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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평생 이 '고통의 순간'을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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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평생 이 '고통의 순간'을 기억하렴"

[오체투지 82일] 칼바람 부는 1번 국도에서 '공부하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오체투지가 82일차를 맞이한 25일, 순례단이 지나고 있는 경기도 평택 1번 국도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전날 오후부터 내린 비로 감기 기운이 있는 순례단에 칼바람은 말 그대로 '칼'이었다.

순례단 진행팀이 "차라리 비가 내리는 게 낫겠다"며 불어오는 찬바람을 원망할 정도였다. 세 성직자는 비가 올 것을 예상하고 단단히 채비를 갖췄지만 추운 바람은 견디기 어려웠다. 뚝 떨어진 기온으로 전종훈 신부는 이미 몸살감기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결국 이날 점심식사는 오체투지 순례 중 처음으로 식당에서 해결했다. 찬바람이 불 뿐더러 하늘에서 언제 비가 내려도 당연할 정도로 먹구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순례단은 자신들의 밥을 만들어주는 밥차를 이용해 빈 공터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이날 순례단은 유독 분주했다. 안동, 상주, 부안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2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인산인해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날 순례단에는 특히 아이와 함께 오체투지에 참여한 시민이 많았다.

▲ 오체투지에 참여한 한 어린이가 앞에 누워 있는 아이의 발을 간지럽히는 장난을 치고 있다. ⓒ프레시안

"아이에게 고통은 함께 나누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다"

김해미(가명) 수녀도 성당을 다니는 21명의 초등학생과 함께 왔다. 새벽부터 경상북도 상주에서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평택까지 왔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그는 "아이에게 고통은 함께 나누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다"며 참여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세 분의 성직자가 한 달을 넘게 어려운 발걸음으로 이만큼 왔다. 이분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함께 오체투지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며 "다들 자발적으로 왔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1~3학년의 학생은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오체투지의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리자 바닥에 엎드려서는 헤엄치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안 하면 안 돼요?' 하며 응석을 부리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수그리며 진지하게 오체투지에 동참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주위 분위기를 사뭇 고조시켰다. 또 쉬는 시간이면 "신부님, 스님이 힘들 것 같다"며 세 성직자에게 달려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깨를 주물러 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성직자들의 얼굴에는 아픈 몸도 잊은 듯 입가가 절로 웃음이 피어났다.

김해미 수녀는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을 두고 "지금은 잘 모를지 몰라도 나중에라도 지금을 기억한다면 좋은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며 괘념치 않아했다. 그는 '세 성직자는 이 사회의 변화, 그리고 나 자신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며 "이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경험은 아이들이 사는 동안 어떤 부분에 무게 추를 둬야 하는지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 오체투지에 참여한 어린이. ⓒ프레시안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계기가 될 것"

"오늘 오체투지를 하면서 너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생각해보렴."

전라북도 부안에서 올라온 이숙(48) 씨는 11살 된 아들에게 평택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몇 차례 아들과 함께 오체투지에 참여했다.

이숙 씨는 "아이가 자신만을 아는 사람이 아닌 자신 이외의 사람, 동물, 환경 등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며 "오체투지는 성찰을 통해 아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어른들이 이렇게 힘들게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아이가 성장해도 오늘은 잊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인 이현표(11) 군은 오체투지를 마친 뒤 "힘들고 추웠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과 개운함이 있다"며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송성진(43) 씨는 "궂은 날씨가 다행"이라며 연신 잘됐다고 박수를 쳤다. 17살 된 딸과 함께 왔는데 고생을 좀 해야 한다는 것. 그의 딸은 전라북도 무주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푸른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송 씨는 딸이 공부만이 아닌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오체투지에 참여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는 "아이가 오체투지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이를 통해 딸이 좀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는 남보다 더 배운 걸 악용해서 배우지 못하거나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 내 자식은 어쭙지 않게 배운 지식이나 지혜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자라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올바른 삶 아니겠는가."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오체투지 순례단은 그간 겪은 추위와 비로 인해 부득하게 27일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순례단 내 감기 몸살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기 휴식일인 28일 이후 29일부터 다시 순례를 시작한다.

이들은 평택을 거쳐 29일 오산, 5월 3일 수원에 도착한다. 이후 10일에는 과천에 도착하고 13일엔 서울에 입성한다. 서울에서는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17일에는 청계광장에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 아이에게 무릎 보호대를 설명하고 있는 수녀. ⓒ프레시안
▲ 오체투지에 참여한 시민들. ⓒ프레시안
▲ 오체투지. ⓒ프레시안

▲ 오체투지에 참여한 수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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