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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회고 정치의 덫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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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회고 정치의 덫에 빠졌나

[김윤태 칼럼] 무공천과 새 정치의 한계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에서 표현한 대로 20세기의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운 결과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세력은 군사정부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던졌다. 국민의 투표권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찾고 민주적 권리와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험난한 투쟁을 벌였다. 

혁명과 운동의 시대가 끝났다고?

최근 안철수 의원은 정강정책에서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4.19와 5.18은 우리가 계승 발전해 나가야 할 대한민국 미래의 크나큰 이정표”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안철수 의원은 기성 정당을 ‘기득권 세력’이라고 몰아붙였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민주당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불렀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의 악조건 속에서도 복지제도를 확대했으며, 6.15 남북회담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추종한 민주정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를 강화한 최고의 전성기를 대표한다. 이러한 회고 정치의 서사는 설득력을 가지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신자유주의가 미친 강력한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오류에 대해서 눈을 감으려는 잘못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과거 민주정부의 정책 방향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를 추종했으며, 사회경제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지나치게 경제 자유화와 노동 유연화를 추진하여 빈부격차는 확대되고 서민층의 생활이 악화되었다. 부유층의 소득과 재산은 더욱 증가하였으며 대기업 임원의 연봉은 상승하였지만, 소득세와 법인세는 낮아졌다. 민주정부가 등장한 후 비정규직이 더 늘어나고, 노동시장의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뼈아픈 역사로 평가될 수 있다. 평등한 시민권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를 만들었던 것이다.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는가?

민주정부는 자유시장의 효과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반면에 부정적 결과를 과소평가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은 자유시장 접근법에 치우쳤다. 지금도 민주진보세력이 국제 무역, 금융 규제, 고용 확대를 위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보수세력의 감세와 긴축정책에 맞서지 못하고 건전 재정에 논리에 빠진 채로 공공투자와 사회투자의 대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보편적 복지 대신 선별적 복지를 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복지 축소의 정치에 끌려가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경시한 채 역동적 시장경제에 막연하게 기대를 걸고 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권력은 기업, 특히 재벌 대기업에게 넘어갔다. 시장에는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조합,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지만, 시장의 위계적 구조의 정점에는 오직 재벌 대기업이 존재할 뿐이다. 자유시장을 추종한 결과는 곧 정부의 실종이었고, 결국 절망의 정치를 만들었다. 

절망의 정치가 남긴 것들

이러한 절망의 정치의 또 다른 부정적 결과는 엘리트주의이다. 민주정부의 시대에 상당한 정도의 민주화와 분권화가 이루어졌지만, 정보화가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 선거운동에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활용하고 전자정부를 강조했지만, 정치적 영역에서 대중의 자발적 참여가 충분하게 확대되지 못했다. 

정당은 소수의 정치 엘리트와 계파의 볼모가 되었으며, 정부의 정책은 무책임한 관료 또는 재벌의 보고서를 탐독하는 분별없는 정치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정당의 전략이 대중의 관심과 유리되고 정책 결정을 주도하지 못하게 되면서 신당 창당, 대연정, 개헌 등 대중의 삶과 괴리된 정치공학과 선거공학이 정치적 의제를 지배하였다. 

반복되는 정치공학의 오류

대중의 삶의 현실에서 멀어진 과두적 엘리트의 정치 과잉은 결과적으로 대중의 소외감을 유발하였으며 정당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대중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 ‘시민 참여’는 엘리트주의의 한계를 반복하여 계파의 동원 정치로 전락하였다. 당원 주권론과 시민참여 정당론 사이의 논쟁에서 조직은 얻었지만 정치는 사라졌다. 

2012년 대선에서 국회의원 정수와 세비의 축소를 ‘새 정치’라고 강변하는 아마추어리즘은 정치의 기본적 문법을 무지의 소치일 뿐 아니라 정치 불신의 여론을 오독하는 오류의 결과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을 정치개혁으로 내세우는 발상은 결국 정당의 토대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오류는 낡은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무너뜨릴 무기를 찾지 못했으며, 대중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였다. 정치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유권자의 사회심리학을 지배하였다. 결국 절망의 정치는 대중 속에서 정치가 실제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환멸을 키웠다. 그 결과는 낮아진 야권 지지율과 제3의 후보를 쫓아 유동하는 무당파 유권자의 확대이다. 놀랍지 않게도, 언제나 정치권에는 야권의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떠돌아다니고, 신당 창당을 둘러싼 선거공학의 계산으로 분주하고, 대선후보의 인물 비평에 급급하고 있다. 

새로운 방향을 찾아서

이제 다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다. 또 다시 선거공학의 현실정치가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신당 창당의 명분이라고 한다. 과연 이런 발상이 오늘날 민주진보세력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까? 오히려 진정한 위기의 근원은 다른 것이 아닐까? 

나는 민주진보세력을 이끄는 근본적 가치와 이념의 위기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날 자유시장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보통사람의 삶에서 너무 유리된 정치공학에 매몰된 오류를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비전과 방향에 관한 본격적인 논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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