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0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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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마, X바!"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웃음을 박멸하려던 제국
때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1년도 버티지 못한 채 독일에 항복했으며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삼국 동맹이 결성되고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창씨개명, 조선어 말살 등이 본격화되었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폐간된 것도 이 때였다. 1937년
한만수 동국대학교 교수
<뿌리 깊은 나무> 세종이 노무현이라고?!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검열이 마냥 '나쁜 놈'은 아니다
검열이란 권력이 사람들의 입을 부당하게 틀어막는 일이다. 그러므로 검열 연구는 자칫하면 이분법의 구도 속에 빠지기 쉽다. 아이들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착한 사람'과 '나쁜 놈'의 싸움처럼 인식하기 쉬운 것이다. 물론 검열 권력은 '나쁜 놈'임
기적적인 문학 작품 복원! 그런데 착잡하다!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80년 만에 부활한 <소금> ③
달걀은 한 군데에 담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식민지 시기 문인들은 검열을 의식하여 여기저기에 하고픈 말들을 나눠 쓰는 기법도 구사했다. 어떤 것이 검열에 삭제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여러 군데에 나눠 써놓고서 그 중에서 한두 개라도
잡지사 직원의 태업이 낳은 보석 같은 순간!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80년 만에 부활한 <소금> ②
다 된 밥에 코 빠진 느낌. 억울해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조선의 언론과 세상>과 <소금>을 놓고 비교해보았다. 그러니까 다시 가능성이 보였다. <조선의 언론과 세상>에서 붓질은 매우 꼼꼼하게 되어 있었지만 <소금>은 상당히 무성의한 붓
일제가 난도질한 소설, CSI의 눈으로 복원?!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80년 만에 부활한 <소금> ①
식민지 시기 단행본이나 잡지에 대한 검열은 여러 단계를 거쳤다. 먼저 원고로 검열한 뒤에 책이 나오면 다시 검열을 거쳐야 판매를 허용했다. 두 번째 검열에서는 주로 수정 및 삭제지시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확인했다. 물론 원고 검열 이후에 검열지침이 바뀐 것이 있으
<돈키호테>의 작가는 정말로 세르반테스인가?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루쉰의 이름은 200개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살던 시기 스페인은 세계 제국의 지위에서 밀려난 직후였다. 자랑하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격파된 이후 쇠퇴 일로에 놓였지만 여전히 왕년의 스페인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과학 기술의 발전, 신교의 흥륭,
<경향신문>의 스타 화백, <중앙일보> 가서는…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돈으로 사람을 사는 검열
<중앙일보>에서 10년 동안 만평을 그렸던 고 김상택 화백은 원래 <경향신문>에서 데뷔했다. 도안을 주로 맡다가 체육 면과 노동조합 회보에 만평을 그리면서 재능을 인정받아 김상택 만평을 시작했는데, 3면에 연재하다가 폭발적 호응에 따라 1면으로 옮겼다. 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시가 살아남은 이유는?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책, 왜 인쇄일과 발행일이 다른가
한국에서 출판되는 모든 책에는 인쇄일과 발행일이 따로 기재되어 있다. 대개 1주일쯤의 간격을 둔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간기 형식이다. 도대체 인쇄일과 발행일은 왜 다른가. 바로 검열제도 때문이다. 인쇄한 뒤에 검열을 통과해야 판매할 수 있으니 발행
육탄십용사, '날조'로 탄생한 신화!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전시 검열과 기자의 '소설' 쓰기
1931년 일본 수상 하마구치는 한 우익 청년의 총탄에 쓰러진다. 배후에는 일본 군부가 있었다. 하마구치는 만주 침공(흔히 만주사변이라는, 침략성을 완화하기 위한 모호한 이름으로 불린다)에 소극적이었으며 군부는 그게 문민정권의 무기력이라고 판단하였다. 하마구치가
인터넷에 글 쓰다 '망명'…100년 전에도 있었다!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사이버 망명과 유·이입물 검열
얼마 전 사이버 망명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요구한 인터넷 실명제를 구글에서 거부하면서, 네티즌들이 구글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네티즌들이 망명에 나섰다 함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짓밟히고 있음을 뜻하는 것 아닌가. 왜 이 정권은 네티즌에게 김구 선생의 고생길을 반복하도록 강요하는가. 왜 '다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