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팔 골절 수술받다 9살 지유가 죽었어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팔 골절 수술받다 9살 지유가 죽었어요"

유족 "간호조무사가 마취 주사 투여"…병원 측 "문제 없어"

충남 천안의 초등학교 2학년생 서지유(7) 양은 간단한 골절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깁스를 하고 병원에서 심심해하던 지유는 퇴원하면 대학교 교정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지유 아버지 서동균(37) 씨는 딸과 함께 2주일 뒤면 핀다는 꽃봉오리 화분을 하나 샀다. "이 꽃이 활짝 피면 퇴원하니까 아빠가 데려가 줄게." 화분을 안아 든 딸은 사흘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갔다.

지유가 학교에 갔다가 놀이 시간에 구름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을 다쳤을 때는 지난 5월 16일 금요일. 담임선생님은 아동 골절 전문 병원으로 알려진 ㄱ 정형외과에 지유를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간단한 수술이지만 전신 마취를 해야 하고 2주일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술 날짜는 사흘 뒤인 19일 월요일로 잡았다. 지유 어머니는 빈 수술·검사·마취 동의서에 서명했다고 했다.

팔을 다쳐서인지 주말 내내 지유에게는 미열이 있었고, 코피도 났다. 서동균 씨는 "간호 인력들이 교대할 때 인수인계를 주먹구구식으로 했고, 병원에 소아용 진통제가 갖춰져 있지 않아 집에서 갖다 먹일 정도로 환자 관리가 잘 안 돼서" 왠지 병원이 탐탁지 않았다. 주말을 병원에서 지유와 함께 보낸 서 씨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19일 월요일에 출근했고, 지유는 같은 날 수술에 들어갔다.

▲ 입원실에 놓은 화분에 꽃이 피면 아빠와 놀러 가기로 했던 지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서동균

지유 어머니는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오전 9시 50분쯤에 수술실장이 지유 몸에 주사를 놓는 것을 봤다. "마취하세요?"라고 물으니 그는 "네"라고 답하고 지유를 수술방으로 데려갔다. 마취 주사를 놓을 때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오전 11시 20분쯤 집도의는 "수술은 잘 마쳤다"고 말하고 수술방을 나왔다. 그런데 1시간이면 마취에서 깨어나 회복실에서 나왔어야 할 지유는, 오후 2시가 넘어서도 수술방 밖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취 의사에게 왜 아이가 깨어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아이라서 마취 깨는 약을 천천히 넣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오후 4시쯤 지유 어머니는 "애가 의식도 없고 눈도 풀려 있다"고 울면서 말했다. 집도의는 외래 진료를 보고 4시 40분쯤 돌아와 서 씨에게 "지금도 혈압이나 맥박은 정상"이라고 안심시켰다. 마취 상태가 길어지면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5시 20분쯤 병원 사람들이 우르르 수술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서 씨가 따라 들어가니 지유는 의식도 없고 자가 호흡도 없고 동공도 풀려 있었다. 의료진은 전기충격기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지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지유는 인근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후 8시 48분에 숨을 거뒀다. 수술을 마친 지 9시간 30분 만이다.

간호조무사가 마취 주사 투여

21일 장례를 치른 부모는 ㄱ 정형외과에 찾아가 진료 기록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지유에게 마취 주사를 놓은 수술실장이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올해 초 간호과장이 그만두면서 그 병원에 의사 6명을 제외한 직원은 모두 간호조무사들로 구성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서동균 씨는 "마취에서 깨지 않는 지유를 종합병원으로 옮기자고 요구했음에도 의료진이 5시간 이상 방치함으로써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또 "수술·검사·마취 신청서에 의사 설명 없이 공란으로 서명을 받았는데, 지유가 숨진 이후에 의무기록지를 떼어보니 부작용으로 '출혈, 감염, 색전증'이라는 글자가 추가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마취 기록지를 보면, 지유는 오전 10시께 펜토탈소디움이라는 마취 주사 100mg과 로쿠로니움이라는 근육이완 주사 10mg을 받았다. 부모 주장에 따르면, 이 주사는 간호조무사가 곁에 지켜보는 의사 없이 투여했다. 마취제와 근육이완제는 숙련된 의사의 지도·감독하에 투여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의사의 지도·감독하에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마취 주사를 놓는 것은 합법이지만, 관찰하는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 서동균 씨의 휴대전화 첫 화면. 서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서동균(facebook.com/donggyoon.seo)

마취 기록지를 보면, 수술 중이었던 오전 10시 50분경 지유는 베쿠로니움이라는 근육이완 주사 0.5mg을 더 받았다. 수술이 끝난 오전 11시 40분과 오후 1시, 2시 30분께 피리놀이라는 근육 항진제와 모비눌이라는 부정맥 방지제를 3차례 받았다. 지유가 11시 40분에 깨어나지 않자 마취과 의사가 이후 마취 깨는 약을 두 차례 더 투여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마취 기록지상으로 별문제는 없지만, 12시께 수술이 끝났는데 (회복실로 옮기지 않고) 수술실 밖으로 못 나온 이유가 기록지상으로 설명이 안 돼 있다"며 "아마 못 옮길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록지상으로는 혈압과 맥박도 4시까지 괜찮은데, 4시 이후에 갑자기 심폐소생술을 한 것도 이해가 안 된다"며 "보통은 심정지가 오기 전에 전초 증상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대학병원이라면 간호사들이 환자의 변화를 기록하는데, 여긴 그런 기록이 잘 안 돼 있다"며 "마취과 의사가 깨웠는데 안 일어나니까 계속 처치하느라고 회복실로 못 옮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 정형외과 교수는 "거의 출혈이 없는 수술이어서 수술 문제로 사망할 가능성은 없고 아마 마취와 관련된 문제이겠으나, 부검하지 않고는 사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마취 의사 "죄송하다"는 말 남기고 숨져

장례를 치른 직후 서동균 씨는 지유의 부검을 의뢰했고, 천안 서북경찰서에 해당 병원에 대한 수사도 의뢰했다. 부모는 5월 29일부터 천안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제발 이 아이를 봐 주십시오"라고 적힌 팻말에는 "영정사진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서 씨의 휴대전화 첫 화면 사진이 있었다.
그러다 서 씨는 지난 6월 9일 경찰로부터 마취 의사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은 해당 병원의 마취 의사가 경찰에 출석해 대질 심문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마취 의사는 병원에 출근해 피로를 호소하며 링거를 맞았고, 1시간 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유 부모님' 앞으로 작성된 A4 용지 두 장 분량의 유서에는 "사고의 책임은 마취과 의사인 저에게 있다. 죽어서라도 사죄드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병원 측 "적절 조치 취해…간호조무사 마취 주사 투여는 합법"

마취 의사가 숨지면서 지유 사건은 미궁으로 빠질 확률이 높아졌다. <프레시안>은 지난 9일 해당 병원을 방문해 관계자 인터뷰를 청했으나 관계자를 만날 수 없었다.

다만 해당 병원 측 변호사는 "마취 의사가 간호조무사에게 주사를 지시했으므로 합법이고, 대부분의 병원이 같은 방법으로 주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술 직원이 간호조무사들로만 구성된 점에 대해서는 "입원실이 있는 병원은 간호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하지만, 간호사 수 절대 부족으로 ㄱ 병원뿐 아니라 대부분 병원들이 규정대로 간호사를 채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 1인 시위하는 서지유 양의 아버지 서동균 씨. ⓒ서동균
수술 이후 지유의 상태에 대해 이 변호사는 "환자의 회복이 늦어져서 마취 의사가 오후 3시 27분에 순천향대학병원 마취과장에게 전화 문의했지만, 마취과장이 특별히 대학병원에 후송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며 "최근 수술한 노인 환자도 4시간 30분 만에 의식이 회복되었기에 마취 의사는 단순히 근육이완제 대사 지연으로 판단했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봤다"고 밝혔다.

다만, 마취 기록지는 지유가 숨진 다음 날인 5월 20일 마취 의사가 기억을 되살려 작성한 것이어서 CCTV 기록과 차이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 변호사는 "마취 기록지상 수술 종료 시간이 11시 50분이지만 CCTV상으로는 11시 5분이며, 심정지가 발생한 시간은 5시 22분이나, 차트에는 4시 5분으로 잘못 표시됐다"고 했다.
서동균 씨는 사고 이후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을 외국으로 보냈다. 그는 홀로 한국에 남아 병원 측과 소송을 준비 중이다. 지유가 왜 죽었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싶다고 했다.

서 씨는 의무기록지에 환자 정보가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며 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무기록지에 혈압, 맥박이라도 실시간 기록하고 나중에 로그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전산화해야 하고, 간호조무사가 전문 의료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 수술 의사, 알고 보니 간호사? 약사는 알바?)
- 의료 사고 관련 주요 기사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