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이 중진들을 대거 차출하며 6.4 지방선거의 전의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야권은 전열조차 가다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서울·인천·강원·충북·광주 등 현직 지사 프리미엄 외 전략이 전무한 상태이며, 안철수 측은 '새정치'를 내세워 '연대 불가론'을 고집하고 있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지난 1월 14일 '야권 전멸할 수 있다'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에서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이 20%포인트 정도 앞서고, 야권은 조각조각 분열해 있다"며 현재 정세가 2006년 5.31 지방선거 지형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 [성한용 칼럼] 야권 전멸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여권이던 열리우리당과 민주당은 그해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개 가운데 12개를 지금의 새누리당(구(舊) 한나라당)에 내주며 참패했다. 서울의 경우,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을 비롯해 25개 구청장 모두를 싹쓸이했다.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는 지난 13일 성 기자와 최근 불거진 새누리당 내 '박심(朴心)' 논란, 야권 승리 전략, 민주당의 야성(野性)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이날은 진행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 이종훈 스포츠 평론가 외 민주당 박용진 홍보위원장이 함께해 정치 고수들의 뜨겁고도 치열한 논쟁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다음은 <이쑤시개> 시즌3 두 번째 방송의 주요 내용이다.(☞ 팟캐스트 바로 듣기)
“까라면 까!”… 박심이 움직인다
새누리당은 총·대선에 이은 지방선거 필승 전략을 세웠다. 서울시장에 김황식 전 국무총리, 경기지사에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홍문종 사무총장·남경필 의원, 인천시장에 황우여 대표, 대구시장에 최경환 원내대표, 울산시장에 김기현 의원, 제주지사에 원희룡 전 의원 등을 올인(All-in)해 전국 17개 광역을 올킬(All-kill)한다는 계획이다. 인적·물적 자원이 총동원되는 셈이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린 이는 과연 누굴까.
성 기자는 주저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다만, 지금은 '선거의 여왕'이 직접 선거운동을 못해 수렴청정(垂簾聽政)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 기자는 "이 구도대로 라면, 안철수 신당 내지는 민주당의 정치 개혁이 거꾸로 된다"며 친박(親朴)·비박(非朴) 없이 여권 주요 인사를 내세워 "집권세력인 여당이 야당보다 더 개혁적으로 선거에 출마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구도를 꿈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적 요구인 정치 개혁 바람마저 여권으로 돌려 순풍에 돛 단 듯 승리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출마 의지가 뚜렷하지 않다. 위에서 하라면 하는, 군대식으로 까라면 까는 새누리당 특유의 분위기 속에 '선당후사(先黨後私)'까지 강요된 출마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선상 반란은 일어나는 법. 최근 남경필 의원은 경기지사 출마를 압박하며 박심을 전달하기 위해 온 주광덕 청와대 정무비서관에게 자신의 뜻은 원내대표에 있다며 "자꾸 괴롭히면 불출마 선언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대통령은 직접 당내 구도까지 조정하는 모양새다.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주영 의원은 당초 원내대표 출마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 기자에 따르면, 장관 내정 축하 인사에 이 의원이 화를 냈다고 한다. 장관직 내정을 달가워하지 않은 것. 하지만 이 의원은 당 내부에 적이 없는 조용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울산시장 출마를 번복한 정갑윤 의원도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성 기자는 "정 의원이 원내대표로 징발되는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을 위시한 친박계 원톱 체제를 더욱 굳힐 것으로 보인다. 정권 임기 4년 동안 서울시정을 함께할 인사로 박심은 이미 김황식 전 국무총리에게 기울었다. 성 기자는 "새누리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하면, 친박이 일치단결해 김 전 총리 쪽으로 쏠릴 수 있다"고 전했다. 결국 "정 의원은 (박심에 밀려) 마지막 순간에 (출마를) 접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새누리당은 윤상현·최경환·이정현·김기춘 등 친박을 넘어선 '종박(從朴)'이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거는 전쟁', 야권 전멸할 수도…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도 절박감에 있어 야권은 여권에 밀린다. 여당은 총동원 체제에서 징발하고 군대식으로 조인트 까고 있는데, 야당에서는 (구도) 조정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민주당에 대한 성 기자의 문제의식은 '절박감 결여'에 있었다. 결연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야성'도 없을 뿐 아니라, '선거에서 지면 전멸한다'는 위기감도 없다는 지적이다.
성 기자는 "총선에서 1당 된다고 했다가 안 됐고,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선거라며 이긴 선거라고 했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에 책임지고 배지 뗀 사람도 없다. 목숨 걸고 안 싸우는데 투쟁력이 나오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선거의 귀신' 새누리당에 맞서 민주당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성 기자는 야성의 투쟁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한길 대표가 통합형 리더십을 발휘해 민주당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당 대표직을 두 번이나 한 손학규 전 대표,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김두관 전 지사, 야권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 등 모두 중요한 자원인데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는 것. 이어 성 기자는 "계파보다 더 앞서는 게 당선 가능성"이라며 특정 계파가 이기는 듯 보여도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성 기자는 안철수 신당과의 선거연대를 주문했다. 연대가 필승은 아니지만, 분열은 필패라는 것이다. 성 기자는 "선거는 복잡하지 않다. 뭉치면 이기고 갈라지면 진다"며 선거연대를 '낡은 정치'라고 덧씌워 연대 불가론을 주장하는 안철수 의원 측을 비판했다. 연대는 기본적으로 정치공학적인 것인데, "'정치공학적 연대는 하지 말라는 게 국민의 뜻이다'라는 '조중동 프레임'을 리트윗(retweet)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정치에는 정치 논리가 있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전쟁이다. 이기고 지는 결과가 나타난다"며 선거를 아이스하키에 비유했다. 뼈가 부러질 만큼 격렬한 몸싸움 끝에, 결과적으로 골을 넣어야(당선돼야) 이기는 경기라는 말이다.
성 기자는 지방선거에서의 야권 승패를 어둡게 봤다. 전체적으로 야권에 불리한 구도 속에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거의 전멸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부 광역단체장 가운데 개인기로 돌파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라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포함해 이번 선거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야권의 차기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한편, 성 기자는 새누리당이 지방선거를 이기더라도 이후 차기 당권 싸움으로 피투성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닥이 아닌 ‘천장’을 친 박근혜 정권이 건곤일척(乾坤一擲)에 버금가는 서청원-김무성 간 싸움을 겪으면서 “오히려 여권은 분열하고 야권은 바닥을 딛고 재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더 치열하게 싸워라!
민주당은 '김용판 무죄' 판결 이후, 대선개입 특검 도입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였다. 일부 의원들이 지도부의 무능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인 것. '조중동'은 이들을 '친노 강경파'라고 이름 붙였다. 친(親)노무현 계열의 386 운동권 출신이라는 뜻이다.
성 기자는 민주당 내 갈등에 과거 김대중 총재 시절에도 비주류가 들이받은 적이 있다며 "야당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돈 없고 권력도 없으니, 목소리나 가치를 가지고 싸우는 게 야당의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 기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권 재창출'의 성공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8년 4.11 총선은 '공천을 주네 마네'하며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친이 대 친박'의 밥그릇 싸움이었지만, 이후 두 세력 간 계파 싸움이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사수' 사태를 거치면서 '효율과 신뢰의 중요성'에 대한 가치 투쟁으로 승화했다는 평가다.
따라서 "민주당은 노선 투쟁을 더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인권법은 어떻게 할 것이냐, 햇볕 정책 2.0의 내용이 뭐냐, 경제민주화는 이름만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박 대통령의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어느 선까지 싸워야 하는가 등 내부에서 더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는 것. 성 기자는 "그래야 민주당이 달라질 수 있다"며 "야성 없이 그냥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야권 유권자가 복덕방 논쟁에서 이겨야 승리한다"이철희 : 야권 성향 지지자들, 또는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이번 지방선거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달라.성한용 : 대선과 지방선거의 주기로 보면, 이런 경우가 처음이다. 1992년 대선이 있었고, 1994년에 지방선거가 없었다. 그다음해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취임 후 1년 3개월 만에 지방선거를 치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경우에 '정권 심판론'이나 '정권 견제론'이 얼마나 작동할지가 큰 관심사이다.그리고 안철수 신당의 변수가 크다. 선거연대에 대해 각자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야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혜로워졌으면 좋겠다. 박근혜 정권이나 새누리당이 만든 프레임이 있다. 조중동이나 종편을 통해 확산하는 게 있다. '연대는 나쁜 것, 정당은 각자 도생해야 하는 것'이라든가 '민주당이 종북숙주론에 입각해 통합진보당처럼 빨갱이를 만들어뒀다'는 이념적 프레임, '햇볕정책 잘못해서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와 같은 얘기들이다. 조금만 공부하면, 말인지 막걸리인지 헷갈리는 복덕방 논쟁에서 이길 수 있다. 좀 더 성찰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안철수 신당이 마지막까지 (독자 후보를 내세워) 선거를 할지 말지는 안철수 의원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신당 당원들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당원 다수가 '박원순 시장이 떨어져도 좋으니까 신당 후보를 꼭 내야 한다'고 하면 출마하는 것이고, '그래도 박원순 시장은 보호해야 한다. 우리 당에서 서울시장 후보 내지 말자'라고 하면 후보를 안 내야 한다. 정치는 상식이기 때문이다.지금이 암울하고 답답한 상황인 것은 맞는데, 모든 선거가 그렇듯이 끝까지 집중력을 놓지 말아야 한다.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선거의 여왕' 박근혜, 지방선거 수렴청정?"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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