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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 여성비정규직 파업 1000일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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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 여성비정규직 파업 1000일에 부쳐

[기고] "불의에 침묵한 당신이 바로 마지막 희생자다"

기륭전자의 파업이 19일로 1000일을 맞았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 파견에 맞서 시작한 외로운 몸짓이 해를 넘기고 또 넘겨 햇수로 4년이 됐다. 그 사이 회사는 대표이사만 4번이나 바뀌었지만, 누구도 이들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 4명은 서울 시청 앞에 설치된 임시 철탑에서 고공 시위를 벌였다. 위태로운 이 시위로 기륭전자는 정말 오랜만에 회사와의 교섭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6일 모처럼 노사 대표가 마주 앉았지만 회사는 "국내에 생산라인이 없어 복직은 안 된다"는 말만 여전히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다음 주 다시 교섭을 열기로는 했지만, 1000일을 넘기진 않겠다던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의 끝은 아직 아득하기만 하다. 이 가운데 19일 저녁 기륭전자 앞에서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3대 종단이 '기도회'를 연다. 기도회를 준비하는 천주교 예수회의 김정대 신부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 왔다.

김 신부는 이 글에서 외로운 비정규직 싸움에 따뜻한 관심과 연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몸의 일부가 병들어 있다면 그 고통은 몸 전체에 전달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이 지난 11일 서울 시청 앞 임시철탑에서 고공시위를 벌였다. 파업 1000일을 앞둔 자신들의 지난 시간이 "서럽고 또 서러워서"였다. ⓒ프레시안

"독일의 나치 정권은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여 처형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관심도 갖지 않았다. 나치 정권은 얼마 후에 개신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톨릭이기 때문에 조용히 침묵했다. 그리고 난 후에 나치 정권은 가톨릭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주위에는 나를 위하여 외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글은 <민중의 외침>이라는 책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상황을 보고한 책이다.

1997년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는 외환 위기를 겪으며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하루 아침에 나라의 살림이 쪽박이 나 모든 것을 외국 자본에 내 주었다. 순진한 사람들은 나라 경제를 생각해서 "금 모으기"에 동참하며 소중한 패물까지 갖다 바쳤다. 그리고 외국 자본은 구조조정을 강조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요구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순진한 우리들은 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단순히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반대했다. 이렇게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다시 노동시장에 돌아 왔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은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자리 잡으며 그 숫자가 850만에 이른다. 이는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숫자이다. 이런 고용형태를 통해서 기업은 지출을 줄였고 이는 기업의 이익이 됐다.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월 평균 소득 120만 원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삶을 살아야 한다.

노동현장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며 차별을 당하고 있다. 이제는 노동현장에서 하나의 노동자 계급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계급이 존재한다.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생각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은 나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은 나 자신이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고, 가깝게는 가족 중 어떤 사람이 비정규직이 될 수 있기에 나만 정규직이면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자본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통해서 소리 소문도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며 많은 노동자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삶을 위협하고 있다면 언젠가 모든 노동자들의 목에 칼을 들이 댈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연대를 통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노동현장에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계급이 따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는 하나다. 우리 몸의 일부가 병들어 있다면 그 고통은 곧 몸 전체에 전달된다. 그 몸은 그 병을 치유할 때 비로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 병이 더욱 더 심해지면 우리의 몸은 치유할 능력마저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치유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더 있을 때 빨리 치유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 노동현장에서 많은 동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비참한 삶을 강요받고 있다. 노동자 모두가 아파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숫자가 임금 노동자의 3분의 2를 넘어서고 4분의 3을 넘어선다면 비정규직이라는 고통을 치유할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비정규직의 현실을 개선하는 노력에 연대를 해야 할 것이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오늘로 1000일 이라 한다. 1000일. 참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보여 주는 수치고, 또 인간의 희망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보여주는 숫자다. 이런 기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볼 수 없어 우리 성직자들도 합동 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3개 종단이 모여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비참이 더 이상 1001로 이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 이런 우리의 서원이 단지 기륭전자 노동자에 한정될 것인가. 85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차별을 더 이상 지속하지 말자는 간절한 발원이기도 하다. 이 차별을, 차별이 주는 인간의 존엄성의 박탈을 막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을 넘어 우리 모두가 하나 됐으면 좋겠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1,000일 투쟁이 죽비처럼 우리 모두의 정신을 확 들게 하여 연대와 사랑을 향한 소중한 각성과 기도의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
'기륭비정규여성노동자투쟁 1000일 맞이 비정규직 철폐 기원 범종교인 촛불 기도회'는 19일 저녁 7시 서울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 내의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다. 3개 종단이 함께 모여 하는 이 기도회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천주교 노동사목이 함께 주최한다.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의 파업 1000일을 맞아 그 밖에도 20일 오후 1시부터 사회 각계 인사 2000명의 선언과 1000일 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잇따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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