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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휴식도 안 돼? 길바닥 인생이 다 그렇지 뭐…"

[61일째 오체투지] 납작 엎드린 성직자…더위도 추위도 "감사할 뿐"

'생명의 길, 사람의 길, 평화의 길'을 위한 오체투지 61일차인 지난 4일, 오전 11시 30분이 되자 순례를 멈추고 일행들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천안으로 향하는 23번 국도에 위치한 송선로터리 인근 한 휴게소로 향했다. 점심 공양을 위해서였다. 순례단은 밥차를 준비해 길거리에서 자체적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공양은 여의치 않았다. 휴게소에서 주차 차량을 위해 공양 장소를 옮겨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휴게소 주차장에서 자리를 깔고 밥을 먹으려던 세 분의 성직자와 순례단은 결국 근처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휴게소에서는 그곳도 주차장이라며 안된다고 연신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전종훈 신부는 "길바닥 인생이 다 그렇지 뭐…"라며 너털웃음으로 섭섭한 마음을 풀었고 수경 스님은 "참 야박하다. 금방 먹고 일어나겠다"고 양해를 부탁했다. 문규현 신부는 아무런 말없이 길바닥에 그냥 앉아 있었다.

마지못해 휴게소 관계자는 "빨리 먹고 나가달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하지만 순례단은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날 공양은 묵과 찐 계란, 그리고 각종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 아침부터 순례단의 안전을 위해 내내 긴장했던 진행요원들도 이 시간만은 무전기를 끄고 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농을 주고 받았다. 오전의 긴장감을 풀고 오후의 순례를 위한 충전의 시간이었다.

▲ 4일 공주에서 천안으로 향하는 23번 국도에서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는 순례단. ⓒ프레시안

오체투지 일주일…피로감으로 입술 찢어지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오체투지가 다시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매번 그렇듯 이날도 '딱, 딱, 딱' 죽비소리가 세 번 아스팔트에 울리자 그 소리에 맞춰 10명의 순례단이 바닥에 이마를 조아렸다.

오전 8시 30분. 어김없이 죽비소리가 순례단을 이끌었다. 2차선 도로 위에서 한쪽 차선을 차지하고 순례단은 연신 머리를 땅을 향해 조아렸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4명의 진행요원들이 빨간 신호등을 들고 자동차들을 다른 길로 유도했다.

4월이지만 이른 아침의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산간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바람이거니와 아스팔트 위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전종훈 신부 등 세 명의 성직자들은 빵모자를 쓰고 추위를 예방했다.

오체투지 1주일째라 그런지 세 성직자는 출발 때와는 달리 초췌한 모습이었다. 순례 도중 쉬는 시간에 수경 스님은 부르튼 입술을 위해 약을 발랐다. 극도의 피로 속에 입술이 성할 리 없었다. 다른 성직자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렸다. 문규현 신부는 출발 전에는 없었던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의 절반을 채우고 있었다. 순례단 진행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그나마 전종훈 신부의 파르스름했던 머리가 약간 자라 초췌한 모습을 희석시켰다. 그는 2008년 순례에서도 자신을 정화하여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고 사제의 길을 가겠다는 의미로 가톨릭 전통을 따라 삭발의식을 수행했다. 2009년 순례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일교차가 심한 날씨, 흐르는 땀방울만 묵묵히 닦는 성직자들

오전엔 추위가 순례단을 괴롭혔다면 오후는 더위가 이들을 괴롭혔다. 10도 이상 차이나는 일교차였다. 그나마 4월 초 날씨인지라 무덥지는 않았지만 반복해서 엎드렸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이마에 땀이 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세 명의 성직자들은 땅에 부딪치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양 팔꿈치와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옷 자체를 두껍게 입고 있기에 이들이 느끼는 더위는 여는 사람보다 한층 심했다.

▲ 머리에 수건을 올리고 더위를 식히고 있는 전종훈 신부 ⓒ프레시안

오체투지 중간 휴식시간에 성직자들은 이마에 있는 땀을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두꺼운 옷 안에 몸은 땀범벅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힘들다, 덥다'는 일언반구 없었다. 묵묵히 휴식만을 취할 뿐이었다. 그러다 진행 팀장인 명호 씨의 "출발 준비하겠습니다"란 말이 들리면 벗었던 장갑과 머리띠를 다시 끼고 길 위에 나섰다. 그렇게 오체투지는 계속됐다.

진행 차량 고장나고, 수경 스님 무릎 통증 발생하기도

공주시 반포리 계룡사 신원사 중악단에서 시작한 순례는 그동안 691번 지방도로에서 23번 국도를 갈아타며 계룡면 양화리 보목교, 계룡저수지를 거쳐 지금의 장소에 다다랐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출발 직전 진행 차량이 고장이 나 애를 먹기도 했고 순례 도중 수경 스님 무릎에 통증이 발생해 순례단을 긴장하게도 했다. 수경 스님은 2003년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를 위한 두 달간 동안 309km의 거리를 삼보일배로 지나왔다. 그때 다친 무릎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무릎을 구부리지 못하는 등 완쾌되지 못했다.

수경 스님은 게다가 감기 몸살에 속마저 체해 힘겨운 일정을 진행했다. 진행요원인 명계환 불교환경연대 조직국장은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오체투지를 하면서 감기 몸살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빨간 봉을 들고 교통을 통제했던 진관 스님은 "옆에서 지켜보자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결국 세 분이 하는 일을 옆에서 조용하 바라볼 수밖에 없다"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세 명의 성직자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날에도 순례단은 혹독한 추위를 겪으며 순례를 계속했다. 이럴 때면 사방이 트인 도로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지나가는 차량이 일으키는 바람은 이들의 체감온도를 더욱 떨어뜨렸다. 그래도 순례단은 언제나처럼 그나마 잠시 비춰주던 햇살에 감사했다.

▲ 순례단 옆에서는 대형 화물 트럭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프레시안

남은 거리 200킬로미터,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이날 서울에서 혼자 와 순례에 참여한 김인숙(49) 씨는 작년 오체투지에도 틈틈이 참석했었다. 그는 1주일 전 오체투지 시작에도 참여했다. 김 씨는 "땅에 몸을 엎드릴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남아있던 욕심이나 이기심 등이 하나씩 버려지는 느낌"이라고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문규현 신부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알았다고 한다. 다른 종교를 가진 세 분의 성직자들이 함께 고행의 길을 떠나는 것에 대해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씨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평화와 사랑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하나"라며 "나 역시 오체투지를 참여하면서 종교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영미(62) 씨는 다리가 좋지 않아 오체투지 대신 합장을 하며 순례단 뒤를 따라붙었다. 그는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의미 있는 순례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기성세대보다도 앞으로 사회를 이끌 젊은 세대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참여를 독려했다. 이날 순례단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장년층이었다.

매일 4킬로미터(㎞)를 '지렁이'처럼 행진하는 순례단. 앞으로 목적지인 임진각까지 200킬로미터나 남아있다. 하지만 이 거리를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느린 걸음으로 대지와 호흡하며 행진할 예정이다. 이 땅의 생명과 평화,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다.

▲ 명상에 잠긴 성직자들. 문규현 신부의 수염이 일주일 사이 무성하게 자랐다. ⓒ프레시안
▲ 일어났다 누웠다를 수백번 반복하는 오체투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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