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예수는 '실패한 혁명가'…하지만 '세상의 빛'"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예수는 '실패한 혁명가'…하지만 '세상의 빛'"

[오체투지 97일째] "한 사람이라도 움직인다면…"

오체투지 97일차였던 지난 10일,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오체투지 순례단은 어느덧 경기도 수원시를 지나 의왕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순례단은 오는 16일 과천시 남태령 고개를 넘어 서울로 입성할 예정이다.

더위가 일찍 찾아온 5월, 30도에 가까운 기온에 세 명의 성직자는 물론, 오체투지 진행팀의 얼굴은 어느덧 새까맣게 그을렸다. 진행팀에서 교통을 담당하는 김형건 씨는 "얼마 전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는데 잘린 부분은 햇볕을 받지 않아 하얗고 나머지 부분은 검게 그을려 민망하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행히 이날은 하늘에 낀 구름이 순례단에 내리쬐는 햇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하지만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무더위, 그리고 끊임없이 순례단 옆을 고속으로 지나가는 차량은 여전했다.

하지만 순례단은 물론, 이날 하루 오체투지에 참여한 시민들은 힘든 내색 없이 오후 5시까지 순례를 진행했다. 마침 이날 점심식사 직후 순례단에 참여한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는 오체투지에 참여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 오체투지에 참여한 시민들. ⓒ프레시안

"예수님은 실패한 혁명가 하지만 세상의 빛"

중국 천진에서 3박 4일간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가 오체투지를 참여하게 됐다는 고경이(39) 씨는 "복잡한 내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고 마음을 모으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한인 성당을 다니는 그는 오체투지를 두고 종교적 시각에서 의미를 찾았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예수님은 실패한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세상의 빛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변화시키진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지금 세 분 성직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체투지를 한다고 해서 무엇인가 변화되고 바뀌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희망과 변화에 대한 마음을 모아내는 것, 그것을 위한 것이 오체투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미력하나마 힘이 되고자 참여하게 됐다."


순례단에서 진행을 맡고 있는 명호 팀장은 순례단의 모습을 자벌레에 비유했다. 자벌레는 자벌레나방의 애벌레로 몸이 가늘고 길다.

"자벌레는 꽁무니를 머리 쪽에 갖다 대고 몸을 길게 늘이기를 반복하여 움직인다. 한껏 움츠린 다음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심오한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의 촛불 집회 이후 지금은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잔뜩 움츠린 시기다. 여기서 잠깐 멈춰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오체투지 순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순례라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하나만 맞는 거라고 생각하며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길,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순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은 어느 혼자만의 길이 아닌 우리 모두의 길이다."

▲ 오체투지는 이마와 두 손과 두 무릎, 신체의 다섯 곳을 땅에 붙이이는 행위를 말한다. ⓒ프레시안

"살아가는 것에 있어 지식이 아닌 감성과 믿음이 중요"

개인적인 이유로 참여한 이도 있었다. 박영수(가명·32) 씨는 스스로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오체투지를 참여했다. 그는 2008년 촛불 집회에 자주 참여했다. 박 씨는 "촛불 집회에서 경찰의 폭력 행사 모습을 많이 봤다"며 "그로 인해 시민의 분노가 커지고 어둠도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이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작년에 오체투지에 처음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호주 캔버라에서 안식년을 맞이하고 있는 정인환 협성대 교수는 3주간 한국을 방문하던 중 오체투지에 참여했다. 그는 "학교에서 10년간 교편을 잡고 있지만 가끔 아이들에게 글로만 가르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며 "오체투지는 그런 나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있어 지식이 아닌 감성과 믿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며 "오체투지를 통해 그것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체투지를 하니 마음이 편해져서 계속 오게 된다는 이들도 있었다. 부부가 함께 오체투지에 참여한 이시희(45) 씨는 오체투지에 벌써 여덟 번째나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처음 오체투지를 했을 때는 일주일동안 온 몸이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고 소회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횟수가 넘어갈수록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이제는 집에서 쉬는 것보다 오체투지를 하는 게 더 편하다.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아라."

그는 "길바닥 위에서 나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느낌이 든다"며 "그것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강현석(47) 씨도 마찬가지로 부인과 함께 오체투지에 참여했다. 그는 "마음의 평화와 더불어 사는 것을 실천하는 계기가 오체투지"라며 "이웃과 더불어 함께 갈 수 있는 사회와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평범하지만 올바른 길을 가고 싶다"며 "오체투지는 내 아이만, 내 가정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우리 밖의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올바른 길을 인도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는 16일 과천에서 서울로 입성하는 순례단은 이후 용산구를 지나 20일 명동성당에 도착해, 미사를 진행한다. 이후 21일에는 청계광장을 거쳐 조계사로 이동해 법회를 열 계획이다. 서울로 입성하는 16일에는 대규모 행사도 계획 중이다. 명호 팀장은 "16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며 "서울을 통과하는 남태령 고개에 행사를 준비, 힘있게 서울에 입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

▲ 차들이 좌우에서 고속으로 달리는 가운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례단. ⓒ프레시안

ⓒ프레시안

ⓒ프레시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