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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국내 개인에겐 직접 적용 안 돼' 첫 판결…ISD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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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국내 개인에겐 직접 적용 안 돼' 첫 판결…ISD는?

서울남부지법 "한미·한-EU FTA 권리·의무 주체는 사인 아닌 양 당사국"

한미 FTA와 한-EU FTA 같은 양자 간 무역 협정이 국내의 개인 및 법인에게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판결을 내린 곳은 서울남부지법이다. 서울남부지법 허상진 판사가 지난 9월 20일 파일 공유 사이트 하이디스크가 제기한 이의신청을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이디스크는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로서 저작물의 불법적인 전송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아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받자 이의신청을 했다.

근거는 한-EU FTA와 한미 FTA였다. 한-EU FTA의 '자신이 송신하거나 저장하는 정보를 감시할 일반적 의무, 또는 불법적 활동을 나타내는 사실이나 정황을 적극적으로 찾도록 하는 일반적 의무를 제공자에게 부과해서는 안 된다'(제10.66조 제1항)는 조항과 한미 FTA의 '특정 행위를 강제하거나 제지하는 법원의 구제 명령은 특정한 계정을 해지시키거나 특정한 국외 온라인상의 장소에 대한 접근을 막기 위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제한된다'(제18.10조 제30항)는 조항이 한국의 저작권법 제104조 제1항과 충돌한다는 것이 하이디스크의 주장이었다.

쉽게 말하면, 한-EU FTA는 불법 전송을 막기 위한 조치를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한미 FTA에 따르면 제재 조치로 가능한 것은 과태료가 아니라 인터넷 계정 해지 정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다자 간 협정' 효력 제한한 대법원 판결 이어 '양자 간 협정' 효력 규정한 판결

그러나 법원은 하이디스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허 판사는 판결문에서 먼저 미국과 EU의 상황을 짚었다. 재판부는 "미국은 한미 FTA 협정을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으로 처리했고, (…) 미국의 국내법과 한미 FTA가 충돌할 경우 한미 FTA의 효력이 없고 사인(私人)이 재판 절차에서 한미 FTA를 직접 원용할 수 없도록 입법을 통해 해결했다"고 밝혔다. 한미 FTA 이행법에 "미국의 법률에 일치하지 않는 협정 조항은 그 효력이 없고, 미국 연방정부 이외에는 누구도 소송에서 협정을 직접 원용하지 못하며, 미국 연방 또는 주 정부기관의 조치에 대해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그 효력을 다툴 수 없다"고 명확히 규정돼 있다는 지적이다.

EU와 관련, 허 판사는 "유럽재판소는 사인이 소송에서 WTO 협정을 직접 원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WTO 협정의 성질과 구조에 비추어볼 때 사인은 원칙적으로 WTO 협정 그 자체뿐만 아니라 WTO 분쟁해결기구의 결정도 회원국 국내 법원에서 재판상 원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고 밝혔다.

정리하면, 미국과 EU에서는 한국과 체결한 FTA가 자국 내에서 직접 적용되지 않도록 돼 있다는 말이다.

ⓒ뉴시스

허 판사는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한-EU FTA, 한미 FTA가 조약으로서 헌법 제6조 제1항에 의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 각 협정은 양 당사국 사이에 무역을 자유화하기 위한 협정으로서 양 당사국만 위 각 협정에 따른 직접적인 권리·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밝혔다.

허 판사는 하이디스크가 근거로 제시한 한-EU FTA와 한미 FTA의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들에 대해 "양 당사국이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협정문을 반영해 자국법에 그러한 취지의 규정을 두도록 입법 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협정 어디에도 그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들이 곧바로 양 당사국의 사인에게 직접 적용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허 판사는 "한-EU FTA, 한미 FTA의 지적재산권 관련 협정들은 위반자(하이디스크)에게 직접 적용되지 않"으며, 두 FTA의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들을 직접 원용해 저작권법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하이디스크에는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이번 판결은, 국내법을 위반한 경우가 아니라면 FTA의 주체가 아닌 개인이나 법인이 FTA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해도 FTA 조항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2009년 다자 간 무역 협정인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 한국 법정에서 직접 적용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서울남부지법의 이번 판결은 그러한 대법원의 원칙이 양자 간 협정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첫 번째 판결로 기록된다.

또한 미국과 EU에 대해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한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과 체결한 FTA가 자국 내에서 직접 적용되지 않게 한 미국 및 EU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FTA 권리·의무 주체가 아닌 개인이나 법인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에는 FTA 조항이 효력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한미FTA의 ISD 문제는 여전히 남아

하지만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관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미 FTA의 투자 항목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는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 투자자-국가소송(ISD)을 하지 못하게 돼 있다. 다시 말해, 미국 투자자는 이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고, 만약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한다면 한미 FTA를 재판에서 원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과 달리 미국 투자자만 이런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미국처럼 조약 이행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판결문에도 이에 관한 대목이 있다. 허 판사는 한-EU FTA와 한미 FTA의 권리·의무 주체가 두 당사국임을 확인하면서도 "다만 한미 FTA상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의 경우 투자자에게 중재 청구를 통해 상대방 국가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직접적인 권리를 예외적으로 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송기호 변호사(민변 외교통상위원장)는 "문제는 미국인 투자자가 한미 FTA 11장의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라고 <프레시안>에 밝혔다. "이번 서울남부지법 판결은 국제 중재를 직접 제기할 권리를 언급했을 뿐, 이 문제에 대해선 판단이 없다"는 지적이다.

송 변호사는 "미국인 투자자가 한국 법원에서 한국의 한미 FTA 11장의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을 이유로 소를 제기할 경우 국제중재를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 미국인 투자자가 한국 법원에서 한미 FTA 위반을 직접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전제하고 있다"며, 만일 이렇게 해석한다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가 지적한 두 가지 문제는 (1) 노동자나 환경 피해자, 인권 피해자 그 누구도 직접 한국 법원에 국제 노동조약이나 유엔인권조약 위반을 주장할 수 없는데 유독 미국 기업가만 한미 FTA 위반을 주장할 수 있다는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결과가 된다는 것, (2) 이번 서울남부지법 판결 대상인 하이디스크가 미국계 기업일 경우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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