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된 입시 경쟁,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학교 폭력, 공교육을 대체하다시피 팽창해버린 사교육 등. 가르침과 배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등수 매기기'에만 골몰하는 교실 풍경은 이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식상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다들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 진단을 기계적으로 읊조리는 정책 당국자, 학자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풍경, 그 맞은편에는 학교 폭력, 입시 부담, 혹은 어른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그밖의 어떤 이유로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큼 심각한 문제 앞에서, 어른들은 왜 '뻔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걸까요. 어쩌면 이런 간극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절망적인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진짜 필요한 미덕은 '솔직함'일 수 있겠다고 봅니다. 짧은 자기 경험으로 섣부르게 단정짓기보다 교육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주 하찮은 수준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시작하는 태도 말입니다. 또 근대적인 학교 모델이 이젠 어떤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 그리고 그 한계와 모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솔직히 인정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에 주목한 건 그 때문입니다. 지난 1999년 창간된 이 잡지의 시선은 '학교 너머'를 향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바뀌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만큼 우리는 학교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민들레>의 목소리가 교육에 관한 '뻔한 이야기'들에 갇혀 드러나지 않았던 '학교의 빈 곳'을 살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2007년, 우리나라에 출산붐이 일었다. 600년 만에 한 번 돌아오는 '황금돼지띠 해'로 이 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운이 따른다는 얘기가 회자되면서 젊은 부부들 사이에 출산 열풍이 불었고, 덕분에 신생아 수가 전해보다 5만 명 가까이 증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해에 아이를 낳은 많은 부모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적지 않은 후회를 하게 됐다. 갑작스럽게 아이들 수가 늘어난 탓에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마다 상당한 경쟁을 겪게 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 대학입시나 취직 등에서도 이러한 경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황금돼지띠의 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 강남 등 일부 교육열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교실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7년에 태어난 출생아 수는 모두 49만3189명으로, 2006년 44만8153명보다 10%가량 많다.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
출생 연도가 '스펙'이다?
1990년대 초 대학을 다녔던 동기들과 가끔 모임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녀들 얘기가 대화의 주된 소재가 되는데, 그중에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서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도 있다. 한번은 그 친구가 이런 얘기를 꺼냈다.
"학원 과외도 많이 시키고 애도 제법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은데 등수는 그만큼 안 나오네. 머리가 나빠서 그런가?"
내가 살짝 웃으면서 답해줬다.
"그럴 리가! 네 유전자 받았으니 머리가 나쁠 리 없고, 더 노력했으니 그 시절의 너보다 아는 것도 많을 걸? 단지 늦게 태어난 탓에 우리만큼 되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뿐이지."
돌이켜보면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학을 다녔던 선배들을 포함한 우리 세대는 상당히 운이 좋은 경우였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에 대한 수요는 넘쳤던 반면, 상대적으로 졸업생 수는 적었기 때문이다. 우선 취업할 수 있는 기업이 지금보다 많았다. 재벌 그룹 중에서 지금은 사라진 대우·한보·삼미·진로 등이 있었고, 금융권에서는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 등 5대 은행에 장기신용·보람·평화·대동 등 중소 은행들까지 있었다. 거기에 종금사나 리스사들까지 있었으니 지금 돌아보면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생들도 취업할 곳이 정말 많던 시절이었다. 컴퓨터나 인터넷도 없던 시기여서 사무직 노동자에 대한 수요도 많았다. 지금이야 대부분 사람들이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지만 그 시절에는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했기 때문에 보고서 하나를 작성하기 위해 서너 명이 달라붙어야 했다.
반면에 대졸자 수는 적었는데, 당시만 해도 대학 수가 지금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성적은 좋았지만 집안이 어려웠던 많은 친구들이 취업을 위해 대학 대신 실업계 고교를 택했기 때문이었다. 인력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부족하다 보니 학생들이 지금처럼 입학 후 학점이나 '스펙' 관리를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다. 가을 학기마다 각 대학에는 기업들의 원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대학이나 학점에 따라 입사하는 회사가 다르긴 했어도 취업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전공 선택도 다양한 편이었는데, 이과에서는 의대 못지않게 물리학이나 화학 등 순수 과학 분야의 인기가 높았고 문과에서는 사회, 문학 분야가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이 규칙은 완전히 바뀌었다. 무엇보다 많은 기업과 금융 회사들이 쓰러지면서 일자리 수가 줄었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인력 감축을 추진했다. 게다가 1990년대부터 부쩍 높아진 대학 진학률과 기업들의 대졸자 선호만을 보고 대학 수를 크게 늘린 것도 문제였다. 일자리는 줄어들었는데, 대졸자는 1990년대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결국 학생들은 대학 입학 후에도 줄어든 일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시 극심한 경쟁을 벌여야 했고, 1학년 때부터 학점과 '스펙'을 관리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한때 여유와 낭만이 있었던 한국의 대학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후 불과 수년 만에 한정된 파이를 놓고 싸워야 하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장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는 깊었는데, 특히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본 피해가 컸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직업의 안정성이 크게 약화됐다. 우선 외환위기는 대졸자보다 실업계를 나와 사회에 진출한 이들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했는데, 이들이 주로 맡았던 회사 경리직 등 단순 사무직과 생산직 일자리가 위기 후 인력 감축의 주요 타깃이 됐기 때문이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증가로 직업의 안정성에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취업 희망자가 증가한 것도 위기 이후의 새로운 경향이다. 특히, 공무원의 인기가 크게 높아졌는데, 최근에는 그다지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70대 1을 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러니 자녀의 미래를 걱정한 부모들이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려 들고, 그 아이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지난해 초 경기도교육청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래 희망 조사에서 공무원이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갈망이 이제 대학을 넘어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전이될 정도로 중요한 이슈가 됐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이들을 이런 길로 이끌수록 삶은 더 팍팍하고 고단해질 수밖에 없다. 파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똑같은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파이 한 조각이라도 챙기려면 남들과 차별화되는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즘 청년들이 "왜 우리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는데도 살기는 더 힘든가?"라는 항변을 쏟아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스펙' 쌓기 위주의 교육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문제는 단순히 청년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청년들의 삶의 가치를 균일하게 만듦과 더불어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든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일찍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도 경쟁률이 70대 1이 넘으니 어차피 상위 1~2% 외에는 그 꿈을 이룰 수가 없다. 이 게임에서는 처음부터 99% 사람들이 패배자가 될 운명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그 한정된 파이 중에서 단 한 조각도 얻지 못했다는 데 대해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가능성 낮은 게임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자연재해에도 포유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한때는 공룡과 같은 거대 파충류가 이 지구를 지배했지만, 수천만 년 전 운석들이 대규모로 지구상에 날아들고 빙하기가 오면서 파충류들 대부분은 멸종하고 포유류가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 그럼 포유류는 어떻게 이런 자연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작고 날렵한 포유류의 특성을 지목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답을 종의 다양성에서 찾는다. 즉, 포유류 역시 운석의 충돌이나 빙하기 때 많은 종들이 사라졌지만, 바뀐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종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공룡이 멸종한 이후 지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특정 생물이 모두 유전자가 동일하고 행동 패턴까지 일치한다면 외부 환경이 불리하게 변했을 때 그야말로 순식간에 멸종당하기 십상이다.
최근 금융업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적용한 투자 전략인 '최대 분산 전략(maximum diversification strategy)'이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 방법은 투자 금액을 가능한 성격이 상이한 자산들에 최대한 분산 투자함으로써 외부 충격이 왔을 때 투자자가 입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입고 난 후, 많은 투자자들이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서 어떤 충격이 와도 자산 가치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익률을 지상 목표로 삼아온 금융업계에도 진화론에서 종의 생존 법칙인 분산 이론이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하나의 가치, 하나의 인간형을 향해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일을 수십 년째 지속하고 있다. 이는 종의 생존 법칙을 완전히 역행하는 것으로, 작은 충격에도 사회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청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로 뛰어드는 대신 안정된 직장만을 꿈꾸며 과거의 지식과 관행을 숙지하기 바쁜 사회에서 어떻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하는 지혜와 기민함이 나올 수 있겠는가? 포유류가 엄청난 자연재해를 이기고 살아남았던 것처럼 인류가 변화하는 세계에서 계속 생존하려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해 가능한 후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도 최소한 일부는 살아남아 다음 세대를 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좋은 교육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아이들의 타고난 유전자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다양하게 분화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다양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대안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주류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아이들의 다양성을 폭넓게 수용하여 더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 말이다. 아이들 모두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으니 어쩌면 대안 교육은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교육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덧붙여 아이들이 저마다 개성과 재주를 좇아 나가다 보면 일부는 실패를 겪고 좌절할 수도 있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아간 것이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해 누군가는 해야 했던 수많은 역할 중 하나를 그 아이가 해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실패하고 좌절한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은 응당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것은 1980~1990년대 좋은 시절을 보낸 바로 우리 부모 세대의 몫이다. 청년 세대와 부모 세대가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세대 간 갈등을 치유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가보지 않은 새길'이 아니겠는가.
* 위의 글은 <민들레> 90호 "초록동색(草綠同色)"에 실린 글입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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