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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기륭 비정규직, 국회 농성으로 '교섭 재개' 합의

몸에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목소리도 갈라졌다. 순간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손발이 저려왔다. 곡기를 끊은 지 10일로 벌써 30일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 단식을 한 달째 이어가고 있었지만 회사는 두려울 만큼 조용할 뿐이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이 사회에서는…."

간신히 말을 이어나가던 오석순 씨는 "점점 더 무서워진다"고 했다. 10명이 시작한 단식이 6명으로 줄고 어느덧 30일이 됐지만 "누구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운 없는 몸을 이끌고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았다. (☞관련 기사 : 김소연 분회장 "여기가 마지막이다 싶다", 배영훈 기륭전자 대표이사 "한 사람 구하자고 다 죽일 수는 없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만나 "집권 여당이 무거운 책임을 지고 노동부 및 회사가 노조와 대화를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7시간의 지난한 면담과 협의 끝에 간신히 '11일 노사 교섭 재개' 합의를 얻어냈다.

"30일을 굶어도 안 되니…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나"
▲ ⓒ프레시안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 2명과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대표단이 국회를 찾은 것은 이날 오전 10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연합 김정대 신부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공동의장 정진우 목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사무처장 효진 스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등이 조합원과 함께했다.

천영세 대표 등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단식 중인 조합원 오석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이 폭염 속에 회사 정문 옆과 수위실 옥상 위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데도 대표이사는 매일 아침마다 아무렇지 않게 차를 타고 지나간다. 사회가 정말 이런 것인가 무서워진다. 한 조합원은 방송사 카메라를 붙잡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될까…. 뭔가 좀 더 하지 않으면 누구 한 사람이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1040명이 하루 동조 단식을 해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넣어도 꿈쩍 않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불법파견 판정이 나도 회사만 벌금을 내면 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한탄이었다. '자회사 고용 후 1년 후 정규직화'라는 노사의 잠정 합의가 내부 직원들의 반발로 뒤집어진 데 대한 기막힘이었다.

오석순 씨는 "누가 비정규직이 되고 싶어 됐냐"고 되물었다.

"주위에서는 단식 그만하고 다시 싸우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굶어도 회사가 해결할 생각을 안 하는데 단식마저 중단하면…. 단식을 끊어서 해결책이 있으면 그만두겠지만…."

'의원님'들의 파워, 그리고 그 '의원님'들의 무심함

민노당을 향해 "구체적인 행동으로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호소한 이들은 오전 11시 30분, 홍준표 원내대표실을 찾았다. 하지만 홍준표 원내대표는 자리에 없었다.

"파업 1000일, 단식 30일에도 회사는 요지부동이다. 순리대로 풀어서 될 일이 아니다"며 집권여당의 책임을 호소했다. 중재에 나선 것은 한국노총 출신인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김성태 의원의 중재로 배영훈 대표이사와 노동부 서울청장이 국회를 찾았다. 그리고 면담 끝에 간신히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합의 내용은 △11일 오전 11시 노동부 관악지청에서 노사 교섭 재개 △지난 5차 교섭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교섭 진행 △배영훈 대표이사는 기륭전자분회를 교섭 상대로 인정하고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 등의 3가지였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곡기마저 끊고 30일 동안 그토록 애타게 호소했던 일이 '의원님'들의 전화 몇 통으로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뤄진 것이다. '금배지'의 힘을 보여준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의원님'들이 그동안 얼마나 수많은 비정규직의 '절규'에 무심했던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일이기도 했다.

단식 30일만에 간신히 마주 앉게 될 노사가 교섭을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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