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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 16개 부러져 죽은 그 아이, 진짜 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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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 16개 부러져 죽은 그 아이, 진짜 사인은?

[민들레 교육 칼럼] 문제는 '계모'가 아니다

'교육 불가능' 시대라고 합니다.

과열된 입시 경쟁,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학교 폭력, 공교육을 대체하다시피 팽창해버린 사교육 등. 가르침과 배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등수 매기기'에만 골몰하는 교실 풍경은 이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식상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다들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 진단을 기계적으로 읊조리는 정책 당국자, 학자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풍경, 그 맞은편에는 학교 폭력, 입시 부담, 혹은 어른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그밖의 어떤 이유로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큼 심각한 문제 앞에서, 어른들은 왜 '뻔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걸까요. 어쩌면 이런 간극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절망적인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진짜 필요한 미덕은 '솔직함'일 수 있겠다고 봅니다. 짧은 자기 경험으로 섣부르게 단정짓기보다 교육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주 하찮은 수준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시작하는 태도 말입니다. 또 근대적인 학교 모델이 이젠 어떤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 그리고 그 한계와 모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솔직히 인정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에 주목한 건 그 때문입니다. 지난 1999년 창간된 이 잡지의 시선은 '학교 너머'를 향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바뀌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만큼 우리는 학교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민들레>의 목소리가 교육에 관한 '뻔한 이야기'들에 갇혀 드러나지 않았던 '학교의 빈 곳'을 살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계모에 대한 편견

아이 셋 키우는 엄마로서 가장 마음 아프고 충격적인 것은 아이들이 고통 받는 사건들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연이어 터지는 아동학대 사건으로 출렁이고 있다. 성적 학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심각한 폭력과 방임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 사연을 듣다 보면, 내가 부모인 게 다 죄스럽고 미안할 지경이다.

최근 우리 동네 엄마들을 며칠간이나 분노에 떨게 한 사건은 단연 울산 초등학생 사망 사건이었다. 무려 3년간이나 계모의 끔찍한 구타를 견뎌오던 여덟 살 서현이는 끝내 갈비뼈 열여섯 대가 부러진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되어 세상을 경악시켰다. 아이가 겪은 그 처참한 고통은 차마 부모로서 상상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의 초점이 '역시 계모였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모이는 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연이어 터진 여러 건의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가 공교롭게도 계모인 경우가 많아서 죄 없는 계모들에게까지 공격의 화살이 날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지긋지긋한 '신데렐라'부터 '백설공주', '장화홍련전'에 이르기까지 동화와 구전 속에는 어째 착한 계모는 한 명도 없고 모두 악독하고 잔인하고 나쁜 계모들만 등장하는지…. 안 그래도 주변의 편견 속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자식으로 품고 사랑으로 보듬으려 애쓰는 새엄마들 가슴에 또 한 번 아픈 생채기가 생겼다. 사건의 핵심을 파악하고 제대로 된 대안들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 맞대고 고민해도 부족할 판에 엉뚱한 대상에게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으니 참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재혼 가정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오늘날에도 계모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계모나 계부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아동학대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아동학대의 80%가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계부나 계모에 의해 저질러지는 비율은 고작 4% 정도다. 계모이기 때문에 학대를 더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편견이다.

울산 초등학생 사망 사건은 이 모 양(8세)의 사망 원인이 계모의 상습적 폭행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동학대' 논란을 불렀다.

계모 박 씨(40세)는 사건 당일인 지난 10월 24일 '이 양이 2300원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35분간 머리와 옆구리, 배 등을 폭행했다. 결국 이 양은 갈비뼈 16개가 부러진 채 숨졌다. 박 씨는 1년 전에도 이 양에게 뜨거운 물을 뿌려 손과 허벅지에 2도 화상을 입혔으며, 학원에서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전치 10주의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 씨는 17일 열린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살인에 대한 고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재판은 살인의 고의성 여부와 적정 양형에 대해 집중 심리를 벌이게 되며, 다음 공판은 내년 1월 7일이다.

아동학대의 실상을 바로 보자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으로 사회가 출렁이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사건 외에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끊임없이 학대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 발표를 보면, 2012년 한 해에만 6400건의 아동학대 사례가 발생했다고 한다. 기관에 보고되지 않는 경우를 합치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왜 이렇게 아동학대가 계속 늘고 있을까. 몇 가지 통계만 들여다봐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학대 가정의 44%는 한부모 가정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동을 방치하거나 버리는 부모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사회안전망이 극히 취약한 이 사회에서 빈곤은 쉽게 학대로 이어진다. 학대는 흔히 폭력을 우선으로 떠올리지만, 아동학대의 33.3%는 방임이나 유기다. 얼마 전에 지하방에서 수년간 부모로부터 방치되어 비참하게 살다 발견된 10대 소녀 세 명의 사연이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부모의 경제적 기반이 약해지면 제일 먼저 피해를 당하는 대상이 연약한 아이들이다. 부모가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제도와 시설이 턱없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신고된 아동학대 건수는 5800건이 넘지만, 이 중에서 단속되거나 처벌된 사례는 6.2건으로 1.1%에 불과하다.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치료와 진단을 통해 학대를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의료진들의 신고율도 1% 미만이다. 신고를 안 해도 법적인 처벌이 없으니 구태여 귀찮은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똑같은 사안을 외국의 경우엔 전문직을 박탈당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일로 여긴다. 조금이라도 학대를 당했다고 생각되면 의심만으로도 신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아이는 때리면서 키워야 한다는 잘못된 훈육문화와 남의 가정 문제엔 잘 개입하려 하지 않는 정서도 아동학대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그만큼 학대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으로 이민 가서 평소에 하듯 아이들을 체벌했다가 이웃에 의해 아동학대로 신고돼 경찰서로 끌려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부모의 권리를 지나치게 강화한 현행 법체계에서는 학대 신고가 들어와도 부모가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아동을 인계해주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다. 외국에서는 조사위원이나 담당 공무원이 사법권을 가지고 철저하게 학대 여부를 조사하고, 방해하는 부모는 엄벌에 처하는데 우리나라는 아동학대의 신고·상담·보호조치를 모두 민간이 담당하고 있어 공권력이 없는 민간단체의 아동 보호 노력이 부모의 거부와 방해로 허사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해도 부모가 협조하지 않으면 철수해버리니,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보호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피해 아동을 보호자에게 다시 넘겨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해자에게 되돌아간 아동은 2차, 3차 학대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정말 극심한 학대를 당했을 때만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게 된다.

학대받은 아동을 기관에서 보호할 수 있는 기간도 3일에 불과하다. 그다음엔 부모가 요구하면 다시 넘겨야 한다. 미국의 경우 학대 아동 보호율이 8.8%에 달하는데 우린 고작 0.63% 미만이다. 아동학대는 계속 증가하는데 아동보호기관은 24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 고작 50개뿐이어서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에선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반이 신고와 동시에 함께 출동해 피해 아동은 물론 부모와 이웃들까지 철저하게 조사한다. 주민들의 신고 정신도 투철하다. 학대받은 아동은 민간 보호시설에 인계되고 학대가 확인되면 정서적 치료를 포함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학대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원(原)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 공권력이 조사와 처벌에 집중하는 반면, 민간기관에서는 보호와 교육, 치료와 예방을 담당하는 식으로 이원화가 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 제도와 관련법도 미비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솜방망이 같은 가벼운 처벌도 문제다. 학대로 인해 아동이 사망에 이르러도 형량이 최대 5년에 불과한 실정이다. 외국에서는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해서는 훨씬 더 무거운 형량을 매긴다. 학대받던 아동이 사망에 이르면 종신형과 사형도 언급될 정도로 중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거꾸로 되어 있다. 성인 대상 범죄보다 아동이 대상인 경우 형량이 더 가볍다. 더 중하게 보살펴야 하는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들을 접하면서 전문가들은 비좁은 공간에 턱없이 많은 아동을 수용하게 하는 것부터가 아동학대라고 지적한다. 충분한 보육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시작된 영유아 무상보육이 오히려 학대를 부추긴다는 얘기다. 아동학대가 드러난 어린이집도 일 년이 지나면 다시 문을 열 수 있고, 일정 요건만 갖춘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채용해서 어린이집을 열 수 있는 허술한 제도도 문제라는 것이다. 보육시설과 시스템을 개선해야만 영유아 기관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줄일 수 있다는 호소는 근본적인 원인보다는 사고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국무총리 산하에 '아동정책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아동학대 및 아동정책 추진을 종합 점검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이 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에선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학대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수 있는 아동학대방지법은 17대, 18대 국회에서도 계속 발의는 되었지만, 처리되지 않고 자동 폐기되었고 19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아동학대에 관한 기막힌 현실이다.

▲ 부산 경남정보대학 디지털디자인계열 황슬기 학생이 지난 2009년 제35회 부산미술대전 디자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포스터.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울산의 서현이 사건이 일어난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순수하게 시민의 힘으로, 아동학대방지법 국회 통과와 잔인한 학대범에게 법정 최고형을 구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청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도가니법'과 '나영이법'처럼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키는 잔혹한 범죄가 있어야 관련법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언제나 가슴 아픈 희생을 치르고서야 제도가 뒤따라가는 어이없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긴 하지만, 사건을 지켜보고 관심을 기울이며 제도의 허점과 모순을 주장하는 시민들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 아이를 향한 학대는 한 인생, 한 존재 자체를 파멸로 이끌어가게 된다. 상처받고 고통당한 인격은 언제든 그 화살을 사회 전체로 돌릴 수 있다. 신체적 학대든 정서적 학대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남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사이 어느 집에서는 한없이 여리고 어린 생명들이 끔찍한 고통과 상처 속에 병들어가고 있다. 어떤 곳에서도 어린아이들에 대한 학대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모두가 부모가 되어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고 사소한 학대의 흔적에도 단호하게 대처하며 확인하고 신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부터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학대를 막는 제도와 법이 갖추어져야 하고 피해 아동들이 제대로 치유되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기관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너무나 어이없고 기막힌 아동학대 소식을 접하게 될 때마다 정말 부모 자격제도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자격제도를 만들 수야 없겠지만, 학대를 저지른 부모를 단순히 처벌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제가 있는 부모의 양육 태도를 바로잡고 교육하는 제도라도 있다면 학대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아동의 권리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복지가 세심해지고 촘촘해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계모가 문제라고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 어렵고 강퍅한 사회를 바꾸지 못하면 이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문제지만,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 또한 우리 부모들이라는 사실도 꼭 기억하자.

* 위의 글은 <민들레> 90호 "초록동색(草綠同色)"에 실린 글입니다.(☞ <민들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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