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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이 끝나고, 새우 혼자서 칼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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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이 끝나고, 새우 혼자서 칼을 들었다"

<제보자>가 말하지 않은 황우석 사태의 진실 ③

<제보자>가 말하지 않은 황우석 사태의 진실

<제보자> 윤민철 PD는 사실 외롭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날아온 혈서, "개양구, 너는…"

"고래 싸움이 끝나고, 새우 혼자서 칼을 들었다"

황우석, 대통령, 회장님 다함께 "과학기술 독립 만세!"


2005년 12월 5일, 월요일 아침 밤잠을 설친 탓에 두 눈이 빨갰다. 출근하자마자 메일함을 열었다. (그 때는 출근길에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오전 8시 14분 기준, 정확하게 10개의 메일이 목록에 떠 있었다. 대부분 국내외 생명과학 대학 교수 및 박사 과정 학생의 메일이었다.

그 중에는 황우석 박사 연구를 놓고서 토론을 진행하던 한 사립대학 교수의 메일도 있었다. "강 기자님! 이것 꼭 확인하세요." "꼭 기사화해주세요." "제보입니다." 황 박사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부속서(supplement)에 실린 11개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에서 '중복 사진'이 발견됐다는 제보였다.

분명히 같은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인데 약간의 조작을 거쳐서 마치 다른 줄기세포를 찍은 것처럼 첨부했다는 것.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부속서의 사진은 논문에서 주장한 데이터의 진위를 증빙하는 역할을 한다. 황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혐의를 지지하는 유력한 '사실(fact)' 하나가 발견된 것이다.

논란의 발단이 됐던 곳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한 게시판. 평소에도 젊은 생명과학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한 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들락거리던 이 게시판의 원래 용도는 젊은 생명과학자의 구직 정보와 그에 따른 애환을 공유하던 곳이다. 말 그대로 생명과학계의 사이버 비정규직 인력 시장이었던 셈이다.

비록 월 수십만 원에 노동력을 파는 신세지만 이들의 실력만은 세계 수준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명씨(anonymus)'의 줄기세포 사진에 대한 의혹 제기는 이미 수십 명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이 되어 있었다. 성영모 박사를 비롯한 몇몇 생명과학자와 토론도 진행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처음으로 이런 사실을 기사화했다(①).

'중복 사진' 의혹만으로는 부족했다

기사가 올라가고서 두 시간쯤 후에 며칠 전 기자 회견에서 안면을 튼 한학수 PD에게 전화를 했다. 한 PD를 비롯한 <피디수첩> 팀은 전날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BRIC 게시판 중복 사진 의혹 확인하셨어요?" "BRIC? 그게 뭔데?" "중요한 뉴스예요. <프레시안> 기사 살펴보세요."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갔다.

나중에 이 중복 사진 의혹을 놓고서 누리꾼 몇몇이 '개양구 자작설'을 제기했다. 내가 익명으로 게시판에 중복 사진 의혹을 올리고, 그것을 곧바로 기사화했다는 것이다. 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준 것은 정말로 고마운 일이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나는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을 할 때도, 단 한 번도 2단계로 넘어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제보자>를 먼저 본 지인에 따르면, 영화에서 바로 이런 황당한 설정이 나온단다. 방영은커녕 존폐 위기에 빠진 <피디수첩> 팀에서 한학수 PD를 돕던 막내 PD(김보슬 PD)가 바로 게시판에 중복 사진 의혹을 제기해 여론의 반전을 꾀한다는 것. 영화에는 문외한이지만, 스토리텔링에는 관심이 있는 글쟁이로서 참으로 낯 뜨거운 설정이다. (도대체 왜? 왜? 왜?)

나중에 임순례 감독의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보고서 대충 짐작이 갔다. 임 감독은 이 중복 사진 의혹 제기가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의 승부를 가른 결정적인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너무 그냥 정말 초등학생도 조금만 보면 알 수 있는, 검증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조작이 되어서 사실은 밝히는 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임순례 감독)

임순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누구한테 과외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대목을 읽고서 한숨이 나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일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돌이켜보면, 중복 사진 의혹은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던 상황을 반전하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사실을 밝히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2013년 5월, 미국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가 세계 최초로 '진짜'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그런데 미탈리포프 박사의 논문을 놓고서도 중복 사진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는 "사진을 정리해서 싣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고, 과학계는 결국 그 해명을 받아들였다.

다시 2005년 12월 5일로 돌아가 보자. 황우석 박사도 미탈리포프 박사와 똑같이 대응했다. "많은 사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몇 장의 사진이 잘못 들어갔다." 즉, 임순례 감독 등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복 사진 의혹만 있었다면 황 박사와 그를 비호하는 권력이 충분히 뭉개고 갈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사실 : 2번 줄기세포 조작 의혹

ⓒpd-report.co.kr
12월 5일 오후, 중복 사진 논란으로 한창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피디수첩> 팀이 실시했던 2번 줄기세포와 그 원주인 체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를 입수했다. 이 자료를 내게 메일로 보낸 이가 바로 한학수 PD를 돕던 김보슬 PD였다. <피디수첩> 팀이 자신이 갖고 있던 사실을 방영하기 어려워지자 외부 기자의 도움을 받기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김보슬 PD가 보낸 메일을 다시 읽어보면, 그 때 <피디수첩> 팀이 어떤 인식을 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겠죠." 중복 사진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한학수 PD를 비롯한 <피디수첩> 팀은 사태를 비관하고 있었다. 결국 뒤처리는 나와 <프레시안> 또 우리를 지원하는 수많은 '다윗들'의 몫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놓고서 한 누리꾼은 이렇게 표현했다.

"고래들의 싸움이 끝났는데도 새우가 혼자서 칼을 들고 있는 상황이네요."

김보슬 PD가 넘겨준 자료는 5일 제기된 중복 사진 의혹과는 차원이 다른 사실이었다. 황 박사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을 통해서 발표한 이른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사실은 환자 맞춤형이 아니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2번 줄기세포≠2번 줄기세포 원래 주인의 체세포).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가 가장 공을 들인 사실이기도 했다.

2005년 12월 6일(화요일), 2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도 공개했다(②).

세 번째 사실, <뉴욕타임스>도 주목했다

그 시점(2005년 12월 6일 새벽)에 BRIC 게시판에서는 지방 국립대학의 한 생명과학자가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BRIC 게시판과 별개로 자세한 설명이 추가된 메일을 내게도 따로 보냈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 부속서에 실린 복제 배아 줄기세포와 원래 주인 체세포의 DNA 지문 분석 결과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였다.

DNA 지문 분석은 비교 대상 두 개를 놓고서, 피크(∧)의 위치가 똑같은지로 '일치/불일치' 여부를 따진다. 하지만 두 개의 모양이 너무나 똑같아도 문제다. 왜냐하면, 비교를 하려는 두 개의 시료 자체는 다르기 때문에 위치는 똑같더라도 피크의 높이, 모양, 배경의 노이즈는 매번 달라야 한다.

이 생명과학자는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DNA 지문 분석 결과가 피크의 높이, 모양은 물론 배경의 노이즈까지 거의 비슷하다는 데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와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또 성영모 박사와 김병수 박사 등과 토론을 하면서 이 문제 제기가 '진실'로 인도할 중요한 사실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당시 자문에 응했던 모든 생명과학자가 이런 결론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비공식적으로 자문에 응한 내로라하는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의 한 과학자는 "의심할 만한 대목은 있지만, 이것만으로 DNA 지문 분석 결과가 조작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충분하다 않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쩌면 DNA 지문 분석 결과에 대한 의혹 제기 역시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를 가릴 가장 중요한 데이터(DNA 지문 분석 결과)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었다. 이틀간의 준비 끝에 최초로 의혹이 제기된 지 이틀 만인 8일(목요일) 기사를 냈다(③).

▲ 2005년 12월 6일 처음 올라온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DNA 지문 분석 결과 조작 의혹. 황우석 사태의 진실에 다가가는 결정적 사실이었으나, 어쩌면 이조차도 충분하지 않았다. ⓒbric.postech.ac.k

이 기사의 반향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나왔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웨이드 기자로부터 반응이 온 것이다. "한 재미 한국인 학자의 소개로 당신의 8일자 기사를 봤다. 나는 한글을 읽을 줄 모르지만 기사에 첨부된 DNA 지문 분석 결과만으로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안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당신의 기사도 번역해서 볼 생각이다."

니콜라스 웨이드가 누구인가? 그는 <사이언스>, <네이처>를 거친 <뉴욕타임스> 과학 담당 기자로 이미 1980년대부터 세계 최고의 과학 기자로 칭송받던 이였다. 특히 그는 과학자의 연구 부정행위를 전문적으로 추적해왔다. 1943년생인 그는 내게 과학 언론계의 대선배였다. 그는 10일 <뉴욕타임스>를 통해서 <프레시안>의 문제 제기를 보도했다.

9일(금요일)에는 서울대학교의 생명과학 소장 교수들이 정운찬 총장에게 황 박사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이들 교수도 이구동성으로 '논문에 첨부된 DNA 지문 분석 결과가 의구심이 제기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10일(토요일)에는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3쌍의 중복 사진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월요일(12월 12일)을 염두에 두고서 마지막 일격을 준비 중이었다. 당시 <피디수첩>을 지원하던 역할을 하던 K 아무개 변호사가 자신이 따로 보관하던 이른바 '김선종 녹취록'을 <프레시안>에 넘기겠다고 제안해 온 것이다. 8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해당 자료를 파일로 건네받아, 한창 기사로 쓰는 중이었다.

토요일 오후, 기사를 마무리하고 퇴근을 준비하던 중에 YTN에서 '폭탄'이 터졌다. YTN이 "황 박사의 지시로 <사이언스> 논문에 실릴 사진을 불려서 더 많이 찍었다"는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을 보도한 것이다. (YTN의 황우석 사태 편향 보도를 참을 수 없었던 한 기자와 담당 데스크의 작품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김선종 녹취록'을 10일 저녁 곧바로 올렸다(④). 기사 제목은 "나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피가 마르는 일주일이었다. <프레시안>을 통해 처음으로 보도된 이 네 건(①, ②, ③, ④)의 사실이야말로 황우석 사태의 진실에 한걸음 다가가는 분수령이었다. 황 박사는 이 네 건의 의혹에 반박 보도 자료를 내놓고서, 11일 직접 노정혜 서울대학교 연구처장에게 자신의 논문 재검증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우리는 운이 좋았다

2005년 12월 7일(수요일) 저녁, 나는 안국동에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에서 매년 수여하는 '앰네스티언론상'을 수상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는 <프레시안>의 동료 외에도 <녹색평론> 서울 독자 모임 회원 몇몇도 함께 했다. 혹시 해코지를 당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굳이 시간을 내서 와준 것이었다. 그날 한 회원은 '고맙다'면서 포장해온 만년필을 축하 선물로 건넸다. 그 만년필은 9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보물 1호'다.

나는 지금도 그 때 수상한 앰네스티언론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상은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폭로한 공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때나 또 지금이나 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 부재를 비판한 기사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한 번 음미해볼 생각할 거리를 준다.

수상식이 끝나고서 서울대학교 황상익 교수를 만났다. 당시 황 교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제보자-김병수-한학수 트리오와 거의 모든 사실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멘토 역할을 했었다. "강 기자 고생 많지요? 조만간 모든 것이 정리될 겁니다." 황 교수는 이런 알쏭달쏭한 격려를 짧게 던지고 떠났다.

한참 후에 황상익 교수는 사석에서 이런 의견을 말했다. "BRIC 게시판에 DNA 지문 분석 결과를 놓고서 문제 제기가 올라온 시점(12월 6일)에 결론은 이미 난 것이 아닐까요?" 고개를 끄덕이고 들었지만, 과연 상황이 꼭 그렇게 흘러갔을까?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때마다, 고개를 젓곤 한다.

만약, 법이 정한 것보다 또 애초 공언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천 개의 난자를 사용했지만, 황우석 박사가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가지고 있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중복 사진, DNA 지문 분석 등 앞에서 지적한 수많은 논문 조작은 사실이었지만, 황 박사가 단 한두 개라도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손에 쥐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황우석 박사는 논문 조작의 흠집을 뒤로 한 채, 여전히 한국 최고의 과학자로 대접받고 있지 않을까? 아마도 나는 지금 기자 아닌 다른 직업을 전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피디수첩>은 그 시점에 폐지되었을 테고, 한학수 PD 역시 영화 주인공의 역할모델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 때 우리는 운이 좋았던 셈이다. (계속)
이전의 두 글을 포함한 이 연재는 당시의 기사, <침묵과 열광>, 취재 메모, 이메일, 비공개 인터넷 게시판의 글 등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록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가능한 한 왜곡 없이 사실 관계를 전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나의 관점에 따른 구성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찾는 일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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