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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이렇게 가다간 더 큰 저항에 부딪힌다"

[남재희 인터뷰] '아버지 후광' 업은 인디라 간디를 반면교사 삼아야

따지고 보면 지난 6월, 모든 것이 시작됐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이 기소되자, 일대 반격이 시작됐다. 국정원은 곧바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며 야권에 '무언의 경고'를 던졌다. 이후 국정원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찍혀 나왔고,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해충'에 빗댔던 전교조와 전공노 등에 대한 '노조 옥죄기'도 시작됐다.

1년 전, 박 대통령을 향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 이름)'를 외친 이정희 대표의 통합진보당은 33년 만의 내란음모 혐의를 받은 데 이어 이제는 정당이 아예 해산될 위기다. 같은 시기 TV토론에서 박 대통령과 맞붙었던 문재인 의원은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 여왕과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향하던 바로 그날, 다른 한 명의 대선 후보는 검찰에, 또 다른 대선 후보는 소속 의원들의 삭발식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지난 5개월 동안, 국내 정치는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공안몰이 광풍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쳤다. 교묘한 '물타기 전략'과 '반대파 진압 작전'이 촘촘하게 구동됐다.

지독히도 낡은 방법이다. 이념을 동원해 나라를 둘로 갈랐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 됐고, 절반의 '내 편'의 지지에만 기반해 통치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던 13일, '이석기 사형'과 '이석기 석방'을 외치는 두 개의 그룹으로 갈린 수원지법 앞의 모습이, 오늘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그렇게 '공안'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됐다. 그러는 사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외쳤던 국민 대통합도, 경제민주화도, 복지 공약도 모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난 인터뷰에선 "자칫하면 공안 정국으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현 시국을 "공안 정국"으로 진단하는데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이념을 중심으로 나라를 둘로 쪼갠 통치 방식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보수층에 안주해 너무 쉬운 길을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미 저항이 시작됐으며, 이대로 가다간 더 센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역사의 교훈은 반복성에 있다. 철학자 산타야나는 '역사를 망각한 자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한다'고 했다. 남 전 장관은 손수 챙겨온 미국의 계간지 'The wilson Quarterly' 1982년 겨울호에 실린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에 관한 기사를 펼쳤다. 7억 인도인들의 독립을 이끌었던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권좌에 오른 뒤 10만 명의 시민들을 투옥시킨 독재자로 변모하는 과정이 담긴 글이다. 아시아의 위대한 민주지도자를 아버지로 둔 인디라 간디도 그랬을진대 독재자 아버지를 롤 모델로 삼아 위태로운 공안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박 대통령 역시 "내가 곧 대한민국"이라는 독선에 취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지면서도 남 전 장관은 야권에 "극단은 안 된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정권과 싸울 수밖에 없는 숙명의 야당이라도, 박근혜 정부의 5년의 성공을 도와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정치가, 더 나아가 국민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다. 11일, 서울 서교동 프레시안 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남 전 장관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국정원 대화록 공개부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까지̴…일관된 '흐름' 보인다"

프레시안 : 지난 8개월을 복기해보면, 경제민주화나 복지 공약 등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묻혀버리고, 오히려 정권의 유지를 위한 '가짜 이슈'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것 같다. 국내정치 상황만 놓고 본다면, 이른바 '종북몰이'를 통한 정권의 보위에만 신경 쓰는 느낌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남재희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화두로 내걸었던 것이 경제민주화와 복지였다. 복지 국가 얘기도 상당히 했었는데, 집권 뒤 기조가 '증세 없는 복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멸돼 버렸다. 증세까지는 어렵다고 해도, 이명박 정권 때 부자감세를 했던 것만 회복시켰다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을 텐데, 그조차도 안 했던 것이다.

한 야권 인사가 박 대통령에게 '증세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석했는데, 박 대통령이 증세에 상당히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데에는,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도입했던 부가가치세에 대한 저항도 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듬해 총선에서 야당에게 1.1% 진 것이(대통령이 임명하는 유정회 의석 덕택에 의석 수에서 밀린 것은 아니지만) 정권 몰락의 서막이었고, 그걸 지켜본 박근혜 대통령이 '섣불리 증세를 하다간 정권이 망할 수도 있다'는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번 세법 개정안도 국민들의 저항이 나오니 당장 철회한 것 아닌가. 마치 남의 얘기처럼, 자기는 몰랐던 것처럼 뒤집었다.

경제민주화도 비슷한 패턴이다. 대선 때는 경제민주화를 상당히 선전했고 득표도 많이 했는데, 유야무야 사라져 버렸다. 맞물려서 김종인 전 장관도 대선 때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활약했다가 선거가 끝나자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보면 대선 때 내걸었던 가장 중요한 이슈들이 전부 사라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안 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일단 여기엔 복지처럼 돈은 들지 않는다. 지난 8개월을 돌아보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보인다. 국정원이 지난 6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공개하고, 이어 국정원 수사를 담당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과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전교조를 법외 노조화 시켜버렸다. 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안을 제출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소위 공안 정국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표현을 달리한다면 권위주의 체제로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박정희 시대의 재판으로 접근하고 있는 추이가 아닌가 싶다. 이 역시 일종의 트라우마로 보이는데, 박정희 정권의 특질 중 하나가 반대파에 대한 완강한 대화 거부였다. 더 나아가 반대파에 대한 상당한 증오심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시절 말하자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지 않았나. 그 당시 경험이 익숙해진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제일 낫다고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넘어, 아버지의 통치 방식을 일종의 '롤 모델'로 보고 있는 것이다.

"朴 대통령, 부친을 롤 모델로 삼다가는…"

프레시안 : 일부 여당 의원들조차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남재희 :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초기에 3자 회담이란 절충안도 내놓았는데, 처음엔 그조차도 묵살하지 않았나. 여당의 중재안조차 무시한 것이다. 같은 당 정몽준 의원이 최근에 "보고서만 읽지 말고 여의도 정치인들 좀 만나라"고 일침을 놨더라.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다. 보고서만 봐서는 사태 파악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고 보고서만 읽다 보니 권위주의적 스타일만 심화되고, 언론 표현대로라면 대통령의 '레이저 광선'에 여당 의원들도 기가 죽어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하지 않나. 측근들이 올린 보고서에만 매몰된다면 일종의 편집증만 자꾸 생길 수밖에 없다.

인도의 2세 정치인 중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윌슨센터에서 1982년 발간한 계간지에 인디라 간디 평전에 대한 소개 글이 있는데, 내용을 보면 독재자로 평가받는 인디라 간디는 '내가 곧 인도다'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인디라 간디는 약 10만 명의 반대파를 투옥시켰고, 대화와 토론을 일체 안 했다. 양보나 대화, 타협, 토론 자체를 상대에게 자신이 약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페이퍼는 인디라 간디가 "세상 일에 대해 마음을 닫았다"고 표현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부친인 네루는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민주적 지도자였다는 점이다. 그런 그의 딸마저도 독재를 했다는 대목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먼 미래겠지만 우리도 대통령제가 아니라 내각책임제로 가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물론 인도는 내각책임제인데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제는 정권이 권위주의화 되기 쉬운 제도기 때문이다.

인디라 간디 (Indira Gandhi, 1917~1984년)

인도의 첫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딸. 부친에 이어 1966년부터 1977년까지, 1980년부터 경호원의 총에 맞아 숨진 1984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를 지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에서 1982년 발간한 계간지에 실린 글 <네루의 조용한 딸(Nehru's Quiet Daughter)>은 인디라 간디가 1966년 신임 총리로 취임한 데에는 부친 네루의 후광이 영향을 미쳤다고 기술한다. "네루의 죽음이 빚어낸 불확실한 상황이 인디라 간디를 총리로 만드는 한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또 당시 간디는 총리로 선출됐지만 "정치적 리더십이 있다고 평가되지는 않았"으며, 앞서 그가 1955년과 59년에 국민회의파의 운영위원회와 당수의 자리에 오른 것 역시 "네루의 딸에 대한 수여의 차원"이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총리직에 오른 간디의 대중적 이미지는 "네루의 동반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으며, 무엇보다 인디라 간디 스스로도 정치적 야망이 큰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9년 뒤, "조용한 네루의 딸"이었던 인디라 간디는 "10만 명의 시민을 감옥에 투옥하고, 검열을 도입하고, 헌법적 권리를 유린하는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인도 민주주의의 최대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75년 비상사태 체제 선포를 하기도 했다. 경제난과 정치 부패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강권 정치에 돌입한 것이다.

그렇게 독재의 길로 들어선 인디라 간디는 1977년 열린 총선거에서 5개 야당 연합에 대패해 물러났지만, 2년 뒤 데사이 정부가 붕괴되면서 1980년 다시 총리직에 오르게 된다.

글은 존경받는 민족운동 지도자의 무남독녀이자 그 스스로는 내성적이었던 인디라 간디가 어떻게 '독재자'로 변모했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이에 따르면, 인디라 간디는 스스로를 "네루의 계승자"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가 곧 인도"라고 믿게 됐다. 실제 1975년 당의 연말 행사장에선 인도 국가에 이어 "Indira Hindustan Ban Gai(인디라는 인도가 되었네)"는 노래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1982년 발간된 이 글은 신문과 방송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그 해 2만5000여 명의 인도인들이 체포됐다는 점을 기술하며 끝을 맺지만, 2년 뒤 인디라 간디도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인디라 간디는 1983년 인도와의 분리독립 운동을 벌이던 시크교의 가장 신성한 성지인 황금사원을 탱크까지 동원해 진압했고, 결국 이에 반감을 품은 시크교도들에 의해 1984년 총을 맞고 암살 당했다. 암살자는 인디라 간디의 경호원들이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15년 동안의 의회정치 경험이 있지 않나. 2세 정치인의 일반적인 현상으로만 볼 수 있을까.

남재희 : 물론 국회의원 생활을 오래하긴 했다. 그러나 정치를 시작한 계기부터, 아버지를 최고의 통치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주자학의 분위기가 강했다. 지지 기반인 경북 지역도 그런 정서가 강하다. 여기에 일본 육사를 다녔고, 육사의 군국주의적 상무정신을 습득했다. 만주에 있는 동안엔 기시 노부스케가 역할했던 괴뢰정부 만주국에서 계획경제 노선을 습득했다. 심지어는 새마을운동조차도 왜정 말기 있었던 농촌운동을 따온 것이다. '아다라시이(新) 무라(村) 츠쿠리(作)', 즉 '새 마을 만들기'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그런 식으로 체화를 했던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인데, 그런 노선이 1960~70년대 국가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이미 시대가 몇십 년이 흐른 상황에서, 지금도 아버지의 노선이 최고의 모델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 발전도 어느 정도 성숙한 궤도에 올라섰고, 일단 지금의 발전 단계와 맞지 않는다. 아직도 아버지의 모델에 집착하는 것은 곤란하다. '슈도(pseudo) 박정희', 즉 유사 박정희가 되려는 레짐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걱정이 된다.

프레시안 : 지난 8개월을 돌아보면 검찰이나 국정원 등 국가 권력기관이 정국을 주도했고, 일각에선 '권력기관의 사유화'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권력기관을 통해 정치를 통제하려는 면에선 박정희 정권과 비슷한 방식인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남재희 :
노동도 엄청나게 조이고 있다. 징조가 나쁘다. 전교조 법외 노조화가 논란인데, 국제노동기구(ILO)도 권고하지 않았나. ILO는 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엔(UN)보다 역사가 깊은 기구다. 그런 권위 있는 국제 기구가 거듭 법외 노조화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이명박정부 이후 무력화됐다는 우리 국가인권위원회조차 법외 노조화는 인권 침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밀어붙인 것이다.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뜻대로 하겠다'는 식이다.

프레시안 :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 중 하나가 '그래도 경제는 성장시켰다'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을 통치의 '롤 모델'로 삼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경제나 민생의 개선에 주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소위 공안몰이 등 '내부의 적' 색출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남재희 : 박정희 정권 시절과 지금이 경제 발전 단계가 다르지 않나. 한국뿐만 아니라, 당시엔 '아시아의 4대 용'으로 불렸던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발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정책도 효과가 있었지만, 경제 발전 단계에 있어 이미 토대가 마련된 상황이었다. 지금은 그 당시와 달리 경제가 상당히 성숙했기 때문에, 그 때와 같은 계획경제 방식의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박 대통령이 남은 4년의 임기 동안 비약적인 경제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현상 유지만 잘 해도 다행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권위주의 체제 강화만 느끼고 있으니, 그게 상당한 불행 아니겠나.

"朴 대통령, '쉬운 길'에 안주해선 안 돼"

프레시안 : '공안 통치' 방식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남재희 : 박 대통령이 자꾸 쉬운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기본적으로 보수의 세력이 강하니, 그것만 믿고 자꾸 오른쪽으로 편향되는 것이다. 힘의 관계상 쉬운 코스로 가고 있다. 정치를 한다면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데, 자꾸 쉬운 길만 가려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것 아닌가.

얼마 전에 국정원장과 청와대 비서실장이 극우 인사들만 만났던데, 하필이면 그게 <조선일보>에 크게 보도됐다. 정권 핵심 인사들이 온건 보수도 아니고 극우 대표급 인사들만 만난 것이다. 권력 역학상으로는 참 쉬운 길이다. 이렇게 편한 길만 걷다 보면,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에선 타개책이 안 나온다. 사실 박 대통령이 과거 김정일도 만나고 해서, 적어도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는 남북관계 쪽에선 진전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보수나 극우들은 남북관계 해결을 바라지 않는다. 이 점만 보더라도 앞으로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보수 세력이 강한가. 분단 상황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영남 패권이 강하기 때문이다. 호남 인구를 전부 합쳐봐야 경북과 피장파장이다. 단순히 표 계산만 해서 보수 쪽으로 편향되는 쉬운 길만 가기 때문에, 정치 발전이 없는 것이다.

프레시안 : 후보 시절엔 전략적으로 지지 기반에 집중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보통 중도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 점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후보 시절엔 중도층까지 아우르려는 경제민주화나 복지, 국민 대통합을 앞세웠는데, 정작 당선 이후엔 보수층에만 편승하는 느낌이다.

남재희 : 정치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중요한 것이다. 비(非)지지층의 비판이나 저항도 있고, 그걸 해결하려는 노력도 해야 정치 발전이 있는 것이다. 안주하는 코스로만 가다간, 권위주의 체제만 강화되고 정치 역시 정체될 수밖에 없다.

상당히 불안하다. 국정원 문제부터 전교조 법외 노조화,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이 정권이 불안 요소를 스스로 너무 많이 안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작된 것 같은데, 더 센 저항으로 번질 것이다.

미국의 한국 연구자 글렌 페이지 교수의 글에 이런 요지의 내용이 있다.

"한국인들은 권위주의 체제 스스로가 극단으로 흘러 제 풀에 망해버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인내의 한계를 벗어나면 파탄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잠깐 동안의 감각적인 해방을 의미할 뿐이고, 그리고 또다시 조여드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결국 권위주의 체제가 극단으로 흐르면, 내부의 문제로 스스로 붕괴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붕괴를 부른 것도 결국엔 김재규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권위주의 정권의 붕괴로 얻게 되는 해방도 일시적인, 감각적인 해방일 뿐이다. '아, 이제 민주화 됐다'는 생각을 하지만, 제도적으로 민주화를 달성한 것은 아니다 보니 또 다시 새 집권자의 '조여드는 일'이 되풀이 된다. 잠깐의 이완이 있다가, 다시 조여드는 것이다.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는 또다시 극단으로 치닫게 되고, 내부의 문제로 붕괴된다. 반복되는 것이다. 지금 국면에서도, 이 이론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당히 불안하다.

ⓒ프레시안(최형락)

"야권, 파비우스의 전략 배워라!"

프레시안 : 청와대가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야권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야권의 움직임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도 계속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에 조언을 한다면?

남재희 : 로마시대 한니발과 맞서 싸운 퀸투스 파비우스(Quintus Fabius)라는 장군이 있었다. 이른바 '파비우스 전투'의 특징이, 전면적인 결전 대신 조금씩 조금씩 싸움을 하면서 소모전을 통해 상대를 지치게 하는 것이다. 영국의 점진적 사회주의인 패비아니즘(Fabianism)이란 말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야당이 명분도 많이 쥐고 있는데, 왜 대여 투쟁이 그렇게 시원치 않느냐는 지적을 많이 한다. 사실 5년 내내 조금씩 축적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보통 야당 인사들을 만나면 '박근혜 정부가 5년을 잘 운영하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자극해서 그 5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게 한다면, 야당도 불행해진다. 어떻게든 이 정부가 5년 동안 잘 해주길 바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야당이 너무 강경투쟁을 해서 정부를 상대로 죽기 살기로 싸우면 안 된다고 본다. 야당이 극한 투쟁을 한다면 우리나라가 불행해진다. 극한 투쟁을 이어간다면 전면적인 탄압, 아니면 정권 붕괴의 결론 밖에 없는데, 그건 불행한 일 아닌가. 야당은 야당 나름대로 점진적으로 싸워나가야 한다. 파비우스의 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확확 바뀌어버린다면, 우리 정치는 물론 국가도 불행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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