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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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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41>

음양 오행으로 본 삼국지-손권, 그리고 종합 정리

제갈량이 甲寅년 목운에 사망한 이유는 천간에 있는 갑목이 아니라 지지(地支)에 있는 寅木 때문이다. 약간 깊게 들어가는 것 같아 저어되지만, 설명한다. 그의 사주는 지지에 수기(水氣)가 많아 위장에 문제가 있는데 인목이 습한 기운을 도와 위장을 극하니 식욕 저조와 소화 불량, 여기에 사마의와의 지구전에서 돌파의 묘수를 찾는라 부심한 것이 무리를 주어 결국 심신쇠약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에 반해 갑오와 을사년에는 지지에 불이 들어오는 해라 서촉으로 들어가 무공을 세우고 남만을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제갈량은 심장기능도 좀 약하고 특히 위장이 약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손권에 대해 알아볼 때가 되었다. 손권은 182년 壬戌생으로 형의 유업을 200년 庚辰년에 이어받아 삼국의 세 다리 중 한쪽 다리를 형성한 사람이다. 그의 일간은 간단히 말해서 乙木이었다. 그의 인생 역정이 너무도 선명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을목이 임술년에 태어났으니 그는 생각이 깊고 어질며 자제력 또한 뛰어난 전형적인 명문대가의 후예라 할 수 있다.

그는 형 손책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 다시 주유나 노숙과 같은 사람들을 영입하고 그 사람들의 조언과 무용에 힘입어 무난하게 세력을 이끌어 갔다. 특히 그는 조조가 남하해 오자 제갈량과 주유의 주전론을 채택하여 조조를 적벽에서 대파, 다시는 조조의 군대가 강의 남쪽을 넘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탄탄한 기반을 꾸릴 수 있었다.

이를 조조와 유비와의 관계에서 음양 오행으로 살펴본다면 辛金인 조조가 乙木인 자신을 위협하자 火에 해당되는 유비를 불러다가 자신을 지킨 셈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의 힘은 수군에 있었으니 수생목하는 이치이다.

그 결과 조조와 손권은 황하와 장강의 중간에 있는 회수를 중심으로 그것도 회수 남안에 있는 합비를 경계로 대치했고, 전쟁 역시 제한전 양상이었다. 수군이 강한 손권으로서는 장강 북안 깊숙하게 진군할 자신이 없었고 조조 역시 감히 장강의 험(險)을 엿보지 않았다.

210년 庚寅이 금의 해라 오른 팔인 주유를 잃었고, 212년 壬辰에는 물이 들어오니 관록과 위엄이 더해져서 건업으로 수도를 옮겼다. 214년 甲午에 나무의 힘이 들어오니, 형주를 지키던 관우를 공격해서 장사, 영릉, 계양의 3군을 탈취하여 장강 방어망을 더욱 공고히 했다.

217년 丁酉년에 조조의 맹공을 무승부로 끝내고 화해한 것은 丁火가 조조에게는 힘든 운이고 손권으로서는 힘을 발휘하는 해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219년 己亥에는 기토가 손권에게는 황재의 운이라 위와 공모하여 형주 땅을 탈취하는데 성공한다. 또 218년 丁未에는 정화의 힘을 빌어 위의 조휴가 이끄는 10만 대군을 유인하여 격파하니 무위를 떨쳤다.

그런 손권은 229년 己酉년, 또 한번의 횡재운에 황제를 칭하니 이 때가 손권으로서는 절정이었다. 이처럼 손권의 사주는 조조의 경우와 같이 대단히 알기 쉽다. 나무가 들어오는 해에 힘이 붙고, 불이 들어오는 해에 무용을 떨치고 토가 들어오는 해에 언제나 큰 소득이 있다.

손권의 사주는 대단히 잘 조화된 사주로서 대체적으로 이런 운명은 명리학에서 인수(印綬)라 부르는 운에 건강이 약해지면서 지병으로 편하게 세상을 떠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권은 252년 壬申년, 물이 들어오는 해에 70 이 넘는 수를 누리고 세상을 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가장 꼬인 인생은 유비였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유비야말로 백절불굴의 의지를 지닌 영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조는 재산도 좀 있는 집안 출신으로 유산도 좀 받았으며 여기에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여 일세를 풍미한 카리스마적인 창업자였고, 손권은 좋은 집안 출신에 형을 잘 둔 턱에 유업을 이어받아 발전시켜나간 수완 있고 품위도 있는 재벌 2세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유비는 가난한 집 출신이면서도 작은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의리와 부하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당대 일류였으니, 간난신고 끝에 인심을 얻어 결국 자수성가한 영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없는 집 출신답게 세력에 빌붙기도 하고 때로는 성질을 꾹 참고 기회를 기다릴 줄도 알며, 적군이 등뒤에 밀어닥치는데도 백성과 함께 후퇴하다가 풍비박산이 나기도 하는 어진 리더이기도 하며, 이 사람이다 싶으면 갖은 정성을 다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도 아는 인물이다. 이런 면에서 유비는 실로 서민 영웅의 표본이며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는 삼국지연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丙火였던 유비는 辛金이엇던 조조와 合의 사이라 한때 친했으며, 손권 역시 유비에게 끌렸었다. 乙木인 손권에게 있어 유비는 자신의 속내를 시원히 풀어주는 매력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癸水인 제갈량은 유비의 정신적 지주로서 유비를 편안하게 이끌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 일세의 영웅 유비도 정신적으로 제갈량을 존경했음이 또한 분명하다.

조조는 카리스마와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여기에 능력에 따라 인재를 쓸 줄 아는 CEO형 경영자였으며, 손권은 부드러운 리더쉽을 바탕으로 귀를 열어놓고 사람의 말을 듣지만 때로는 강한 결단력을 보여준 영수였다. 그러나 역시 유비라는 인물은 잡초와도 같은 질김과 사람들의 마음을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개성을 보여준 보기 드문 스타일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 못지 않은 주인공 제갈량은 명리학에서 편인(偏印)과 상관(傷官)이라 부르는 힘이 뛰어난 참모인데, 편인은 기발한 발상, 상관은 남이 예측하지 못하는 시야를 갖추고 있기에 평화시보다 난세에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보통 이 같은 성격의 유형은 사람됨이 약간 특출하고 제도 순응적이 아니어서 대기업이나 공직에서 높은 자리로 승진하기 어렵다.

윗사람이 예의로써 대하지 않으면 결코 재주를 다 보여주는 법이 없기에 거만한 리더나 CEO에게는 머물지 않는 성격이다. 따라서 조조나 손권 같은 이들은 제갈량과 같은 기재를 만날 인연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세상은 언제나 인물이 없는 것이 아니건만 난세가 되어야 인물이 나오는 것은 평소의 세상에서는 학벌이나 지연, 혈연 등에 의거해서 사람을 쓰는 것이 상정이라, 실로 걸출한 인물은 발탁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 한가지 음양 오행으로 살펴본 삼국지가 재미난 점은 금인 조조는 남녘에서 태어나 북에서 입신했고 불인 유비는 북쪽 변경에서 태어나 중국의 북동쪽에서 기회도 얻고 실패도 하다가 결국 남쪽에서 입신의 기반을 잡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은 타향에서 기회를 잡는 것이 보통이고, 손권과 같이 원래 강남 출신으로 집안 좋은 사람은 대개가 고향에서 부귀를 누리는 것이 보통이라는 점이다.

이는 운명의 기본 법칙인데, 만화책을 봐도 대개의 자수성가하는 영웅들은 시골 벽지에서 태어나 대처로 나와 간난신고를 거치면서 성장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스토리인데, 이는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스스로 확인해 보라. 혹시 서울 태생인데 큰 성공을 꿈꾸고 있다면 우선 집안 배경이 좋은지, 자신의 학벌은 어떠한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런 배경이 없다면 더 큰 곳, 가령 미국의 중심지로 가지 않으면 큰 성공은 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서울에서 자수성가하거나 큰 성공을 기약하려면 역시 지방 출신이거나 최소한 부모가 지방 출신이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근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서 고 정주영씨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삼국지를 대할 때마다 아쉬운 점은 위연이 병력 5천과 병참지원 5천으로 산을 넘어가 장안을 급습하자는 계책을 내었을 때, 제갈량으로는 한번 시도해 봄직한 모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허락하지 않은 점이다. 사실 필자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이 문제에 대해 오래전에 중국의 5만분의 1 지형도를 구해서 연구해 본 적도 있었다. 그 결과 역시 제갈량의 판단이 옳았다고 인정한다.

특히 촉의 군대는 관우가 죽으면서 정예인 형주병을 절반 잃었고, 나중에 유비가 동오를 쳤을 때 모두 잃고 말았기에 사실상 전문 직업군이 없었다. 이에 제갈량은 촉의 백성 중에서 다시 병력을 모으고 심지어 남만의 병력들도 끌어 모았다. 이런 약점이 나중에 가정에서 마속의 군대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장합에게 패한 주된 이유가 되었다.

아울러서 얘기할 것은, 촉의 한중 땅에서 위의 장안으로 나가는 길은 실로 험하기 그지없다. 사실은 길이 없는 곳이다. 몇 개의 험준한 계곡이 있고 계곡 수백 미터 아래에는 급류가 흐른다. 길은 양쪽 절벽의 중간을 억지로 바위를 부수어 낼 수 있지만 이 길의 폭은 정말 사람 둘이 지나가기가 어려울 정도의 협로이다. 제갈량이 두고두고 보급으로 애를 먹다가 급기야 목우류마라는 특이한 수송 수단까지 개발했던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필자를 감탄시키는 사실이 있다. 촉의 군대가 험난한 계곡 길을 지나 위수 남안의 평지로 나갈 경우, 이는 실질적으로 배수의 진이 된다. 전세가 불리해서 후퇴할 경우, 돌아가는 길은 너무도 좁아서 일시에 사람들이 밀어닥칠 경우, 몰살을 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적에게 등을 돌렸으니 심리는 공포 그 자체일 것이고 적이 등뒤에서 가차없이 추격해 오면 대개의 경우 변변한 저항도 못해보고 몰살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군대는 그의 사후에 죽음을 감추고 질서정연하게 후퇴할 수 있었으니 이는 평소 제갈량이 얼마나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며, 그가 포설한 진지도 주도면밀하게 배치되어 사마의로 하여금 감탄케 했으니 실로 제갈량의 기재를 엿보게 한다.

이 바람에 팔진도(八陣圖)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 오늘날 무협지에서는 신기조화를 부리는 진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 역시 어릴 적 팔진법에 관한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훗날 마침내 팔진도의 그림을 구하여 면밀하게 연구해 보았더니, 신기조화를 부리는 것은 아니고 수레와 기병, 보병 등을 요소로 하여 수미상응의 진법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삼국지 전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욱 재미를 자아내는 점은 세 나라가 문패를 내린 시점이다. 가장 먼저 문패를 내린 촉은 263년 癸未년인데, 유비가 죽은 해도 癸의 해였다는 점. 그리고 사마씨가 위를 내부에서 붕괴시키고 사마염이 황제의 위에 오른 것은 265년 을유년 12월이니 사실상 다음 해인 丙戌년부터 진나라가 출범한 셈인다. 금이었던 조조에게 있어 병화는 불이기에 위나라, 역시 조조의 운세와 같이 한다는 점. 또 오의 손권은 나무인데, 280년 庚子년에 항복했으니 금이 나무를 눌러 오가 망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결국 창업주의 운세흐름은 그가 비록 죽은 뒤에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가령 현대 정주영 회장의 경우 乙木 용신이 약해져서 사망한 것이므로, 장차 현대 계열의 기업들은 을목이 약해지는 해에 큰 고전을 면치 못 할 것이라는 쉽게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현대의 경우, 자동차는 2005년에 위기가 찾아들고 2011년에는 한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것을 자신 있게 예단할 수 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얘기지만, 이 말은 평소 필자가 정주영님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이야기를 마칠 때가 되었으니 정리하고자 한다.

유비가 죽음에 임박해서 제갈량더러 내 아들이 부족하면 당신이 대권을 맡아달라고 말한 것은 추호도 마음을 떠보는 트릭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 진심이었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 그처럼 넓은 흉금을 지닌 리더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는 점에서 유비 그 사람이 지닌 인간성의 향취는 천수백년을 격한 지금에 와서도 옅어지지 않고 더욱 진하게 풍겨오고 있으니, 이를 일러 역사의 참된 훈향(薰香)이라 할 것이다.

또 기재 제갈량은 비록 공을 이루지 못하고 오장원에서 죽었으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일했으니 실로 장부의 일생이었다. 더하여 그 충절과 한이 훗날 시성 두보(杜甫)의 소매마저 적셨으니 그 이름이 청사에 빛을 더하고 있다 하겠다.

지면 관계상 관우와 장비, 주유, 노숙, 조조의 일급 참모들인 가후나 곽가, 마초나 강유, 기타 수많은 영웅 호걸들을 전부 다루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사실 삼국지는 음양 오행으로 살펴보면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예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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