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6년 10월 06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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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문재인의 '평화' 연설을 듣고, 김영삼의 취임사를 꺼내들다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여섯 번째 이야기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신뢰'란 말이 마음에 크게 남았다. 중계를 볼 때는 가볍게 들렸는데, 연설문을 다시 읽어보면서 그 의미가 무척 의미심장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세 가지 방향(또는 층위)에서 '신뢰'를 말했다. 첫째 국민 간의 신뢰. 평화롭게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을 모두가 갖고 있다는 믿음 위에서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넓힘으로써
김기협 역사학자
산샤(三峽) 댐을 바라보는 굴원(屈原)의 시선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다섯 번째 이야기
내게 이번 여행의 중심 주제는 단연 장강(長江, 창장)이었다. 예전에는 양자강(揚子江, 양즈장)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장강 하류 지역에서만 부르던 이름이라고 한다. 선교사 등 서양인들이 하류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장강'을 '양자강'으로 근년까지 우리 사회에서 인식해 온 사실이 두 나라 사
관광객의 눈으로 본 중국의 '소강(小康)'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네 번째 이야기
20여 년 전 하이텔 어느 게시판에서 논쟁을 벌이다가 화가 난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조직 활동이라고는 아무것도 못할 사람이요!" 악담으로 한 말씀이 내게는 덕담으로 들렸기 때문에 기억에 깊이 남은 말인데 이번 여행을 다녀오며 절실하게 떠올랐다. 나는 정말 조직 활동 싫다! 여러 사람과 긴 시간 함께 지내는 일이 29년 전 대학을 떠난 이후
안경이여, 잘 있거라!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세 번째 이야기
여행 다니며 구경을 잘 하려면 안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안경을 꺼내 봤다. 지난 2년 동안 안경을 전혀 쓰지 않고 살았다. 중학교 때 흑판 보기가 힘들어져 시력을 측정하니 양쪽 다 0.1이 나와 쓰기 시작한 안경은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책 볼 때와 잠잘 때 외에는 거의 안경을 벗는 일 없이 수십 년을 살았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안경과
43시간, 중국 대륙을 달리는 겁나는 기차여행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두 번째 이야기
5월 23일. 07:18분 연길을 떠나 11시에 창춘(長春)역에서 집결, 12:05분 출발 열차에 탑승. 25일. 07:18분 충칭(重慶)역 도착. 몇 군데 구경한 후 버스로 3백여 공리(公里, 킬로미터) 동쪽의 언스(恩施) 투자족-먀오족 자치주로 이동. 26일. 언스 일대 관광. 27일. 언스 일대 관광 후 완저우(萬州) 부두로 가서 19:00분 출항하는
'문명의 위기' 앞에서 '적응주의'를 생각한다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한 번째 이야기
영국의 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근황을 적어 보내다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이 'Retreat Diary'라고 했다. 쓰면서 생각하니 '퇴각일기'보다 '피정일기'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퇴각(退却)'에 '피정(避靜)'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일상생활의 틀을 벗어나 마음을 다듬는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피정
제주살이 10년
[김기협의 퇴각일기] 열 번째 이야기
1990년 여름 교수직을 떠난 뒤, 얼마 동안 프랑스에서 자료 조사를 하고 돌아온 후 제주도에 자리 잡았다. 몇 가지 이유가 어울려 작용했다. 첫째,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고 싶었다. 그 무렵 유럽에 많이 가서 지내보는 동안 한국의 도시 생활이 너무 자연과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케임브리지 같은 소도시는 말할 것 없고, 파리 같은 대도시의 환경도
'반전유인(盤前有人)'의 바둑 자세
[김기협의 퇴각일기] 아홉 번째 이야기
이번 연길 체류 중 한 가지 일과가 자리 잡았다. 마작(麻雀)이다. 아내와 언니 세 분, 4자매가 별다른 사정 없으면 점심 후에 큰언니댁에 모여 저녁 전까지 판을 벌이는데, 나는 후보 선수다. 주전 선수가 다 있을 때는 4시경에 가서 휴식 원하는 분을 교체해 드린다. 한 분이 사정이 있으면 나도 선발 선수로 뛰는데, 내 일하는 시간을 보장해 주기 위해 개장
달만 쳐다보지 말고 손가락도 들여다보라!
[김기협의 퇴각 일기] 여덟 번째 이야기
1969년 내가 사학과로 전과할 때 서울 문리대 사학과가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로 분과되고 있었다. 그 해 신입생은 분과된 각 학과로 지원해 제1회 입학생이 되었는데, 2학년으로 전과한 나는 사학과의 마지막 회에 끼어들었다. 사학과 학생들은 기존 커리큘럼에 따라 학점을 이수하고 국-동-서 중 어느 분야라도 골라 졸업논문을 쓰게 되어 있었다. 분과
40세에 교수직을 떠난 이유
[김기협의 퇴각 일기] 일곱 번째 이야기
내 여권에는 이름이 'Orun Kihyup Kim'으로 되어 있다. 1983년 첫 여권 발급을 신청할 때 정한 이름이다. 두 형이 197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 유학 갔는데, 원래 이름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적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이름을 만들었다. 그런데 'Ki Bong Kim'과 'Ki Mok Kim'이 같은 시기에 버클리에서 지내는 동안 이름 때문에 불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