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의 싸움 속에서 아이들이 기억될 겁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의 싸움 속에서 아이들이 기억될 겁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띄우는 편지]<5> 재난참사로 먼저 아이를 잃은 엄마의 편지

맑은 가을하늘을 보면서 문득 눈물이 흐릅니다. 비가 내려도 문득 눈물이 흐릅니다. 아이를 잃고 나서 ‘문득’이라는 말이 내 생활에 깊숙하게 들어왔습니다.

‘문득’ 찾아온 참사, 슬퍼할 겨를도 없는 마음

제 딸 민하는 2011년 여름방학을 맞아 춘천 상천초등학교로 발명캠프 봉사활동을 갔다가 산사태로 19년 생을 마감한 인하대 학생 중 한 명입니다.

산사태. 주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위로를 했지만 딸아이를 억울하게 보낼 수 없어 원인을 밝히러 뛰어다녔습니다. 그리고 우리 유족들은 10년 주기로 세 번째 산사태가 났던 자리인데 물길을 막아 민박집을 짓게 허가했다는 점, 위험 징후 신고를 받고 공무원들이 출동했었는데도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았던 점, 민박집 주인의 불법 영업, 1차 산사태 후 대피하라는 지역 주민의 전화를 받고도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점 등 ‘어쩔 수 없는’ 천재가 아니라 인재였음을 밝혀냈습니다. 춘천시와 강원도를 대상으로 책임을 묻는 싸움을 시작했고, 계절이 몇 번 바뀐 뒤 강원도에서 특별조례를 만들어 봉사활동 중 참사를 당한 아이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유족들은 싸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사례를 잘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준비 없이 맞을 수밖에 없는 참사. 가장 먼저 달려왔던 정치인들이 어떻게 뒤통수를 치는지, 학교 등 관계자들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빨리 마무리하려고 하는지, 행정책임자들을 만날 때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게 도움을 주고자 참사 대응과정을 정리했습니다. 과거 참사 가족들이 재난안전가족협의회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지금은 덤덤하게 이야기하려고 애쓰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책임을 묻는 싸움을 하는 마음이 어떤지 경험으로 압니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싸우고 있는 단원고 아이들의 엄마 아빠를 만나는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마무리될지 아무도 모르는 싸움을 하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이의 억울함을 풀겠다는 것이죠.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허무함, 무기력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내가 왜 농성장에 나와 앉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바뀝니다.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돈을 바라고 저런다, 경제를 말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왜 이래야 하는지…. 그런데 답은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진실을 알고 싶다는, 아이 한을 풀어 하늘로 올려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못해준 게 많은데, 진실이라도 밝혀줘야지요. 그래서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 농성장으로 다시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여한 없이 싸워야 여러분이 살 수 있습니다. 분노해야 죽지 않습니다.

우리 유족들은 트라우마 치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고 잠을 자기도 했지만, 결국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길은 참사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뿐입니다.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우리의 싸움 속에서 아이들이 기억될 겁니다”

지금은 진상규명을 위한 출발이 되는 특별법 제정에 힘쓰고 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는 이유는 진상규명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즉 법 제정은 마무리가 아니라 진상규명을 위한 과정인 겁니다. 그래서 연대와 지지가 더욱 절실합니다. 연대는 주체의 의지가 확실해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우리와 어떻게 통하는가를 같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반대 목소리가 더 기승을 부릴 겁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과도 이야기를 하십시오. 진영논리를 부추기며 분리하고 국민의 인간성을 탈각시키는 자는 정치인들과 보수 논객들이지, 시민들이 아닙니다. 진상규명을 향해 끈질기게 걸어간다면 시민들도 여러분의 진심 편에 서게 될 겁니다. 실제 흑색선전이 집중되는 와중에도 지지와 연대가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싸움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싸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기 일로 여기고 함께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아이로 인해 사회적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겁니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들도 만나고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도 달리 보이게 되었을 겁니다. 국회의원도 행정가도 믿기 어려워졌을 겁니다. 언론에 대한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을 거고 이제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모든 정보를 의심하게 되었을 겁니다. 몰랐던 세계, 눈감고 지내왔던 일들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겁니다. 너무나 거대한 집단이 우리를 막고 있는 게 시간이 갈수록 보입니다. 그래서 정의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이 무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달라져왔습니다. 참사에 대한 대응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씨랜드 화재로 유치원생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어린이 안전재단’을 만들어 안전문제를 제기하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대구지하철 참사 후 안전대책 마련 요구로 지하철 시트가 바뀌었습니다. 춘천 참사 후 강원도에는 천재지변이라 할지라도 피해를 받은 도민을 위한 보상 조례가 전국 최초로 만들어졌습니다. 참사 하나하나는 불만족스럽게 마무리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마무리되든 우리 유족들은 아쉬울 겁니다. 하지만 그 투쟁이 사회를 조금씩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 자식이 돌아올 수 없는데 사회가 달라진들 뭐하겠습니까. 그러나 내 아이를 사회 속에 기억되게 할 방법은 있습니다.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는 우리들의 싸움이 이어질 때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기억될 겁니다.

“엄마아빠가 이 정도면 할 만큼 하지 않았니?”
아이 앞에 떳떳할 수 있을 때, 그때 목 놓아 울며 아이를 하늘로 보내줍시다.

“아이가 맺어준 인연을 이끌어가는 것이 여러분입니다”

아이와의 인연은 짧았습니다. 대신 아이로 인해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싸우는 학부모들, 대책회의 사람들, 농성장을 찾아오는 시민들이 아이들이 만들어준, 거부할 수 없는 인연인 거죠. 유족들 중에는 지도부를 맡은 이도 있고, 농성장을 지키는 일만 하는 이도 있습니다. 능력이 다르거나 슬픔이나 분노가 다른 게 아닙니다. 역할이 다른 겁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이 싸움에서는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고 함께 논의해서 갈 길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서로가 ‘OO엄마’, ‘◇◇아빠’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관계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만들어준 인연을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싸우겠다고 결정했고 앞장서고 있기에 연대와 지지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손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도 손을 놓지 않을 겁니다. 같이 힘냅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