의 심각한 하청 구조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 더 힘들고, 더 위험한 일은 모두 하청 노동자의 몫이 된다. "원청은 주로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조건 속에서, 실제 "현장 작업은 하청 업체가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위험도 함께 외주화된다.

더욱이 "하청업체는 작업조건 및 작업량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원청은 무조건 '공기'를 맞추라고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불안전 행위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위험 상황에서도 설비 가동을 멈추거나, 작업을 중지할 권한"이 하청 노동자는 물론 하청 업체에도 없다는 점도 하청 노동자의 산재율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건설플랜트 산재사고 80%, 조선·철강업의 산재사고 92%가 '사실상 은폐'

실제 산업재해는 더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연구팀이 산재를 경험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업무상 부상이나 질병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살펴본 결과,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는 응답은 매우 적었다.

조선업에서는 응답자의 7.2%만이 산재보험으로 치료비를 충당했고, 철강업에서도 그 비율은 7.9% 수준이었다. 건설플랜트 업종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비율이 높아 20.3%로 나타났다.

그러나 건설플랜트 업종에서조차 산업재해로 처리 받지 못한 비율이 80%나 되는 것이다. 조선업과 철강업은 산재 사고를 당한 하청 노동자의 무려 92%가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던 셈이다. 이런 결과를 뒤집어 보면, 이들 업종이 사내하청 노동자 산재 사고의 대다수를 사실상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산재가 발생하면 해당 하청 업체가 원청과 재계약이 어렵다는 점이 이같은 은폐의 한 이유로 꼽힌다.

'불이익'에 대한 우려는 노동자 개인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산재 처리율이 높은 건설플랜트 사내하청 노동자는 면접조사에서 "만약 산재로 처리할 경우 그 다음 현장에 취업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공상처리를 받는 경우에도 복직이 안 되고 퇴사시키는 것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치료비 자체를 개인이 부담하는 경우도 많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어느 업체로부터도 공상처리조차 받지 못한 비율을 보면 그렇다. 조선업 산재 경험자의 28%, 철강업 산재 경험자의 36%, 건설플랜트업 산재 경험자의 19%가 산재처리는 물론이고 공상처리도 받지 못하고 개인 의료보험으로 치료비를 충당했다.

과연 이 모든 죽음이 '막을 수 없는' 것이었을까?

이런 사고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일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대답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조선업에서는 조사에 응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59.5%, 건설플랜트업에서는 41.2%가 충분한 안전조치 없이 작업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위험한 일을 하는 근로자의 안전장비 지급 및 착용에 대한 사업주의 관리감독 의무를 강화하고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전문가 집단에서, 이 대목은 그 필요성도, 시행 가능성도 가장 높은 대안으로 꼽혔다.

협력단도 "사업장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인 원청업체의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실효성 있는 수준의 특별법 제정 혹은 기존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처벌 규정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협력단은 그밖에도 △유해위험업무 하도급 금지의 제도화, △'물량팀 등' 다단계 하도급 행태 적극적 금지, △하청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 등 기본조치권한 부여, △사업장의 상시근로자 수 기준에 따른 원청의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프레시안(여정민)


협력단의 연구책임자였던 주영수 교수가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한 얘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지난해 영국의 산업재해 문제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전체 6000만 국민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자가 1년에 200명이었다. 같은해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는 2000명이었다. 인구 규모는 영국이 조금 더 큰데도 그렇다. 불가피한 산재 사망의 비율이 과연 얼마일까. 영국의 수준을 보면, 결국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의 90%는 예방이 가능한 것 아닐까?"

연구 결과 발표회가 열린 이날도 제2롯데월드 건설현장에서 또 한 사람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산업재해 실태 조사, 노동부는 안 하는 것일까, 못 하는 것일까?

▲우리 정부는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여정민)
조사를 시행한 한림대 산학협력단이 내놓은 대안 가운데 한 가지는 "정기적으로 하청 노동자의 산재현황을 파악하고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날 토론회에 나선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산업재해 관련 공식 통계조차 없는 우리 현실을 개탄했다. 실제 현실을 모르면서 개선책을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원청과 하청의 산업재해 현실을 비교해 보여주는 통계도 없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왜 인권위에서 하는 조사를 노동부는 하지 않을까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임상혁 소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지에 대한 통계가 있어야 예방 조치가 나오고 정책이 만들어질텐데 우리는 그 기초조차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고용형태 공시제도가 부족하나마 시행 중인 것처럼,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 실태를 공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구를 수행한 주영수 교수도 "연구를 통해 만난 하청 노동자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보호를 받는 이들이었는데도 이렇게 모든 영역의 모든 일들이 하청화돼 있었는지 놀라운 수준이었다"며 "산업재해에 대한 조사가 과연 일개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일일까 싶었다"고 토로했다.

주영수 교수는 그러면서 "노동부가 주기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이고 그 결과가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것이 산업재해 문제 해결의 첫째 열쇠"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가 관련 조사를 해놓고도 여러 이유로 발표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은 "원하청 전반에 걸친 산업재해 실태 조사가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제가 알기로는 정부가 조사하고도 발표 안 한 자료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결국 이런 조사를 정부가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심지어는 하고도 모른척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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