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1승 1무. 선수들은 무사히 귀국했다. 어쨌든 그 땐 좀 거친 시절이었다.
장면 #2. 1981년 9월. 올림픽유치단이 바덴바덴으로 출발하기 당시 안기부장 유학성은 유치단에게 '결사항전'을 주문한다.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는 경우? 정주영을 위시한 유치단에게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중해 푸른 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광주의 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핵심 멤버 유학성의 지시 아닌가. 사실상 전두환의 엄명이었다. 이제 스포츠에서의 승부 뿐 아니라 국제대회 유치도 '목숨 거는' 상황이 되었다.
장면 #3. 2007년 12월. 2012년 여수 엑스포 유치를 진두지휘하던 유치위원장 김재철 동원그룹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 번의 실패는 없다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치하지 못하면 유치위 관계자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겠습니다."
이제 국제 이벤트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맹목, 맹신의 수준이다. 21세기 민주화시대에 군인도 아닌, 나이 일흔이 넘은 회장님도 '모두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하신다. 누가 시키고 말고가 없다. 알아서, 스스로 죽겠단다.
장면 #4. 지난 23일 평창이 KOC 임시위원회의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국내 후보도시로 확정되자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국민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며 그 빚을 갚기 위해 "죽을 각오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도지사쯤 되는 분이 이런 살벌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것은 처음 본다. 그런 식이라면 올림픽 유치에 다섯 번 도전했다가 모두 실패한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시장이 죄다 죽어나갔겠다.
다 살자고 하는 거 아니었나? 도대체 '국제 이벤트'에 우리 조상들이 껌이라도 붙여 놓았는가. 왜들 이리 귀신에 홀린 듯 '목숨 걸고' 유치하려 하는가. 도대체 그 너머엔 무엇이 있기에. 유토피아? 열반? 아니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아무튼 김 지사께선 누구 들으라고 그런 '죽을 다짐'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빚이 있는지도 몰랐고 설사 있었어도 안 갚아도 되니까 그리 아셨으면 한다.
▲ 23일 태릉선수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임시위원총회가 열린 가운데 박용성 위원장이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국내후보도시 확정된 뒤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협정서를 나누며 악수하고 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국내후보도시를 신청한 평창에 대해 무기명 비밀투표를 실시한 결과 총 43표 중 찬성 30표, 반대 13표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뉴시스 |
재주는 강원도가 넘고 재미는 평창이 보고
지난 23일 평창의 동계올림픽 도전이 확정되자 강원도가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평창엔 자축 현수막 200여 개, 깃발 500여 개가 내걸렸다 한다. 강원도의 많은 지역 현안들이 '평창올림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눈에 띄는 뉴스들이 있다. 올림픽의 주무대가 될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 분양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사들이다. 콘도와 골프장의 분양이 극히 저조해 강원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는 '애물단지'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알펜시아리조트의 성패는 평창 유치 여부와 직결돼 있었다. 그런데 알펜시아 프로젝트가 사실은 SBS의 최대주주인 태영건설의 최대 역점사업이고, 또 그 태영의 소유주는 김 지사와 함께 평창올림픽 유치의 쌍두마차인 윤세영 강원도민회장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공교롭다.
평창의 땅값은 또 한 번 뛸 것이다. 유치가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던 2007년 무려 11%가 뛰었던 이곳의 땅을 사들인 사람의 80~90%가 외지인이었다고 한다. 그런 외지인 중 한 명이 이번에 알려진 대로 신건 전 국정원장이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유치위 관계자들 상당수도 땅을 매입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평창이 다시 올림픽에 도전하게 되면 이러한 장점(?)에 못지않게 문제도 많다. 우선 강원도내 불균형한 지역 발전이다. 지난 10여년간 강원도가 올림픽에 올인 하면서 지역 개발이 설상 종목 개최지인 평창과 빙상 종목 개최지 강릉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공교롭게도 이는 태백산맥으로 나뉜 영동, 영서 지방의 격차를 가져왔다. 영동 지역에 개발이 집중되자 불만이 컸던 영서 지역은 결국 그 대표격인 춘천의 태권도공원 유치 실패, 원주의 기업도시 및 혁신도시 지원 미비의 문제까지 터지자 결국 폭발해 영동 지역 동해 출신인 김 지사에 대한 보이코트 움직임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수해조차 '편중 복구'
실제로 강원도의 2007년 이전 3년간 도비 현황을 보면 평창엔 모두 160억 원이 지원됐지만, 같은 기간 철원·화천·양구에 지원된 금액은 평창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 강릉시 역시 192억 원을 지원받은 반면, 인근 속초시에는 고작 75억 원이 배정됐을 뿐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런 도비 뿐 아니라 수해 복구까지 '편중 복구'했다는 점이다. 2006년 대규모 수해 때 평창은 '긴급 복구'한 반면 인제 등 북구 지역은 1년이 넘도록 방치해 도민들의 격심한 반발을 초래한 바 있다.
사실 '잃어버린 10년'은 강원도민들이 안타깝게 받아들이는 표현이다. 지난 10여년 올림픽은 강원도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김 지사의 국내외 출장도 (특히 해외의 경우) 대부분 올림픽 때문이었다. 도대체 강원도지사란 자리가 얼마나 한가한 자리이기에 도지사가 실무를 총괄해야 할 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을 겸한단 말인가.
올림픽은 과연 강원도민들을 밥 먹여 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도시 경제, 지역 개발 분야의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개최 기간까지의 단기 효과가 혹 있을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올림픽과 같은 메가이벤트는 지역 경제에 타격을 가할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 단기 효과마저도 부정하는 학자도 있다. (혹 올림픽이 지역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줬다는 연구 결과가 하나라도(!) 있다면 나도 겸허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일독할 생각이다.)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해서 강원도민이 먹는 밥이나 반찬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밥그릇만 더 폼나는 것으로 바뀔 뿐이다. 괜히 번듯해 보이지만 아무 실속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그들은 그냥 주는 줄로 알고 받아썼던 그 그릇의 값을 30년 할부로 갚아야 한다. (☞ 관련 기사: 평창 올림픽, 죽지도 않고 또 오려고?, "아! '제발' 올림픽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 평창군은 지난해 8월부터 주요 노선버스에 2018동계올림픽을 기필코 유치하겠다며 버스 광고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홍보했다. ⓒ뉴시스 |
유치 가능성은 있는 걸까
유치 가능성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강원도 측은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평창이 포기하기는 너무 아깝다며 재도전을 권했다는 말로 재도전 당위성과 성공 가능성을 주장한다. 이는 IOC의 속내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게 바로 IOC가 장사(?)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개최를 생각하는 도시들을 부추긴다. 하지 말란 말은 절대로 안 한다. 그런 식으로 경쟁을 붙여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고 중계권, 스폰서십까지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2018 동계올림픽을 향해 뛰는 도시로는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 중국의 하얼빈, 미국의 덴버, 불가리아의 소피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등이 있는데 뮌헨과 안시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는다.
뮌헨은 시설 대부분이 1930년대에 지어졌다는 게 단점이지만 BMW 본사가 있고 무엇보다 IOC 부위원장이자 차기 IOC 회장으로 유력시 되는 토마스 바흐 등 세 명의 IOC 위원을 가지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IOC 자체가 유럽 중심이기도 하지만 동계올림픽은 특히 유럽의 입김이 막강해 뮌헨이 가장 강력한 후보지가 될 것이다.
몽블랑산 인근의 안시는 시설이 가장 뛰어나다는 강점이 있다. 안시의 경우 프랑스가 국력을 동원한 총공세를 펼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유럽 문화의 중심은 파리라는 사실을 공식화하기 위해 올림픽 개최를 추진했었다. 그러나 앙숙인 영국이 프랑스 잘 되는 '꼴'을 두고 볼 리 없었다. 런던을 맞상대로 내세워 블레어 총리까지 나선 끝에 2005년 IOC총회에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게 된다. 프랑스인들에겐 제2차 세계 대전 파리 함락 이후 최대 치욕이었다. 당시 외신들은 "블레어 영국 총리가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꺾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는 지금 칼을 갈고 복수할 상대를 찾아 나선 상태다.
'이명박 효과', 국제 무대에서 얼마나 될까
더욱이 국제 무대에서 사르코지 현 프랑스 대통령의 인기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못지않다. 특히 모델 출신의 아내 칼라 브루니의 인기까지 더해져 유럽에서는 록스타 같은 존재다.
2007년 준비가 완벽에 가까웠던 평창이 허허벌판과도 같던 러시아 소치에 뒤져 유치에 실패했을 때도 가장 큰 패인은 결국 '노무현'이 '푸틴'에게 졌다는 것이었다. 올림픽 유치 경쟁이 국력 경쟁에 더해 점차 국가원수들 간의 인기투표의 성격을 띠는 상황에서 사르코지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할지, 또 과연 '이명박 효과'가 국제사회에서, IOC 위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가 될 지 궁금하다.
하얼빈도 만만치 않다. 2010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했던 하얼빈은 5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 2009동계유니버시아드를 개최했다. 2008베이징올림픽 이후 딱 10년만에 동계올림픽을 또 개최할 수 있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미국의 경우(80동계, 84하계, 96하계, 02동계 대회 개최)와 캐나다의 경우(76하계, 88동계)를 생각해 보면 못할 것도 없다.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단번에 강력한 후보도시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덴버가 있는데 덴버의 경우는 현재 2016 하계올림픽 개최에 도전하는 시카고의 성공 가능성이 크기에 2016 개최지가 결정되는 10월 IOC총회까지는 기다려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 시카고가 실패할 경우 인근에 최고의 스키 리조트가 몰려 있는 덴버는 단숨에 강력한 도전자가 될 수도 있다. 덴버는 1976년 개최지로 선정된 적이 있는데 정작 주민들은 자신의 세금이 올림픽 준비에 쓰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버려 개최권을 반납해야 했던 뼈아프고도 황당한 역사가 있다.
사실 덴버의 경우는 세계적 겨울철 리조트가 되기 위해 꼭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올림픽 있고 사람 있나
올림픽 개최지가 된다는 것은 가시밭길이면서 바늘구멍이다. 평창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이를 확률로 표현하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물론 평창은 개최 유력 도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개최지 선정엔 은메달, 동메달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승자독식의 세계다.
그리고 올림픽 개최지는 결국 국력이 결정한다. 지난번 평창의 패인은 길게 이야기 할 것 없다. 바로 국력이었다. 노무현이 푸틴에게 진 것이고 정보 싸움에서도 국정원이 'KGB'에 진 것이다. 한국이 러시아에게 진 것이다. 안타깝지만 국제 무대에서 아직 대한민국은 위력적 존재가 아니다. 사실 외신을 봐도 남한이 주요 뉴스로 다루어지는 것은 대부분 북한 때문이다.
이제 강원도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최종 결정되는 2011년 7월 6일 IOC 총회까지 또 달려야 한다. 3선 임기를 마치며 '용꿈'을 꾸고 있다는 김진선 지사의 중앙정계 진출을 돕기 위해, 윤세영 도민회장이 투자금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땅투기꾼들의 함박웃음을 위해, 거주민보다는 외국인들이 대접받는 사실상의 '빚잔치' 올림픽을 위해 강원도민들은 허벌나게 뛰어야 한다.
공청회 한 번 없이 출발한 평창올림픽 도전은 이제 강원도민들의 미래를 담보로 12년을 끌게 됐다. 2007년의 실패 직후 한때 100%에 육박하던 강원도민들의 올림픽개최 지지율이 59.9%까지 떨어졌고 많은 시민단체들이 3수 반대에 나섰다던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다. 그리고 정말 만약 강원도가 개최에 성공해 멋지게 대회를 치르고 난 후 그들에겐 무엇이 남을지 궁금하다. 그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지 나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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