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대표단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면서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가 완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이어 벌어진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남북 함정 충돌과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총격으로 남북은 다시 긴장된 상황을 연출했다. 다만 양측 모두 대화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북한이 고위급 대표단을 남한에 전격적으로 내려 보낸 이유, 그리고 NLL에서의 충돌과 대북 전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NK비전 2020'의 대표이자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최재영 목사는 지난 9월 25일부터 10월 6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북한 관계자들로부터 그 배경을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최 목사는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지금까지 4번 북한을 찾았다. 그는 북측 대표단의 방남 이유에 대해 북측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최 목사는 이 북측 관리가 "원수님께서 남측에 내려간 대표단에게 박근혜가 원하는 정상회담 날짜를 정해놓고 올라오라는 교시를 내렸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NLL에서의 충돌과 대북 전단에 대한 총격이 이어지면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풀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최 목사는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과 NLL 충돌·대북 전단 사격과는 무관한 일"이라면서 "대북 전단은 민감한 문제니까 사격했을 것이고, NLL 충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북 전단에 대해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최 목사는 "북한 내부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반감이 아주 컸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은) 국정원이 전단 살포를 주도적으로 부추기고, 배후에서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최고지도자의 존엄을 모독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언론, 주민, 관리들이 공통으로 말하더라"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 내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기류도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 목사는 "북한 방송에서 시간만 나면 박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내보내고 있다"면서 "같은 민족인데 유엔이라는 국제 회의장에서 동족을 이해해주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인권에 대해 운운했다면서 박 대통령을 악랄하고 악질적인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 목사는 "통일이라는 것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등이 통일의 상대인 북측을 자극하거나 모독을 주고 기분을 나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측과 소통은 하지 않고 자극만 준다면 통일 분위기 조성이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하며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통일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북한을 자극하면 이런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최 목사와 인터뷰는 지난 13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편집국에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프레시안 편집위원과 대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정욱식 :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전격적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이들의 방남 사실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나?
최재영 : 북한의 한 관리가 귀뜸해줬는데, 이들 3인방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메시지를 남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 관리는 "평소에 박근혜가 반통일적이고 악질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한편으로는 정상회담을 집요하게 요청해온다"면서 "그래서 이번에 원수님께서 남측에 내려간 대표단에게 박근혜가 원하는 정상회담 날짜를 정해놓고 올라오라는 교시를 내렸다고 들었다"라고 하더라.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양측이 조율을 진행 중인 것 같다. 남북 정상이 합의가 됐다고 바로 만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고위급회담, 실무회담, 실무접촉 등이 있어야 마지막에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거니까.
제가 강연이나 설교, 인터뷰할 때 항상 강조했던 것이 남북정상회담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에,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에 정상회담을 가졌고 올해가 7년째가 되는 해다. 정상회담을 했던 주기가 공교롭게도 7년인데, 이 주기를 놓치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남에도 북에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올해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정욱식 : 그런데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이 다녀간 지 사흘만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 함정 간 충돌이 있었다. 또 지난 10일에는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해서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대체 북한이 뭐하자는 건지, 남북관계 풀려고 하는 의지는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최재영 :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과 NLL 충돌·대북 전단 사격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본다. 전단은 민감한 문제니까 사격했을 것이고, NLL 충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교황이 방한했을 때도 단거리 발사체를 쏘지 않았나. 교황이 온 것과 북한의 대남 일정은 아무 상관이 없다. 교황이 와도 쏘기로 한 것은 그대로 진행한다. 우리 같으면 자제하고 일정 미루고 그랬겠지만.
정욱식 : 지금 남북 간 가장 주목받는 이슈는 대북 전단, 이른바 '삐라' 살포 문제다. 북측 관계자와 이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 있나?
북한 내부에서는 우선 탈북자들에 대한 반감이 아주 컸다. 또 국정원이 전단 살포를 주도적으로 부추기고, 배후에서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 주민, 관리들이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최고지도자 존엄을 모독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더라.
최재영 : 별로 효과가 없다고 본다. 내년이면 분단 70년이다. 이미 생각이 너무 굳어졌다. 북한은 남한을 해방해야 할 곳이라고 본다. 북한은 남한이 미국에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예속됐다고 생각하고 어떠한 일을 해도 이것은 미국과, 국정원과 관련돼있으며 '파쇼 분자'들의 모략 이라고 치부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전단을 본다고 달라질까? 북한 사람들은 전단과 함께 살포되는 라면은 먹고, 1달러도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통일이라는 것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도 그렇고 대북 전단도 그렇고 통일의 상대인 북측을 자극하거나 모독주거나 기분 나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북측과 소통은 하지 않고 자극만 준다면 통일의 분위기 조성이 가능하겠나.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통일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북한을 자극하면 이런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엔총회 연설 계기로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기류 높아져
정욱식 : 남한에 대해 북한이 가지고 있는 불만의 핵심은 무엇인가?
최재영 : 박 대통령을 생각하는 북측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북측 인사들은 박 대통령을 미국 대통령의 "5단계 밑에 있는" 군인의 지도를 받는 국군통수권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통수권자는 제대로 된 통수권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전시작전권을 예로 들면서 박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미국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태평양사령관, 주한 미 사령관 밑에 있는 통수권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통제를 받는 대통령이 주권국가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주장이다.
또 최근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것을 두고도 아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더라. 특히 방송에서 시간만 나면 박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내보내고 있다. 같은 민족인데 유엔이라는 국제 회의장에서 동족을 이해해주고 품어주고 협력해주는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인권에 대해 운운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악랄하고 악질적인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남한 정권이 미국 제국주의랑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조선 땅 어디를 가도 미군부대가 있고 핵무기가 곳곳에, 심지어 바다에도 있다는 것이다. 미군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자주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뭐가 있느냐고 되묻는 경우도 많았다. 원래 이랬는데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부정적인 입장이 강해졌다.
정욱식 : 그런데 박 대통령이 그렇게 자주성이 없다고, 미 제국주의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하면 왜 남북정상회담을 해보자고 타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북측의 표현대로라면 주권국가도 아닌데, 앞뒤가 안 맞는 행보 아닌가?
최재영 : 북한이 남한의 자주성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큰 틀에서의 그들의 논리다. 정상회담은 통일을 염두에 두고 타진하는 것이라고 본다. 북한에서는 이른바 '조국통일'이 절대절명의 과제다. 모든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절대절명의 가치관과 목표가 조국통일이다.
정욱식 : 남한의 젊은이들은 통일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신(新)냉전세대라고 불릴만큼 통일에 대해 무관심할뿐만 아니라 북에 대한 적대적인 의식도 대단히 강하다. 통일은 무엇이고,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한 말씀 해주신다면?
북한 청년들은 통일 이야기만 얼굴색이 변하더라. 통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도 통일 이야기만 하면 갑자기 돌변하곤 한다. 그만큼 감성과 이성, 논리가 갖춰진 것이다. 심지어 북한에 있는 쌍둥이 중에는 조국이, 통일이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런데 아쉽게도 남한의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해서 그만큼의 관심은 없는 것 같다. 물론 통일에 대해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통일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설계다. 본인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청년들이 주체가 돼서 통일을 추진하고 앞장설 필요가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통일과 우리가 이야기하는 통일이 다를 수 있다. 북한은 적화통일, 우리는 평화통일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통일 정책은 당신들을 통치하는 지도자가 통일된 곳의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북한 관계자들이 "(통일이 되면) 현재 지도자들이 통치에서 손을 뗀다는 것을 확실히 이야기했다"고 그러더라.
북한 식량 사정, 김정은 집권 이후 나아진 듯
정욱식 : 지난 9월 25일부터 10월 6일까지 북한에 체류하셨는데 주로 평양에 계셨나?
최재영 : 평양에만 머물렀던 건 아니고 실제 북한의 농장 상황과 작업 환경, 작황 상태 등을 확인하고 싶어서 들판에 나가기도 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벼를 베기도 하면서 직접 농장을 체험해봤다. 북한 관계자가 미국에서 온 사람 중에 농사를 도와준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웃음)
정욱식 : 북한의 식량 사정이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실제로 다녀보니 어떤가? 식량 사정을 포함해서 주민들의 생활이 좋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나?
최재영 : 김 제1위원장 취임 이후 북한을 4번 방문했는데 의식주 사정은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안내원이나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제가 식사대접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고기를 사주면 좋아할 것 같지만 다들 국수, 영양식, 자연식 같은 걸 먹으려고 하더라. 배는 곯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옥류관 같은 유명한 음식점은 항상 사람이 많다. 하루에 만 그릇 정도 판다고 하던데, 1시간 30분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평양에는 외식 문화도 많이 발달했고 평양 외곽지역에도 먹는 것은 많이 좋아졌다.
식량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북한 관리가 통계를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는데, 예전에는 최소 필요량에서 100~150만톤 정도가 부족했는데 지금은 여유있게 먹으려면 100만 톤 정도 모자라는 수준인 것 같다.
편의시설과 복지시설 같은 것도 눈에 띄게 많이 들어섰다. 아파트, 상가, 빌딩을 건설하는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고 곳곳에서 기공식을 하고 있었다. 완공 단계에 있는 건물들도 우후죽순으로 많이 보이더라.
그런데 교통문화는 여전한 것 같았다. 미국은 보행자 위주의 교통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북한은 차량 위주다. 사람이 차에 치일까 걱정됐던 순간도 몇 번 있었다. 지방에는 대중교통 인프라가 미흡한 부분도 있다.
정욱식 : 말씀을 들어보니 굶어죽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재영 : 그렇다. 그런데 굶어죽는 문제와 관련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때 1,2차 고난의 행군에서 굶어 죽은 북한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후로 '북한'하면 굶어죽고 식량도 항상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게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북한에 식량이 모자라는 부분도 있다. 두만강 부근에 꽃제비들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언론과 정부, 교회 등에서 이런 사진들만 보여주면서 그게 북한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왜곡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후배 목사가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 하루에 급식을 먹는 인원이 3000명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모습을 미국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도 마찬가지의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욱식 : 마지막으로 최 목사님이 소속돼있는 단체인 'NK비전 2020'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달라.
최재영 : 'NK'는 'New Korea'의 약자다. 통일이 되면 통일된 조국, 합의된 민주주의에 의해 국호를 만들테텐데, 그 때 국호가 무엇이 될지 모르니까 상징적으로 정했다. '2020'은 연도다. 2020년까지 완벽한 통일은 아니더라도 준 통일 수준까지는 만들 수 있도록 남과 북, 해외동포 3자가 이를 목표로 비전을 품고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정했다.
우리는 '통일을 위한 남북사회통합운동'을 지향한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종교, 역사, 경제, 언론 부문에서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남과 북, 해외동포들이 통일의 주체가 돼서 소통하고 통합하자는 뜻으로 단체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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