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인 앰뷸런스(구급차)는 나폴레옹의 전쟁터에서 처음 등장했다. 마차 바닥에 가죽으로 된 깔개를 설치하고, 칸막이까지 세웠다.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으로 달려가서 부상병을 마차에 싣고, 그 자리에서 수술을 했다. 군의관 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Jean Larrey)가 고안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군대가 용감했던 이유
그 전에는, 전투 중에 다치면 대부분 죽었다. 그러나 라레가 이끄는 구급차 부대가 등장한 뒤로는 사망률이 확 줄었다. 상처가 곪기 전에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병사들에게 “두려워 말고 싸워라. 제군들을 위해 프랑스 최고의 의사들을 데려왔다”라고 말했다. 전쟁터의 병사에게 승리의 영광은 부차적인 문제다. 일단 살아남는 게 먼저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면, 전장에서 종횡무진하는 구급차 부대가 보인다. ‘다쳐도 목숨은 보존하겠구나’. 병사는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운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가 용감했던 한 이유다.
라레의 구급차 부대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적극성’이다. 그 전까지의 부상병 치료는 전투가 끝난 뒤에 이뤄졌다. 반면 라레는 부상 직후 치료하는 걸 목표로 했다. 부상과 치료 사이의 시간이 길어지면, 작은 상처로도 생명이 위험해진다. 전투가 진행 중인 현장으로 구급차를 몰고 간 건 그래서다. 전투에 동원할 병사 한 명이 아쉬운 지휘관 입장에선 낭비로 비칠 수 있다. 구급차를 모는 병사에게 총을 쥐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달랐다. 이 차이가 그를 명장으로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보편성’이다. 라레의 구급차 부대는 계급과 신분을 따지지 않았다. 오로지 누가 더 빠른 치료가 필요한지만을 고려했다. 심지어 전선을 이탈하기 위해 자해를 한 병사도 차별 없이 치료했다.
한번 실패하면 낙오하는 사회
이런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흔한 비유지만,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부상자가 속출한다. 그러나 구급차는 없다. 한번 다치면, 상처가 계속 곪아서 결국 죽는다. 지난 9일 경기개발연구원 강상준 연구위원이 낸 '행복과 성장의 전제조건, 패자 부활'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성인 가운데 약 절반은 “한번 실패하면 낙오자가 된다”고 믿는 것으로 조사됐다. 패자 부활전은 없다는 이야기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이직(16.6%) 해고·실직(14.0%) 결혼·이혼(13.9%) 대입(13.4%)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이직, 해고, 실직 등 일자리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구급차 부대에 아낌없는 지원을 했던 명장 나폴레옹을 떠올리게 되는 건 그래서다. 한번 실패하면 낙오하는, 한번 다치면 죽어야 하는, 그런 사회가 무슨 경쟁력이 있겠는가. 대상이 누구건 다치자마자 치료하는, 적극적이고 보편적인 복지가 절실하다. 국익지상주의를 지지하는 보수우익의 입장에 선다 해도 마찬가지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다.
풀뿌리 복지·노동 쟁점에 관심을!
6.4 지방선거가 다가왔지만, 정작 중요한 복지, 노동 의제는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져 있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무상급식’이 최대 쟁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안타까운 대목이다.
중요한 쟁점이 없어서가 아니다. 예컨대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생활임금 조례안'을 극력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말 도의회에서 통과된 조례에 대해 김 지사는 재의를 요구했고, 결국 지난 2월 임시회에서 부결됐다.
생활임금 조례란,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주지 않는 기업은 지자체 및 공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악덕기업에겐 불이익을, 그렇지 않은 기업에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이런 제도가 정착하면, 오로지 ‘값싼 인건비’만으로 승부하는 기업은 설 자리가 줄어든다. 일정 규모 이상의 인건비 지출을 전제로 경영해야 하므로, 기술 및 서비스 혁신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다. 장기적으로 이는 경제의 활기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인건비를 깎는 방식으로 편하게 경영하다 망한 기업에 대한 대책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렇게 생겨난 실직자에 대한 적극적이고 보편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복지, 교육, 산업, 노동을 두루 아우르는 논의다. 그러자면 결국 중앙정부 차원의 논의로 이어진다.
풀뿌리 지자체는 민생정책의 인큐베이터
실제로 기초단체, 기초의회 등 풀뿌리 지자체는 중요한 정책 아이디어의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나온 ‘무상버스’ 공약도 전라남도 신안군의 버스공영제를 참고해서 나왔다. 풀뿌리 지자체에서 검증된 정책이 보다 큰 권력으로 수용되고, 큰 권력은 풀뿌리 지자체가 혁신적인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이런 과정이 유기적으로 잘 이뤄지는 게 좋은 정치다. 풀뿌리 정치를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 풀뿌리 정치와 중앙 정치가 건강하게 결합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런 결합을 담당하는 게 정당이다.
이런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6.4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 공천을 하기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른바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에 가려 있던, 복지 및 노동 등 민생의제를 놓고 지금이라도 정당들이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한번 다치면 죽어야 하는 사회’에 대해 정당마다 어떤 해법을 내놓는지 유권자들이 알고 찍어야 할 것 아닌가.
고작 '타요버스' 원조 논란이라니…
총 들고 싸울 병사 한 명이 아쉬운 전쟁터에서도 구급차 부대에 넉넉한 인력을 배치했던, 나폴레옹의 안목을 배워야 한다. 그게 지도자의 그릇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고작 ‘타요버스’ 원조 논쟁이나 벌이는 수준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생겨난 부상자들이 그냥 죽게끔 할 건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재정은 어떻게 확보하고,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가. 지방선거에 임하는 여러 정당들은 더 이상 대답을 미뤄서는 안 된다.
아울러 실체가 모호한 ‘새정치’ 구호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 정치는 기술이 아니다. 새롭다는 게 꼭 우월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롭지만 나쁜 정치도 얼마든 가능하다. 인류가 동굴에 살던 시절부터 권력과 정치는 있었다. 다만 한 사람을 위한 권력이 다수가 누리는 권력으로 진화해 온 역사가 있었을 뿐이다.
멀리 내다보고, 다수를 상대하며, 풀뿌리와 호흡을 맞추고, 소수자와 약자를 끌어안는 ‘큰 정치’가 절실하다. 안철수 의원이 주장하는 ‘새정치’가 정당의 책임과 역할을 줄이고 소수 엘리트만 바라보는 ‘작은 정치’였다면, 이 기회에 폐기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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