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에 소개된 17세기 미국 버지니아 주 총독이 했다는 말이다. 이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이 기득권 계층에게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억압을 감추고 있던 무지의 장막이 걷힐 때, 사람들은 나설 수 있다. 물론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지만, 아는 것이야말로 출발점이다. 그래서 '알 권리'는 인권의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된다. 특히나 노동의 영역에서 '알 권리'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권리이다.
노동자들은 알지 못하는 위험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다루는 물질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중 일부는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대만 정부가 1970년대 반도체 생산 공정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젊은 여성노동자들은 부품 세척 뿐 아니라, 자신이 일하는 작업대를 닦거나 심지어 손에 묻은 기름때를 닦아낼 때에도 유기용제를 사용했다. 이는 암과 신경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물질이었지만, 그녀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고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한층 미묘하고 복잡해졌다. 전 세계 차원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남보다 앞선 기술변화와 '영업 기밀'이 기업의 중요한 생존전략이 된 것이다. 노동자가 알 권리를 주장하려 해도, 알아야 할 내용들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기술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전문가들조차 아직 유해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알 권리 보장은 간단치 않다.
뿐만 아니다. 노동자에게 건강문제가 발생해서 산재인정을 둘러싼 논란이라도 발생하면, 기업의 비밀주의적 태도와 노동자의 알 권리는 첨예하게 부딪힌다. 정부와 기업의 태도는 단순히 비밀주의라기보다 사실 '노동자 배제'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이를테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8년에 수행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 보고서를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개인과 기업 정보가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런 정보를 삭제하고 공개용 판본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진은 작년 봄에 자신들이 발간하는 영문 학술지에 이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학문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접근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는 국가기관의 책임성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윤필 |
노동자에게도 알 권리가 있다
노동자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반도체협회가 서울대학교에 의뢰했던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도 볼 수가 없었는데, 이는 당시 산재승인 관련 재판에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노동자 측의 자료공개 요청에 대해 법정은 영업기밀 누설을 우려하면서, 전문 공개는 불가능하니 구체적으로 몇 페이지가 필요한지 적시하면 복사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보고서를 보지 않고도 필요한 내용이 몇 페이지에 있는지 다 알면 왜 공개요청을 하겠나?
한편 삼성은 자체적으로 시행한 작업환경평가 결과를 작년 7월에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여기에는 기자들과 일부 전문가들의 참석만이 허락되었고, 보도자료는 물론 어떠한 인쇄물도 제공되지 않았다. 현장촬영과 녹음도 엄격하게 제한된 상태에서 해외 연구자가 영어로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지난 12월 삼성은 자사의 영문 홈페이지(Global Samsung)에 연구 요약결과와 함께 보고서 공개 사항을 게시했다. 보고서 전문의 열람을 원하면 기흥공장을 직접 방문하라고 했다. 신청자 중 허가받은 이에 한하여 1인 2회까지 열람이 가능하며, 당연히 기록이나 복사는 불가능하고, 비밀엄수 서약을 제출해야 했다. 5000년 된 파피루스 문서를 보는 것만큼이나 까다롭다. 그런데 이 귀한 연구결과가 다음 달 3월 멕시코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단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전문가들이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해도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지식 생산과 공유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당사자 배제, 노동자 배제의 일면을 보여준다.
국가공공기관이나 연구자, 전문가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책무성을 갖는 것일까? 신성한 학술공동체? 연구비를 지원한 기업?
기업에게 노동자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귀찮은 설명 따위는 해줄 필요 없는, 그저 지나는 과객들? 유식해지면 괜히 분란이나 일으키는 골치 아픈 사고뭉치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업기밀의 중요성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학계에서 심층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비전문가가 그 모든 지식과 학술적 논쟁들을 이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이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변명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려우면 쉽게 설명해서 알려줘야 한다.
복잡한 절차나 암묵적 압력 때문에 노동자들이 알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쉽고 민주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위험한 물질을 다루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받는 이들은, 이러한 절차를 만들고 지식을 생산하는 공무원도 연구자도 기업가도 아닌, 바로 노동자들이다. 노동자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
(이 글은 "우리에겐 알 권리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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