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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대통령·새누리당, 믿는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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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는 대통령·새누리당, 믿는 구석이 있다

[편집국에서] 결국, 다시 선거가 문제다

한 지인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 주민 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 영어 강의를 들었단다. 강사는 미국에서 은퇴하고 이국에서 제2의 삶을 즐기는 머리 하얀 할머니. 어느 날, 주변을 지나던 선거 운동 차량의 확성기 소음에 강의가 중단되었다. 한 번 인상을 찌푸린 이 할머니의 한마디는 이랬다.

"그래도 한국은 미국보단 나은 편이야. 한국은 선거 때만 저러죠? 미국은 1년 내내 저래요."

사정은 이렇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14일(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 등)에서 23일(대통령)의 선거 운동 기간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미국은 선거 운동 기간을 법으로 따로 정해둔 바가 없다. 예를 들어, 2년 임기의 하원의원은 당선 혹은 낙선과 동시에 2년의 선거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러니 미국 하원의원은 당선되었다고 희희낙락하면서 폼 잡을 새가 없다. 자신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 즉 시민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당장 재선이 어렵다. 좋든 싫든 늘 여론의 추이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낙선한 경쟁자가 두 눈 부릅뜨고 표밭을 훑고 다니는데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선거에 목을 매서야 어찌 '소신' 있는 정치를 하겠느냐고? 혹시 이렇게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민주주의의 기본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자신을 뽑아준 시민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치인의 '소신'이 민주주의에 가당키나 한가? 게다가 나는 한국 국회의원이 2년 임기 내내 선거 운동을 해야 하는 미국 하원의원보다 일을 더 잘 한다는 소리를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뜬금없이 선거 얘기를 꺼낸 이유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황당한 법안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선거 운동 기간에 현수막과 어깨띠 등을 사용한 투표 참여 권유 행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인들은 5년마다 자신들이 대표를 직접 선출하므로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5년 중 단 하루만 자유로울 뿐이다."

대의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장자크 루소의 이런 주장은 역설적으로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각종 선거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그나마 매번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낮아서 그 정당성을 놓고서 회의적인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선거의 투표율을 높일 방법을 궁리해야 할 국회가 투표 참여 권유 행위를 금지하다니 이게 웬 말인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한 투표 권유 행위가 문제가 되자, 공직선거법을 고쳐서 그것을 허용하게 한 것이 2012년 2월 29일이었다(공직선거법 제58조). 덕분에 이제 SNS에서 투표를 권유하는 일이 범법이 되는 일은 피했다.

그런데 채 2년도 안 되어 이번에는 현수막 등의 방법으로 시민에게 투표 참여 권유 행위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현수막 등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연상시킬 수 있는 색깔이나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게 문제라는데, 선거 공간에서 정당이나 후보자를 부각시키는 게 왜 문제인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선거 공간이 민주주의의 꽃이 되려면 가능한 한 정당이나 후보자가 자기 색깔을 날 것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기꺼이 투표장으로 나서서 자신의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당, 후보자는 물론이고 시민이라면 누구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온갖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게 맞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선거 기간의 허위 사실 유포 등을 형사 처벌하는 일도 없어지는 추세다. 왜냐하면, 이런 규제가 선거 공간에서 정당, 후보자의 검증을 위축시키는 역기능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만 선거 공간의 '후보자 비방' 혹은 '허위 사실 공표' 등을 문제 삼아 형사 처벌하는 숫자가 늘고 있다. (☞관련 기사 : 한국 '표현의 자유' 고발한 유종성 교수)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슬그머니 통과시킨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투표율이 낮을수록 또 선거에 관심이 적을수록 유리한 한나라당, 민주당 등 기성 정당과 국회의원의 짬짜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까지 동원한 선거 운동으로 대통령의 정당성마저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철도 파업 지도부의 일부가 공권력을 피해서 조계사로 피신하고, 수많은 신도와 시민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의 사찰을 경찰이 에워싸는 엽기적인 연말 풍경을 보면서 막가는 대통령과 얼빠진 여당 그리고 무력한 야당에 분통이 터지는 심정이야 말해 뭣하랴. 하지만 이참에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방 선거(2014년 6월 4일)를 불과 5개월 남겨둔 시점에 임기 4년(!) 남은 단임제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여당은 왜 저토록 강경하기만 할까?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가 무섭지 않아서다. 그러니 지금 철도 파업 연대와는 별개로 우리가 할 일은 5개월 후에 정말로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당장 어처구니없는 공직선거법 개정안부터 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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