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03월 28일 21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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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아닌 '사회'에 공헌할 것을 맹세합니까
[다시! 리영희] 리영희 선생님의 주례사
1. 리영희 선생님은 내 결혼식 주례이셨다. 또 선생님에게는 내가 첫 주례 제자였다. 그렇게 선생님이 내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된 것은 1970년대 유신독재가 낳은 시대의 인연이었다. 1974년 2월, 나는 35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그해 3월, 서울대 미학과 4학년에 복학하였다. 그런데 한 달 만인 4월, 일명 민청학련 사건으로 불리는 긴급조치4호 위반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2023.07.24 14:42:01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가해자성과 PTSD에 가두지 않기
[다시! 리영희] 리영희 다시 읽기로 다시 만나는 베트남전
*이 글에서는 이제껏 본격적으로 담론과 운동의 장(場)에 진입하지 못했던 참전군인들의 가해경험이 말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참전군인 인터뷰 작업을 중심으로 가해자성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여, 베트남전쟁이 지금–여기의 '우리' 에게 무엇인지를 묻는, 동시대적이고 새로운 문제지형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피해의 자리와 가해의 자리를 왕복했던 '분열증적 듣
아정 아카이브평화기억/FIPS/IW31 활동가
2023.07.11 14:07:04
격랑에 휩쓸리는 한반도, 리영희 선생이라면 어떤 판단 내릴까
[다시! 리영희] 독일에서 시작된 리영희 선생과의 만남
1980년 창간 때부터 내가 관여했던, '주변부'를 뜻하는 제3세계 전문 잡지 <페리페리, Peripherie> 가운데 리영희 선생의 글이 80년대 중반에 독일어로 번역되어 실렸던 해당 호를 책장에서 찾았다. 이 글이 우리의 인연을 복기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세계경제 위기를 특집으로 다루었던 1984년 7월에 발간된 초록색 표지의 1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2023.06.27 13:46:22
황석영이 만난 리영희
[다시! 리영희] 사람과 역사의 특징
내가 리영희 선생을 처음 만났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이 살았던 때와 만났던 사람들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면서 기억의 서랍에 남기기 마련이다. 나도 이제 팔십이 넘었으니 추억은 길고 남은 시간은 짧아졌다. 살면서 수많은 사건과 사람을 겪었고 만났다. 나는 일찍이 서울을 떠났고 늘 지방의 현장 근처를 떠돌았다. 그러고는 곧
황석영 소설가
2023.06.13 11:11:39
리영희와 그의 유토피아
[다시! 리영희] 리영희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유토피아>
<합동통신> 외신부장으로 근무하던 리영희는 1971년 10월 해직되었다. 1969년 7월 <조선일보> 외신부장에서 물러났던 그는 일 년여 만에 또다시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외압이 작용하였다. 당시 정부는 베트남전쟁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애쓰는 리영희의 보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한국군을 파병한 베트남전쟁이 공산주의에
허희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박사후연구원
2023.05.30 15:55:26
리영희, 치열하되 인간적이었고, 비판적이되 냉소적이지 않았던…
[다시! 리영희] 정범구가 리영희 선생에게
나이가 들수록 선생님 생각이 더 자주 납니다. 이럴 때 선생님 같으면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 처신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아마 치열한 삶을 살고 난 이후 노년기 선생님 삶에서 제가 더 큰 영감과 격려를 받았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10여년 독일 유학생활에서 돌아와 이것저것 하던 시절 한 시사매체의 의뢰를 받아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정범구 전(前) 주 독일 대사
2023.05.16 05:17:57
'공학도적 글쓰기'에 헌신한 전투적 자유주의자 리영희
[다시! 리영희] 찬란히 빛난 '리영희 기자'의 외신면
리영희 선생 따님 이미정 씨가 글 청탁을 했을 때 일단 무조건 쓰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우선 내가 리영희 선생을 존경하니까. 나도 그 시대 리영희 선생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리영희의 '공학도적 글쓰기'의 공백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는 시대라고 생각되기 때문에(리영희는 자신이 글 쓸 때 ‘공학도적 엄밀성’을 추구한다는 점을 많이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23.05.02 16:43:13
리영희 선생의 다음 소망은 '고고인류학'이었다
[다시! 리영희] 이성도 본성이야!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서로 반목하고 싸우는 세계에 절망한 나는 선생님께 질문했다. "과연 인간의 이성이 본성을 누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바로 단호한 어조로 답하셨다. "이성도 본성이야!" 오랫동안 어정쩡하게 생각하고 있던 의문이 갑자기 풀리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옆에 있던 학생들이 의아한 얼굴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 그동안 우
정병호 한양대 명예교수
2023.04.18 06:03:52
"북에 대한 내 생각은 긍정 반, 부정 반이야"…참 지식인이었던 리영희 선생
[다시! 리영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리영희 선생
1971년 대학에 입학한 위수령 세대의 우리에게 리영희 선생은 큰 어른이셨다. 박정희 군부독재에 의해 대학이 짓밟히던 시절, 우리에게는 참으로 읽을 책이 없었다. 한국에 선교사로 와 있던 부라이덴슈타인(한국명 부광석)의 세미나용 지침서 <학생과 사회정의>나 황성모의 <사회사상사>가 고작이었다. 결국 이미 십여 번 이상 복사했을 법한 파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
2023.04.05 10:28:24
리영희 교수가 한겨울에 구멍 난 양말을 손에 낀 까닭
[다시! 리영희] 조국의 민주화와 함께 맺은 리영희 선생과의 인연
리영희 교수님에 관해서는 국내의 많은 분들이 훨씬 더 잘 알고 계실 터이니, 재외국민인 내가 단편적인 몇 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글을 쓴다면 주제 넘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글 하나 쓰라는 김효순 리영희재단 이사장의 부탁에 못 이겨 교수님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간단히 내 소개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 재일동포 2
이철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회장
2023.03.21 06: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