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타이완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타이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검은 옷을 입고 해바라기를 든 시위대가 우리 국회에 해당하는 타이완 입법원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2주째 이어지고 있는 이번 농성은 마잉지유(馬英九) 타이완 총통이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안 철회를 공식 거부하자 이에 반발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 시위대가 의회를 점거하면서까지 서비스협정 비준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 협정이 발효되면 대만 경제의 중국 종속화가 가속화되고 중국 노동력의 대거 유입으로 청년 일자리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들은 마 총통의 사과와 장이화(張宜樺) 행정원장(총리)의 퇴진 및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이에 맞서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에 찬성하는 보수단체의 맞불시위가 벌어지면서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학생시위의 여파로 중국과 대만의 양안 (两岸) 교류에 당장 급제동이 걸렸다. 중국 국무원 타이완사무판공실 장즈쥔(张志军) 주임이 4월 중순 타이완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답방이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장 주임의 방문은 타이완 대륙위원회 왕위치(王郁琦) 주임위원(장관급)이 지난 2월 양안 분단 이후 첫 장관급 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데 대한 답방 성격이다. 이에 따라 양안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작업 및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대한 후속 협상도 줄줄이 미뤄지게 되었다.
지난 2010년 양안 사이에 맺어진 ECFA에 서비스무역 분야를 추가로 개방하기 위한 이번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각국 언론은 ‘차이완(Chiwan: 중국과 타이완)’ 시대가 열리고, 양안 간 경제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 기대했다. 차이완 시대의 개막은 한국경제에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한국과 대만의 수출구도가 비슷해 양안 경제협력으로 중국 대륙 내에서 타이완의 경쟁력이 강화될 경우 우리나라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 총통이 이번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심야에 긴급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번 협정을 체결하지 못하면 가장 기뻐할 나라는 한국이라고 강조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양안 서비스무역협정은 지난해 6월 정치적 이유로 결국 타이완 입법원 비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국회 회기 중에 심사예정이었지만 역시 시민들의 반발로 답보상태에 빠졌다. 이번 사태로 중국 대륙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아시아의 4대 용으로 국제무대에 부활하려던 타이완의 꿈이 요원해진 것이다.
학생 시위대가 이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대륙 노동력의 대량 유입에 따른 타이완의 청년 실업률 증가다. 이에 대해 타이완 정부는 오히려 대륙으로부터의 투자가 증가해 대륙 자본에 의한 일자리 창출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화경제연구원 WTO 센터에 따르면, 양안 서비스무역협정 체결로 타이완 서비스산업이 평균 0.10~0.11%(3억 900만~4억 2800만 달러) 성장하고, 1만 1000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협정 체결로 타이완 경제의 중국 종속이 가속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제한적 개방 때문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타이완 정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보다 세밀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타이완은 중소기업이 발달한 나라로 유명하며, 중소기업 창업지원 법제도 잘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혁신형 중소기업의 저변 확대를 위해 타이완 중소기업의 사례를 연구할 정도다. 타이완의 중소기업은 기술력 및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 대응력이 뛰어나 타이완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중국 대륙의 서비스 기업들은 대부분 거대 자금을 보유한 국영기업들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륙의 국영기업이 타이완의 영세한 중소기업들을 잠식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이에 따른 실업 발생 및 저임금 노동자로의 전락은 단순한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더 심각하게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자체가 바뀔지도 모른다.
야당인 민주진보당은 대륙 측이 요구한 서비스업 조기자유화 품목에 R&D 서비스업 등이 포함되어 있어 핵심 연구원의 유출이 우려되며, 이에 대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타이완 대졸자들의 신입 초봉(평균 149만 원)이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가 타당해 보인다. 타이완 학생들의 시위에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학생들이 무역개방에 반대해 의회를 점거하고 농성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타이완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도 아세안 10개국을 포함해 40여 개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여러 차례 개방 반대 시위를 경험했고, 중국과의 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타이완의 개방 반대 시위에서도 느끼듯, ‘무역자유화’는 어느 나라도 피해갈 수 없는 국제적 흐름이다. 그리고 국가 간의 무역 자유화는 경제 성장 정도와 경쟁력이 다른 나라들 사이에 협상을 통해 합의하는 것인 만큼 득과 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 당사자 간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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