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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이 2007년 맞습니까?"

"비정규직에 대한 '테러', 도를 넘었다"

"도대체 이것이 2007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맞습니까?"

말하는 사람도 얘기를 듣는 사람도, 사진을 보여주던 사람도, 동영상을 지켜보던 사람도 모두가 같은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노조 가입 독려를 위한 선전전을 하려는 조합원들에게 회사 직원들로 구성된 소위 '구사대'가 들이닥쳐 현수막과 유인물을 뺏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집단적인 폭행을 당하는 일이 수차례나 벌어졌다(GM대우 부평공장 비정규직지회).

그뿐 아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용역 경비원들이 파업 중인 농성장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를 쇠사슬로 묶어 놓은 채 오도 가도 못하게 막고 '나가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코스콤비정규직지회), 하청업체 사장이 파업 현장에 나타나 노조 간부를 향해 의자를 집어던지고 50~60대의 여성 노동자의 머리채를 잡아 쥐고 흔들었다.(기아차 화성공장)

이것이 정말 87년 노동자대투쟁 20년을 맞은 오늘날의 모습인 것일까.

"각각의 단위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폭력행위도 상당히 심각하지만 이것들을 묶어 놓고 보니 단순히 회사 내 구성원들 간의 갈등 혹은 노사갈등에서 비롯된 폭력이 아닌 비정규노조 운동을 말살시키려는 조직적 움직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17일 오전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진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발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폭력이 아닌 "굉장히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된 폭력"이었으며 "민주노조 설립 이전과 같은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며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짓밟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이미 파편적으로 보도됐던 구사대, 용역 경비원, 경찰의 폭력에 대해 전국의 37개 인권단체가 발 벗고 나선 것은 이 같은 판단 때문이다. 이들은 이날 기아차 화성공장, GM대우 부평공장, 코스콤 비정규직지회에서 벌어진 각종 폭력 상황을 종합적으로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이 같은 '조직적 폭력'에 집중적으로 대응해 나갈 뜻을 밝혔다.

"이것이 도대체 어느 시대 일입니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과거 1960~1970년대 처음으로 '민주노조 운동'이 싹을 틔웠을 때나 보았을 법한 각종 사건에 대한 증언과 사진 및 동영상 제시가 이어졌다.

"8월 23일 기습파업이 시작되자 하청업체 주임, 과장, 사장과 원청인 기아차의 도장부 관리자들이 달려 왔다. 하청업체 사장은 파업을 선언하는 지회 간부를 향해 의자를 집어 던졌고 형광등이 깨지고 의자는 노조 간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8월 30일 구사대는 쇠파이프와 해머로 유리창을 깨며 파업 현장에 들이닥쳤다.

8월 31일 '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 있던 여성 조합원들은 한 시간 가까이 700여 명의 구사대에 둘러싸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여성인 조합원들에게 '집에 가서 밥이나 해라', '보아하니 늙은 년인데, 밖에 나가면 돈도 이만큼 못 받으면서 주는 대로 받지 왜 파업이냐'는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기아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조합원 노영태 씨

"9월 2일 비정규직지회 설립총회를 하고 3일부터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3일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노조 가입을 독려하기 위한 선전전을 공장 내 세 개의 식당에서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원하청 노무팀이 100여 명이나 몰려들어 현수막을 뺏고 준비했던 유인물도 통째로 빼앗아 갔다.

▲ GM대우 부평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가 지난 3일 점심 시간을 이용해 노조 설립을 알리는 선전전을 하려는 가운데 원하청 노무팀 관리들이 몰려 들어 이들의 현수막을 빼앗고 조합원들에게 달려들어 집단 구타를 하는 장면. ⓒ인권단체연석회의

유인물이 들어 있던 가방도 찢어졌고 조금이라도 저항을 할라치면 그 조합원은 집단 구타를 당했다.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던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같은 날 저녁 야간조 출근시간에 맞춘 출근 선전전에서도, 4일 점심시간에도 저녁 출근시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0일 점심시간에는 이 같은 상황을 사진기로 찍으려는 정규직 조합원이 노무팀에게 쫓겨 노조 사무실까지 도망쳤으나 결국 붙잡혀 폭행을 당했다." -GM대우 부평공장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이준삼 씨

"9월 14일 증권선물거래소 로비에서 파업 문화제를 하려던 중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이 입원했고 그 이후에도 수시로 벌어진 감금 및 폭력사태로 인해 현재 조합원의 40% 가량이 부상을 입은 상태다. 농성장에서 나가고 싶다는데도 못 나가게 하니 충돌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소수인 노동자들만 집중적인 폭행을 당한다." -코스콤비정규직노조 대외협력국장 김유식 씨


폭력 통한 공포 정치…기존 조합원은 탈퇴 협박·신규 가입도 막는 '꿩 먹고 알 먹고'
▲흰 상의에 검은 하의를 입은 용역경비원들이 비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일상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노조 활동에 소극적인 조합원에게는 노조 탈퇴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을 주고, 비조합원에게는 노조 가입을 가로 막는 공포의 정치가 된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놀라운 것은 이들에게 벌어진 폭력 가운데는 노동조합에게 보장되는 일상적인 노조 활동 중에 벌어진 일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GM대우 부평공장 비정규지회의 선전전에 가해진 폭력은 이를 잘 보여준다.

파업과 농성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들은 87년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조합 가입 독려라는 '평화로운' 활동을 극단적인 위협 속에 치러내고 있다.

구사대와 용역 경비원 및 원하청 노무팀의 이 같은 폭력이 "노조 말살 및 무력화 작전"이라고 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GM대우 부평공장 비정규직노조의 조합원 이준삼 씨는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과 지도부에 대한 폭행은 앞에 나서지 않는 조합원 및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조합원에게도 공포감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나도 조합원이 되면 혹은 노조 활동에 앞장서면 저런 꼴을 당할 수 있구나'라는 공포의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GM대우 부평공장에서는 경비실 및 각종 사무실에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의 이름과 사진이 드러난 '조직도'가 배포돼 있는 지경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박진 활동가는 "노조 간부들이 마치 범죄자라도 되는 듯이 현상수배 전단지와 같은 조직도를 뿌리는 것은 전근대적인 노무관리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공(公)권력은 어디에?
▲ 공권력의 편향적인 대응도 문제다. 코스콤비정규직노조의 김유식 씨는 "비정규직은 고함만 쳐도 집단적으로 연행되고 용역 경비원은 바로 코 앞에서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멀쩡한 것이 우리나라 공권력의 실태"라고 비판했다.ⓒ인권단체연석회의

일부 정규직노조 조합원까지 들어간 회사 직원들 및 회사가 고용한 용역 경비원만 문제는 아니다.

이들의 파업 및 농성장에 투입되는 경찰병력, 즉 '공권력'도 "이런 불법 및 폭력 사태를 방조하거나 묵인, 심지어 과잉진압 과정의 직접 폭력 등으로 사측을 일방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12일 코스콤비정규직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증권선물거래소를 찾았다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경찰에 의해 폭행을 당하고 14명이 연행됐던 사례는 이같은 경찰의 편향적인 대응을 잘 보여준다.

코스콤비정규직노조의 김유식 씨는 "비정규직은 고함만 쳐도 집단적으로 연행되고 용역 경비원은 바로 코 앞에서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멀쩡한 것이 우리나라 공권력의 실태"라고 비판했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앞선 두 차례의 점거와 연행에 이어 지난 16일 새벽 홈에버 면목점 점거 3시간 만에 전원 연행됐다.

겹겹이 쌓인 난관의 비정규직 노조

'민주노조 운동'이 20년을 맞았다는 오늘날에도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는 이처럼 기본적인 노동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김유식 씨는 "우리의 요구를 압축해 놓고 보니 38년 전 전태일 열사가 소리쳤던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준수'라는 기본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일상적인 폭력과 폭언, 정규직 노조와의 갈등 등의 겹겹이 쌓인 난관을 넘어야하는 것이 오늘날 비정규 노동자의 현실이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3곳의 노조는 모두 같은 사업장에서 일을 하지만 실제 근로계약은 여러 개의 하청업체로 나뉘어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 하청 노동자들이다. 이들에게 '노동조합 활동'이란 더 큰 어려움의 시작이다.

김유식 씨는 "다 분산돼 있는 우리가 모이는 것 자체가 1차적인 문제고 모인 뒤에는 정규직노조와의 문제도 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회사와 우리의 요구가 대립하는 3차 문제가 나온다"고 말했다.

인권단체 "오늘 이 끔찍한 폭력사태가 '마지막 겨울' 되도록…"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권단체들은 기아차 화성공장 정규직노조에게 상집간부의 폭력 가담과 관련해 관련자의 징계 등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GM대우 부평공장의 건과 관련해서는 법률단체 및 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이를 바탕으로 노동부에 특별 근로감독을 요구할 계획이다.

코스콤 비정규직지회에게 벌어진 폭력에 대해서는 여성 조합원들에 대한 성희롱 건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할 예정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유독 비정규 노동자에게만 유린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이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이라는 봄을 앞당기는 '마지막 겨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태일이 분신한 지 38년,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정규직노조의 무심함 속에 용역경비원, 구사대, 경찰과의 잦은 물리적 충돌을 다 버텨내더라도 "우리는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일관하는 원청을 상대로 한 '노동기본권 준수'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은 메아리일 뿐이다. 2007년을 살아가는 비정규 노동자의 인권은 과연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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