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역사 교육과 역사 연구를 두루 섭렵한 인물이다. 학부에서 역사 교육을, 대학원에서 한국 근대사를 전공했다. 최근엔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은 물론 일본의 고교 역사 교과서 17종을 검토하는 작업도 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기획한 <미래를 여는 역사> 제작에 참여하는 등 동아시아 역사 대화 작업도 오랫동안 했다.
<프레시안>은 김 교수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김정인 교수 인터뷰 ① "교학사 교과서는 수구 종북…거기에 국민은 없다" |
프레시안 : 종북 프레임이 전면에 드러난 건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정인 : 박 대통령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올바른 역사 교육"을 강조하는 식으로) 한마디를 하면 밑에서 그걸 경쟁적으로 배가하는 것 같다. 사실 박 대통령은 말이 아니라 인사로 보여주고 있지 않나. 이승만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을 국편 위원장에, (친일 미화 논란을 일으킨) 이배용 교수를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배치하는 식으로 보여줬다. 국편 위원장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이 정도로 논란이 있는 사람들을 앉힌 적은 없다. 이명박 정부도 그렇게 하진 않았다.
(취임 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아버지를 찬양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인사로 보여줬다. 그걸 보고 밑에서 더 경쟁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면서 (역사 문제를) 과도하게 정치 쟁점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년간 (우파 성향) 언론과 정치인을 동원해 시끄럽게 문제를 제기하고 그걸 부풀리는 식이었지, 단 한 번도 학문의 장에서 (제대로) 논쟁한 적이 없다. (저쪽에서) 자신이 없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다. 보수 우익은 그걸 통해 자신들이 대한민국 성장의 주역이란 걸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하는 거다. 그런데 한 번도 국민을 설득한 적이 없다. 설득하려면 국민 정서를 존중하면서 그에 맞게 전략을 짜야 하는데, 폭력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가르치려 든다.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이다. '역사는 정치의 무기'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교학사 교과서는 정치의 무기로는 너무나 약하다. (그런데 저들은) 무기의 질도 따지지 않고 있다.
하나 더 짚을 건, 박근혜 정부 들어 사회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의 선을 너무 쉽게 넘어버린다는 거다. 그렇게 된 건 (최고 권력자의) 네트워크 문제와 관련 있다.
프레시안 : 어떤 의미인가.
김정인 : 박근혜 정부가 들어설 때, 아시아에 속한 다른 나라의 여성 (최고) 지도자들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아시아에서) 10번째(여성 최고 지도자)였다. 나머지 9명은 모두 최고 권력자의 딸, 부인 등이었다. 그런데 다 실패했다. 그 이유는 자기 스스로 형성해 놓은 네트워크가 없어서였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절한)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건데, 그 일에 필요한 폭넓은 정보가 가로막혀 있었던 거다. 그러니 측근 정치를 하다가 신뢰를 잃는 수순을 밟았다. '박근혜 정부도 이렇게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윤창중 사건 등을 보면 똑같이 가고 있는 것 같다.
네트워크가 없는 대통령 밑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들 '소통령'이라는 거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입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면서도, 대통령이 (콕 집어) 말하는 것만 해주고 나머지는 다 자기들 맘대로 하는 식이다. 특히 네트워크가 없는 대통령 아래서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은 '소통령 중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소통령' 시대를 맞아 각계에서 그런 사람들이 날뛰고 있다. 올드보이들이 '내가 권력이다. 내가 이야기하면 그게 곧 관철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하나의 목소리를 국민들에게 요구하고 하나의 생각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교과서 문제의 경우) '8종을 다 읽고 비교는 해봤나? 다 읽었으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교조 불법화만 해도, 이명박 정부도 몇 번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실행하진 못했다. 그걸 박근혜 정부는 과감하게 해버렸다.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저들이 무리수를 두고 있는) 역사 교과서 문제나 전교조 문제는 올드라이트에게 덫이 될 거다.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 건데, 저들은 그걸 모른다.
ⓒ연합뉴스 |
"학문·교육·자본이 권력의 시녀 노릇"
프레시안 : 다시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짚었으면 한다. 교육부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인 : (이명박 정부 때) 김도연 교육부 장관은 "(역사 교과서나 역사 교육은 다소) 좌향좌돼 있다"고 했다. 딱 입장이 섰다. (그에 비해) 서남수 현 교육부 장관은 (좌편향 논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서 장관에게 개인적으로 '교학사 교과서가 교과서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보느냐'면 물으면 '예'라고 할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교육부도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다 알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교육부는 (그것에 대해선) 아무 말도 못하고 '한국사가 수능 필수이기 때문에 (8종 교과서를 모두) 수정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수능 필수 과목이 한국사뿐인가? 국어, 영어, 수학 등도 있지 않나. (교육부 논리대로라면) 다른 건 왜 안 하나. 정확히 이건 교육부가 (이 문제에 대해)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번 문제에 관한 방침을 정말 교육부에서 결정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정인 :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적 입장에서 보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교학사 교과서를) 다른 과목 교사에게 보여줘도 교과서로서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교학사 교과서 사건은 학문과 교육이, 심지어 교학사라는 자본까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될 거다. 그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교육과 학문과 자본까지 모두 권력에 종속되는 이런 사건은 최근에 없었다.
국편은 부적격 교과서를 통과시켰다. 국편에 모여 있는 학자들이 묵인해준 거다. 이런 전례를 남긴 건 학계로선 치명타다. 국편이 검정을 통과시키지 않았으면,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검정 승인을 취소했어야 할 교육부는 무리수를 두면서 다른 7종 교과서 필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자부심을 가지고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써온 이들에게 예의도, 염치도 없는 행동을 한 거다. (교과서 저자가 아닌) 나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그들은 오죽하겠나. 교육도 권력의 시녀가 된 거다. 교육부가 이렇게 수준 낮은 교과서를 내게 하는 건 대통령을 돕는 일이 결코 아니다. 또 교학사 자본도 거기에 말려들어 경영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아닌가.
프레시안 : 교육부의 수정 명령권과 저자들의 소송 가능성이 부딪치는 상황이다.
김정인 : (저자들이) 탈법적인 절차에 문제 제기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법에 근거하지 않은 절차 전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현장에서 모든 한국사 교과서를 쓸 수 없는 극단으로 갈 수도 있다. 교육부가 그런 상황을 만드는 일을 벌이고 있다. 그게 교육 현장에 커다란 혼란을 발생시킬 수 있는데, 교육부는 거기까지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필자들의 고심과 노력, 교육부마저 평가 절하"
프레시안 : 기존 교과서들이 좌편향돼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교과서들을 비교 검토했는데, 어떤가.
김정인 : (교학사 교과서는) 7종하고 정말 다르다. 7종 교과서는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서술의 공정성 문제를 상당히 의식했다. 이명박 정부 때 있었던 논란을 염두에 두면서 교과서를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눈치를 본다고 비판할 건 아니다. 싸우다보면 그걸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교과서 논쟁을 거치면서 필자들이 굉장히 고심하고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교과서 자체로는 분명히 좋아졌다.
현대사 부분에서 공과 과를 함께 쓰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저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만 발췌해 좌편향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 가령 새마을운동에 대해 공도 쓰고 과도 썼다. 금성교과서는 물론이고, 7종 교과서가 다 그렇다. 개중엔 공을 더 많이 쓴 교과서, 과를 거의 안 쓴 교과서도 있다.
북한에 대한 서술도 그렇다. 오해의 소지가 있던 표현이 예전에 조금 있었다면, 그에 대한 비판을 많이 염두에 두고 쓰려고 노력한 게 느껴진다. 이런 걸 전혀 얘기하지 않고, 뭉뚱그려 좌편향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권력에 빌붙어 밀어붙이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교육부마저 그런 노력을 평가 절하한 것 아닌가. (저자들이 교육부 수정안 수용을) 거부하는 게 납득이 간다.
프레시안 : 금성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몰아간 의도는 불순했지만, 논쟁을 거치며 전반적으로 나아진 면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빨간딱지를 붙인 이들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김정인 : 그렇다. (예전에) 금성교과서를 읽어보면 몇몇 표현에서 조금 거친 부분이 있긴 했다. 약탈, 강탈, 수탈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학생들에게 금성교과서와 교과서포럼이 낸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같이 읽혀봤다. 학생들이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 이런 말이 많이 나오네요'라고 하더라. 학생들이 문화적으로 이젠 '(약탈, 강탈, 수탈 같은) 그런 말들은 강도가 세다'는 감수성을 갖고 있는 거다. 그래서 교과서들이 일제에 대해 강도 높은 언어들을 자제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반대할 수 있지만 그 표현은 순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게 많이 반영됐다.
프레시안 : 그런 과정을 거쳐 다시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불붙었다. 교과서로서 기본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 역사 해석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할 터인데, 걱정스럽다.
김정인 : 지금의 논쟁이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지 의문이다. (좌편향 딱지가 난무하는)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처럼 됐기 때문이다. 또 저쪽에선 '친북 좌파'라는 공격만 하고 이쪽에선 친일 문제를 부각하는 식으로 평행선을 달리는 양상이다. 이걸 어떻게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어야 할 것인지 (고민이다). 이 문제를 학문의 공론장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쓴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2008년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나왔을 때 벌어진 논쟁에선 (저들도) 민주화와 산업화가 대한민국 정체성이란 걸 쉽게 부정하지 않았다. 이쪽에선 보수 우익이 강조하는 성장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보수 우익은 민주화, 자유, 인권, 평등과 관련해 자기들이 이룬 성과를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성장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젠 그 정도 얘기조차 하기 어렵다. 종북 프레임으로 확 가버렸기 때문이다.
교육은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 교육법에도 그렇게 돼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걸 버렸다. 큰 패착이다. 정부는 명백하게 한 교과서를 비호하기 위해 한국사 교과서 전체를 매도하고 문제 있는 교과서로 낙인찍었다. 한국사 교과서 7종이란 건, 다시 말하면 역사학계와 역사 교육계 전체를 말하는 거다. 이 전체를 매도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을 (사실상) '친북 좌파'로 만들어버린 것 아닌가. 대화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 9월 25일,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 교실' 참석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극우로 가버린 보수…분화할 가능성 높다"
프레시안 : 2년 전만 해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에서 "민주화 세력의 주류가 우리 한나라당에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두 축을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물론 '산업화는 당연히 우리 것, 민주화도 알고 보면 우리 것'이라는 강변이긴 하다. 그런데 요즘엔 "좌파와 역사 전쟁"(김무성 의원) 같은 말이 전면에 등장하는 분위기다. (관련 기사 : 새누리당과 뉴라이트의 '6월항쟁 탈취' 사건)
김정인 : 보수 진영의 역사 인식의 주류 자체가 수구로 퇴보한 거다. 극우로 가버린 것이다. 예전엔 합리적 우파(를 지향했던 이들)의 입지가 있었는데, 상황이 바뀐 거다. (이대로 가면) 보수가 분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거다. 노무현 정부 때 진보 개혁 진영이 분화한 것과 똑같다.
(종북 프레임을 내세우는) 이 사람들은 (엄밀히 말하면) 뉴라이트가 아니다. 올드라이트의 귀환이다. 난 한·중·일 역사 대화를 10년 했다. 나라가 다른 건 물론 대화의 장에 나온 사람들의 레벨도 달랐다. 한국은 반관반민이고, 중국은 사실상 관이 나서고, 일본은 완전히 시민 단체다. 그래도 대화해서 책을 냈다. '한국에서도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교학사 논란을 보면서 '당분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드라이트가 귀환해 종북 프레임으로 모든 걸 재단하고, 이전엔 상당히 뉴라이트적 면모를 보였던 언론들마저 종북 프레임에 갇혀 합리적 보수까지 종북으로 비방하는 상태까지 가는 건 곤란하다. 이제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를 분리해야 한다. 보수가 분화해 뉴라이트가 목소리를 내고, 보수 안에서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프레시안 : '대화 상대를 찾습니다', 딱 이 상태로 보인다.
김정인 : 그렇다. 뉴라이트하고는 그나마 대화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특히 역사 교과서를 놓고는 대화할 상대가 없어졌다. 당황스럽다. 예전엔 (뉴라이트 진영에) 안병직·이영훈처럼 학문적 자세를 유지하려 한 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침묵하고 있다. 그분들이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역사학계는 별로 변한 게 없는데, 저쪽에서 우리를 보는 잣대가 가혹해져 지금 같은 상황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일보>의 "남로당 사관" 이야기, 되게 우스웠다.
프레시안 : 그 보도를 봤을 때 '차라리 조선노동당 사관이라고 하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정인 : 내 이야기가 그 이야기다. 남로당이라는 건 오래 못 가고 사라진 정당이다. 남로당 사관이라는 건 실체가 없다. (어쨌건) 문제 해결의 열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교육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다른 하나는 보수 안에서 이전의 뉴라이트적인 요소가 부활할 수 있을 것이냐다. 지금은 뉴라이트가 (사실상) 죽었다고 봐야 한다. 자기 목소리를 안 내지 않나.
국정원이 만든 <반대세의 비밀>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은 보수를 세 세력으로 나눈다. 건국·호국 세력, 경제 성장 세력, 자유민주화 세력이다. 지금은 첫 번째, 두 번째 세력이 날뛰면서 세 번째 세력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올드라이트가 자기주장만 하는 국면이다. 오래가진 않을 거라고 본다. 저렇게 가는 건 보수의 재집권에도 도움이 안 된다.
▲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국정 교과서로 돌아가자? 그건 퇴행"
프레시안 :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검인정 교과서에서 국정 교과서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검인정 제도 자체가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김정인 : 국정 교과서가 좋았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질과 체제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국정 교과서로 돌아가는 순간 후진 교과서를 만드는 거다. 국정 교과서를 만드는 시스템이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교과서는 질이 정말 낮다. 지금도 초등학교 교과서는 그렇게 만드는데, 수준이 너무 낮다고 비판하는 학부형이 많지 않나. (예전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도 시대별로 다른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편차가 너무 심하고 학설도 통일돼 있지 않았다. (이와 달리) 검인정 교과서는 시장에 내놔야 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국민들 정서도 생각하고 어떻게든 잘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국정 교과서 체제는 사람들의 문화적 감수성에 맞지도 않는다. 퇴행이다. (국정) 국사 교과서랑 (검인정)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배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하면, 다들 후자가 낫다고 할 거다.
이런 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걸 싹 숨기고 하나의 사관을 주입하기 위해 국정 교과서를 만들겠다? (그걸 꿈꾸는 사람들은) 386세대 사례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국정 교과서 내용)이 국민 정서에 반할 경우 다시 그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적잖은) 386세대가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 운동을 한 건 (달리 보면) 교과서를 부정한 거였다. '우리한테 가짜를 가르치다니', 이거였다. 국정 교과서 체제는 돌아갈 시스템이 아니다.
프레시안 : 검인정 체제에 문제가 없다는 뜻인가.
김정인 : 그렇지 않다. 난 교과서 자유 발행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학사 교과서 검정 취소를 요구하는 역사학계 서명에 동참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진보 진영에서 교학사 교과서 검정 취소를 요구하며 바로 대정부 투쟁으로 나아간 것도 조금 아쉽다. 박근혜 정부에 굉장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랬던 것이긴 하지만, 교과서 시장에서 국민을 향해 '결격 사유가 많은 이 교과서는, 이념을 떠나 교과서가 아닙니다'라고 불채택 운동을 하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일본에서도 (후쇼사 교과서가 나왔을 때) 그렇게 했다.
"자학 사관? 찬양만 하는 건 학문이 아니다"
프레시안 : 일본 쪽과 역사 대화를 오랫동안 진행했고 얼마 전 일본의 역사 교과서도 분석했다. 일본에서도 역사 교과서 우경화 바람이 만만치 않았는데, 최근 한국 상황과 비교하면 어떤가.
김정인 : 일본 같은 경우 정해진 검정 절차나 법을 준수하면서 자기 입장을 관철하려 노력한다. 의도한 대로 바꾸고자 하면, 그것에 맞는 절차를 만들고 나서 한다. 민주적인 합의를 무시하는 요즘 한국과는 다르다. 정치 바람에 교육이 무너져가는 건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다. 또한 (출판사들이) 교과서 성향을 유지하면서도 정부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본의) 문화도 우리에겐 없는 거다. 일본 방식이 훨씬 낫다고 본다. (물론) 일본 교사들은 (우경화를) 위기라고 느낀다.
프레시안 :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이들 사이에선 기존 교과서가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로막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른바 자학 사관이라는 주장이다.
김정인 : '교과서가 너무 자학적이다', (극우가 즐겨 하는 건데) 한국에서만 나온 말이 아니다. 1980년대 영국, 1990년대 미국과 일본, 200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 다 나왔고 독일에서도 이런 논쟁이 있었다. 얼마 전엔 영국 총리가 역사 교육에서 애국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가 반발을 사지 않았나. 정쟁을 위해 역사 교과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싸움에서 정치인들이 이긴 적이 없다.
역사학이란 비판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학문이다. 그게 역사학이다. (제대로 된) 역사학자는 노동자, 약자 편에 서는 경우가 많고 다수 속의 소수, 다문화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런 비판적 시각을 버리고 갑자기 찬양만 하라? 그건 학문이 아니다. 이런 마인드가 역사학계에 굉장히 강하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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