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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없는 그들, 어느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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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없는 그들, 어느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비결은?

[살림이야기] 비닐하우스에서 유기농법으로 쌈채소 기르는 협업농장

흔히 친환경 유기농업의 기본방향은 ‘소농 규모의 가족농’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농촌의 60~70대 농부들은 잠자고 밥 먹는 것 빼고 하루 18시간을 농사일에 꼬박 쓴다. 젊은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노동강도로, 젊은 부부나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라면 농업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는 농사지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과연 가족농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협동조합 농장을 답으로 내놓은 이들이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유기농법으로 쌈채소 기르는 협업농장

충남 홍성 장곡면에 자리 잡은 ‘젊은협업농장’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상추·치커리·샐러리 등 싱싱한 초록빛깔 채소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세 사람이 주문받은 채소를 포장하여 상자에 담고 있는데, 이들이 19살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농장의 생산조합원들이다.

비닐하우스는 모두 9개 동(약 5290㎡, 1600평)으로,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3~4시에 끝낸다. 비닐하우스 재배는 계절을 타지 않아 365일 생산 작업을 하다 보니 농한기가 없다. 여기서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쌈채소와 샐러드채소들은 70%를 홍성유기농영농조합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지역 학교급식센터, 로컬푸드 매장, 지역장터, 식당 및 꾸러미로 나간다.

▲ 지역의 다른 농장 생산물과 함께 꾸리는 젊은협업농장 의 꾸러미. 샐러드채소, 유정란, 어린잎, 딸기(여름엔 방울 토마토), 통밀빵, 요구르트 등 여섯 종류를 월 2만 9천 원 에 격주 또는 매주 공급한다. ⓒ살림이야기(우미숙)

젊은협업농장은 땅도 없고 돈도 부족하지만 지역에서 농사짓는 사람들과 함께 농업인으로 인정받고, 색다른 방식으로 농작물을 기르고 공급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지난해 5월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소비자는 없이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조합원 8명과 협업농장 방식을 지원하는 조합원 20여 명으로 구성된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이다. 이사회는 농장 밖의 사람으로 박완 이사장(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이사장)을 비롯해 마을 이장과 지역 영농조합 대표 등 3명, 농장 안 사람 2명으로 구성됐다. 구체적인 실무를 점검하고 논의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방향을 함께 검토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2011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환경농업전공부 정민철 교수(현 젊은협업농장 생산조합원이자 이사)와 두 제자가 시작한 협업농장의 첫 이름은 ‘세 남자가 사랑한 쌈채소’였다. 홍성유기농영농조합의 비닐하우스 한 동을 빌려 농장을 시작했는데, 처음 정민철 교수와 함께했던 두 제자는 현재 독립하여 새로운 협업농장을 만들고 있으며 새로운 젊은 농업인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렇게 젊은 협업농장이 운영돼 온 게 벌써 3년째. 협동조합으로 선 1년을 갓 넘긴 새내기지만 협동조합 농장의 실험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셈이다.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먹고살 수 있을까?

첫 협업농장은 한국 농업 현실과 풀무학교 학생의 진로를 고민하며 시작됐다. 앞으로 젊은이가 농촌에서 생업을 찾고자 한다면 정말 잘 먹고 살 수 있을지, 그들을 맞이해 줄 농업 현실은 갖춰져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풀무학교 사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2000년도 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대부분 농촌에 적을 둔 경우가 많아, 졸업하면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 뒤를 이어 농사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들어오는 학생들은 농업과 관계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들이 농업 관련 교육을 받은 후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풀무학교가 풀어야 할 과제였다.

2001년 풀무학교에 환경농업전공부(전공부, 2년제 초급대학 과정)가 만들어진 것도 그런 상황을 타개할 목적에서였다. 전공부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정민철 이사는 그때를 회고하며 “좀 더 가르치면 될 것 같았다. 고등학교 수준으로는 아직 부족하니까. 하지만 조금 더 가르쳐 봤자 마찬가지였다”면서, 아무리 깊이 있는 농업교육을 한다 해도 현장과 멀어지기만 할 뿐 오히려 가르치는 행위만 남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사례가 필요했다. 젊은 사람들이 자본은 없고 농업 의지는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건가”라고 고민하며, 교육 현장이 반드시 학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단다.

▲ 젊은협업농장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들.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것들로 홍성유기농영농조합과 지역 학교급식센터, 꾸러미 등으로 나간다. ⓒ살림이야기(우미숙)

4명이 하루 18시간 할 일을 8명이 10시간씩

협동조합 농장이 가능하려면 365일 일정하게 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매월 수익을 나누고 농사를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논농사나 밭농사 대신 비닐하우스 재배를 원칙으로 한다. 비닐하우스 재배는 농사를 처음 시작하기에 비용이나 힘이 가장 적게 드는 장점도 있다.

젊은협업농장 규모만큼 농사지으려면 논농사는 약 3만3000㎡(1만 평)를 지어야 하는데, 8명이 그 넓은 논을 경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비닐하우스 9개 동에 농사짓는 것은 현재 농촌의 나이 많은 농부와 비교하면 노동강도는 1/2, 노동시간은 2/3밖에 되지 않는다. 나이 많은 농부처럼 하루 18시간씩 일한다면 적정 인원은 4명이지만, 젊은협업농장 사람들은 하루 10시간씩 8명이 일하는 것으로 정했다. 생산조합원의 월 수익은 80만 원 정도로, 일하는 시간과 강도가 안정되면 오전만 일하고 100만 원을 받는 것이 목표다.

농장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3개월은 점심만 제공하고 무보수로 일하게 한다. 더 하겠다면 1년간 일할 수 있으나 수익을 나누지는 않고, 지역 차원의 지원금으로 임금을 충당한다. 농사를 하고 싶다고 함부로 시작할 일도 아니고 얼마나 오래 잘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1년이 지나도 계속 농장에 남고 싶다면 앞선 사람들을 독립하게 하는 방법을 택한다. 농장을 일정 규모로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협업농장의 목적이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더 내는 게 아니라 지역에 이 같은 농장을 30여 개 더 만들어 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젊은협업농장은 생산조합원 8명만의 것이 아니다. 지원조합원 20여 명이 농장을 함께 운영하는데 포장 디자인, 포스터·홈페이지 제작과 관리, 사진 촬영, 팟캐스트 녹음 등을 한다. 직접 농사짓지는 않지만 농장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장 알맞은 역할을 해내며, 모두 자원 활동이다. “농업을 살리는 일에 농사꾼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젊은협업농장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농장을 꾸린다.

▲ 비닐하우스 재배는 계절을 타지 않아 농장의 젊은 생산 조합원들은 365일 생산작업을 한다. 이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지역의 다양한 활동에도 참여하지만, 농업 생산을 가장 중요시한다. ⓒ살림이야기(우미숙)

농장과 지역이 학교가 된다

생산조합원들은 농사에 대한 열의만큼 배우는 욕심도 많은 편이다. 20대 안팎의 두생산조합원은 상추를 따면서 팟캐스트로 영어나 역사 공부를 한다. 농장 창립을 함께했던 조대성 씨의 팟캐스트가 인기인데, 농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젊은 농업인에게 온라인 공부방 역할을 한다.

하루 생산일과가 끝나는 오후에는 농사 외에 다른 일을 한다. 화요일 저녁에는 홍성 홍동면에서 열리는 농업 관련 세미나에 참여하고, 합창단이나 관현악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한다. 매주 목요일은 농장 자체세미나를 여는 날로 생산작업을 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여기서 농사와 함께 인문학도 배워 성장한다면, 농사를 비롯한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라는 틀이 아니어도 농장과 지역이 학교가 되어 교육하는 것이 젊은협업농장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농장의 젊은 생산조합원들은 농장에서 하는 일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이 즐겁기만 하다. 365일 생산 일정도 스스로 짜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양한 공부와 지역활동이 삶의 충전소 역할을 하지만,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농업 생산이다.

"유기농업이 지속하려면 토지 소유와 경영 분리해야"
[인터뷰] 젊은협업농장 만든 정민철 이사

우미숙 : 젊은협업농장이 협동조합의 옷을 입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10년을 내다보고 간다 하더라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겠다.

정민철 : '농지'와 '자본'이라는 생산기반이 없는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농촌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데, 농촌은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협업농장의 실험도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에서 홍성 친환경 유기농업과 협동운동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해온 홍순명 선생은 “토지의 소유권과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토지은행’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우미숙 : 지금도 사람들은 귀농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자신이 농사지을 땅부터 알아보지 않는가? 친환경 유기농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농업 생산에 젊은 사람들이 투입되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려면, 개인 땅을 사서 농사짓는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토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을 상상할 수 있나?

정민철 : 땅은 제3의 기관이 소유하는 것이 맞다. 협동조합이 출자하여 땅을 소유하면, 조합의 힘만 세져 문제가 발생한다. 땅 소유권은 제3의 기관이, 시설 소유권은 협동조합이 갖고 생산 운영권은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갖는다. 시설 소유와 운영에 관해서는 협동조합 이사회가 통제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 젊은협업농장 정민철 이사. ⓒ살림이야기(우미숙)

우미숙 : 이 같은 고민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정민철 : 협업농장의 앞날을 걱정하다가 나온 생각이다. 현재 농장의 비닐하우스를 10년 임대계약했는데, 별일 없이 계속 이어진다면 문제가 없지만 땅주인과 관계가 나빠지거나 주인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나선다면 10년간 가꿔 온 유기농지와 생산 노하우를 한 번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 고민은 협업농장만이 아니라 한국 농촌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젊은협업농장누리집: www.collabo-farm.com주소: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홍장남로101번길 46전화: 070-4244-1359이메일: us@collabo-farm.com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 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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