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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남긴 화두, 독립 언론이라는 자유
[다시! 리영희] 위기의 시대, 독립언론 협업의 가치
"대구·경북 독립 언론 <뉴스민>, 이상원 기자입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독립 언론을 해요. 안 힘들어요?" 대구·경북을 조금 벗어나서 이렇게 소개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그럴 때면 '허허허'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곤 한다. 대구·경북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있기 때문에 돌아오는 스테레오타입 같은 반응이라곤 생각하지만, 개인
이상원 대구·경북 독립 언론 <뉴스민> 편집국장
2023.12.12 16:00:29
리영희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토피아
[다시! 리영희] 천박한 자본주의, 고급진 유토피아
2008년 리영희샘이 추석을 맞아 안부 전화라며 내게 전화를 주셨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나는 마당발 한의사 선배 이유명호가 이끄는 대로 한겨레 논설위원 김선주, 유시춘, 조선희, 서명숙, 김미경 등 여성들과 어울리고는 했다. 호주제폐지운동을 가열차게 하고 있던 터라 '십자매'라 칭하기도 했던 이 모임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리영희샘 부부와 수다
고은광순 (사)평화어머니회 대표이사
2023.11.28 14:44:01
박노자가 만난 리영희
[다시! 리영희] 양심과 지성의 빛: 내가 기억하는 리영희 선생님
나는 '리영희'라는 성함 석자를, 아마도 1995년쯤 처음으로 들어보게 된 것 같다. 그해 여름에 내 처형의 광명시 소재 아파트에서 몇 주를 보내게 되었는데, 처형과 그 남편은 한때 학생운동권의 전력이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나는 그 집의 서가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사상 탄압이 대단히 심했던 1970년대에
박노자(블라디미르 티코노프) 오슬로대 교수
2023.11.14 14:10:37
유시춘이 만난 '호모루덴스 리영희'
[다시! 리영희] 진지한 스승과의 달콤한 동행
20대 후반에 나는 새로운 하늘과 땅을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중편소설로 등단한 작가이며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이었다. 월요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 조회를 하면서 교장의 지루한 언설을 들어야 했다. 훈육주임의 얼차려 공지사항이 짧게 끝나는 날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회 후에는 교련훈련이 이어졌다. 예편한 소령이 군복차림으로 행진과 훈
유시춘 EBS 이사장
2023.10.31 14:47:05
리영희, 개인이 곧 역사인 삶
[다시! 리영희] 스승 없는 세상, 그이가 그립다
2007년 어느 봄날 리영희 선생이 "이제 더는 집필이나 독서가 불가능하니 책들은 인근 도서관에 기증할 예정인데,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개인 자료들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하고 싶으니 가지고 가라"고 내게 연락하셨다. 상고이유서나 사면장, 복권통지서 등 민주화운동 과정에 선생이 투옥되며 만들어진 자료와 그가 교류했던 외국기관이나 개인과의 서신이 대부분이었
어수갑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
2023.10.17 11:56:29
리영희 <대화> 일본어판 편집자 세키 마사노리 씨를 애도하며
[다시! 리영희] 리영희를 통해 한일을 연결한 편집자
국내에서는 극히 한정된 분야의 인사들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출판계에서 유수의 한반도 문제 전문 편집자였던 세키 마사노리 씨(이하 존칭 생략)가 지난 8월 9일 세상을 떠났다. 만68세가 되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너무도 이른 죽음에 가슴이 먹먹하다. 일본의 지식인 중에는 그의 손을 거쳐 나온 책들을 보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김효순 리영희재단 이사장
2023.10.03 09:17:57
리영희와 불교의 인연
[다시! 리영희] 오현스님·명진스님·김성동 소설가 등과 다진 교류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해 우리나라의 대표 지성으로 존경받는 리영희 선생은 불교와 언제 인연을 맺었을까. 또 그 인연은 어떻게 성숙했을까? 사실 리영희 선생의 치열한 일생을 살펴본다면 그처럼 비종교적인 삶을 살아온 경우도 흔치 않을 듯싶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거의 절반의 인구가 종교를 가지고 있고,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 등 거대 종교와 유교, 천도교,
이학종 전 <법보신문> 기자
2023.09.20 13:28:18
리영희 선생의 마지막 2년
[다시! 리영희] 말년의 리영희 선생
리영희 선생의 교분은 워낙 깊고 넓으니 다양한 분들이 선생과 연을 맺고 지내셨겠지만, 나는 선생의 말년에 비교적 자주 뵈었던 인연이 있었다. 이를테면 선생의 마지막 사회적 발언은 내가 몸담은 인권연대의 창립 10주년 기념식이었다. 2009년 7월 1일(수) 저녁에 조계사 구내 불교문화관에서 연 행사. 선생은 여기서 이명박 정권이 초기 파시즘에 들어섰다고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2023.09.05 14:25:52
'제도 밖의 스승' 리영희를 만나다
[다시! 리영희] 내 삶의 균형추, 리영희
리영희 선생을 떠올리면 대학 3학년생일 때인 1974년 서울구치소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은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긴급조치 1, 4호 위반(이른바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 중이던 그때 '공범'인 이해찬 군이 '창비신서'로 나온 그 책을 동양사 전공의 나는 꼭 읽어야 한다고 빌려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신서'라는 명칭을 듣고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세교연구소 이사장
2023.08.22 16:57:13
미국 이민 1.5세대와 리영희의 인연, 대학 한국학 단체 출범으로
[다시! 리영희] 나와 리영희 교수의 만남
1987년, 민주주의를 위한 대규모 시위가 군사독재자 전두환을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고 국민 직접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역사적인 개헌을 이뤄내면서 수십 년에 걸친 한국의 권위주의 통치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 한인사회의 보수적 시각은 거센 강물 한가운데 놓인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민중운동에 자극 받은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한인
폴 림(Paul Liem) KPI(코리아정책연구소) 이사
2023.08.08 13: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