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대마초를 흡입하는 것은 물론 운반, 소지, 타인 제공만으로도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연예인처럼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걸렸다하면 징역형을 면키 어려울 정도로 전 세계에서 대마초의 규제와 처벌을 가장 엄격히 집행하는 나라에 속한다.
그런데 다른 마약은 몰라도 대마초를 왜 이렇게 강력하게 처벌하는지, 술과 담배와는 차원이 다른 처벌이 요구될 정도로 나쁜 것인지 정부의 논리적 근거는 탄탄한 편이 아니다.
다만 환각작용이 있어 나중에 점점 더 센 약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초장부터 엄두도 못내게 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논리다. 중독성은 담배의 니코틴보다 약하다는 것이 정설이 되면서 대마초를 금지하는 이유로는 설득력을 잃었다.
그런데 '관문 이론'마저 너무 과장됐다는,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뒷받침되는 연구결과들이 나오면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현실론'이 득세하는 추세다. 규제에 따른 효과는 없고 사회적 비용만 초래되는 마약정책을 폐기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움직임이 거세다. 사진은 대표적인 의료용 마리화나 상품 ' NYC 디젤' 이다. ⓒAP=연합뉴스 |
미국 여론, 마리화나 합법화 찬성으로 기울어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배우 김부선 씨가 대마초에 대해 징역형 등으로 처벌하는 법 규정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사건에 대해 2005년 항소심 재판부가 "대마초 처벌 법조항은 대마의 흡연·수수를 금지하고 그 위반에 대한 형벌을 가함으로써 신청인의 행복추구권을 제한하고 있으나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을 갖추고 있으므로 헌법에 합치된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하지만 현재 미주 대륙에서 벌어지는 양상은 딴판이다. 우루과이에서는 대마초 합법화 법안이 지난 7월말 하원에서 통과한 뒤 오는 15일 쯤 집권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도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다. 법안이 의회 양원을 통과하면 올해말 공식발효될 예정이며, 우루과이는 미주 지역 최초의 완전 합법화 국가가 된다.
우루과이뿐 아니라, 미주 대륙에서는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에서도 대마초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루과이, 미주 첫 합법화 국가 확실시
유엔 마약범죄사무국(UNODC)은 우루과이 정부의 마리화나 합법화 방침이 마약 억제를 위한 국제협정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우루과이 정부는 마약시장을 합법화해서 정부가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마리화나의 음성적인 불법 거래로 범죄조직의 배만 불려주느니 차리라 정부가 양성화해서 세금을 매기고 관리를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 법률은 마리화나의 재배, 판매,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마리화나를 갖고 있는 것이 적발되기만 해도 최대 5000달러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하지만 주별로는 이미 대마초를 합법화한 곳들이 많다.
워싱턴DC와 20개 주에서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으며, 내년에는 워싱턴 주와 콜로라도 주가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할 예정이다. 워싱턴 주와 콜로라도 주는 유흥용 마리화나는 장소를 제한해 허용하는 수준으로 이미 지난해 합법화했다.
캐나다는 지난 9월 말 의료용 마리화나의 대량 재배와 유통을 민간 시장에 전적으로 맡기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금까지 의료용 마리화나가 정부의 통제에 따른 허가제로 운영돼 생산량이 적고 품질도 나빠 암시장 거래를 통한 구입 등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다.
이처럼 중남미는 물론 북미 대륙에서도 마리화나 합법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대마초 합법화 문제는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 등 합법화 국가, 부작용커녕 긍정 효과?
마리화나 합법화를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관문이론'을 부정한다. 실제로 지난 2003년 9월 세계 최초로 마리화나 합법화를 결정한 네덜란드의 경우 '관문이론'에 따른 부작용은커녕 오히려 다른 마약류 소비까지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조사도 나왔다는 것이다.
환각 작용으로 인한 사고와 범죄 증가 우려는 <뉴욕타임스>가 앞장서서 일축했다.'마리화나와 술'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뉴욕타임스>는 "마리화나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 젊은이들의 술 소비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소개했다.
나아가 신문은 은근히 마리화나가 술의 대체재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기대까지 내비쳤다. 마리화나 규제를 완화하고 음주 허용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21세로 높이면 21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마리화나를 더 많이 사용하는 대신, 음주허용 연령이 되면 마리화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술이 사회적 해악 더 심해"
마리화나가 워싱턴 주와 콜로라도 주에서처럼 전국적으로 유흥용으로 합법화될 경우 그 결과에 대해서 <뉴욕타임스>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술과 마리화나가 대체재 관계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교통 안전에는 특히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해악을 초래하는 정도로 보면 마리화나보다는 술이 훨씬 더 심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우 도로 주행 실험에서 마리화나의 영향을 받는 운전자는 안전 운전 능력에 약간의 손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운전자들 스스로 마리화나가 주는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오히려 실제로는 마리화나의 영향을 받는 운전자는 주행속도를 늦추고 안전거리를 더 확보하는 반면, 음주 운전자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찬성이 58%로 지난해 48%에 비해 10% 포인트나 높아지면서 1969년 마리화나 관련 갤럽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찬성이 절반을 넘어섰다. 연령대로 보면 65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합법화 찬성이 많았다. 정당 지지자별 찬성률에서는 민주당 지지층이 65%, 무당파 62%, 공화당 지지층 35%로 나뉘었다.
여론이 찬성 쪽으로 기울자 '마리화나 정책 프로젝트'라는 미국의 시민단체는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주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전국적으로 마리화나 규제를 술에 대한 규제 정도로 완화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마리화나 합법화 반대 시민운동' 측은 "마리화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합법화에 찬성하고 있어 우려된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마리화나를 합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진 배경에는 '현실론'이 자리잡고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마리화나 경험이 있다는 것뿐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도 상당하다. 당장은 새로운 세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콜로라도, 유흥용 합법화 이어 과세안 통과
실제로 마리화나 합법화를 경제적 이유에서 불가피하다는 지론을 편 대표적 인물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유명한 밀턴 프리드먼이다. 마약 규제는 수요를 전혀 규제하지 못하고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는 낭비가 심한 정책이기 때문에 차라리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여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 효율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콜로라도 주에서는 지난 6일 마리화나 제조업체에 15%의 세금을 부과하고, 소비세 10%를 물리는 법안에 대해 투표해 통과됐다.
미국 연방정부도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들에 대해 용인하는 입장인 상황에 찬성여론도 절반이 넘어서자 세수 확보를 위해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자는 논의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미 연방 상원은 지난달 10일 마리화나 합법화 문제를 다루기 위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미국도 합법화하면, 한국도 따라가려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는 정치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내에서도 "비밀투표를 하면 지금이라도 공화당의 절반 이상이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에 찬성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여야 정치인들도 대마초 합법화에 적극 나서는 배경에는 대마초 성분이 제약업계의 신약물질로 산업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마 성분이 신약 개발의 보고라는 점에서 강대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는 멈출 수 없는 추세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에서 대마초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은 역사적으로 미국 등 강대국들의 법을 그냥 추종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가 연방 차원에서 도입되면 한국도 따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때 어떤 논리로 변신을 포장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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