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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작전식' 에이즈 대책이 한물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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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군사작전식' 에이즈 대책이 한물 간 이유?

[에이즈, 이제 편견 깨자ㆍ2]"에이즈는 당뇨같은 만성질환"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3월 말까지 한국의 에이즈 감염인의 수는 4755명이다. 그리고 이 중 864명이 사망해 현재는 3891명의 감염인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
  
  매년 10% 이상 늘어나는 에이즈 감염인
  
  전지구적으로는 한국의 인구 규모와 맞먹는 4000만 명 정도의 감염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한국 감염인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통계는 공공기관을 통해 확인된 것만을 집계한 것이므로 실제 감염인의 수를 반영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HIV(에이즈 발병 바이러스) 감염의 특성 상 감염 후에도 무증상 기간이 10년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있는 감염인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문제의 크기라는 측면에서는 HIV 감염 문제가 한국의 국민 보건상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다르다. 일단 먼저 사망률이 매우 높다. 현재까지의 통계에 의한 누적사망률만 보더라도 18.2%에 달한다. 그리고 신규 감염인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전년대비 발견 증가율을 보면, 2001년 49.3%, 2002년 21.7%, 2003년 34.2%, 2004년 14.2%, 2005년 11.5%, 2006년 10.4%로 매년 10% 이상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감염인을 발견하는 방식이 변화해서 그럴 수도 있고, 실제로 감염인의 수가 해마다 증가해서 그럴 수도 있다. 감염인을 발견하는 방식의 변화로 인한 발견율 증가라면 이는 긍정적인 것이겠으나, 실제로 감염인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발견율의 증가가 감염인 수의 증가를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 근거는 우리 사회가 감염인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병은 사회가 만든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이들은 "그래, 한국 사회의 성 생활이 문란해지고, 동성애자도 많아지고, HIV 감염 가능성이 많은 이주노동자들도 많이 들어오고 하니까 그 위험이 높아진 거야"하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의 원인을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나 유전자 변형 등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면 질병을 퇴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런 1차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질병의 사회적 요인이다. 질병의 원인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어 질병을 창궐하게 하는 사회 구조 및 정책, 치료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그러한 치료 방법을 사용하기 힘들게 만드는 제도적 환경이 더 유력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잠시 보건학의 기초에 해당하는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중세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괴롭혀 온 페스트나 장티푸스 같은 감염성 질환이 극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던 이유는?' 페니실린의 발명? 아니다. 정답은 '음용수 소독이나 하수 처리 시설 등과 같은 위생 개념의 발달, 그리고 이런 위생 개념을 뒷받침하는 인프라를 설치한 정부 정책'이다.
  
  이는 주로 치료 중심 의학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실증 분석 결과이지만, 한편으로 질병의 사회적 요인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즈도 마찬가지이다. 에이즈라는 질병의 1차적 원인은 물론 HIV 감염이다. 하지만 에이즈 발병률 증가와 가장 높은 관련성을 보이는 요인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빈부 격차의 심화, 그로 인한 차별과 배제, 전사회적인 인권 불감증, 부적절한 보건정책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다.
  
  이런 요인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에이즈 발병률이 높았고, 이러한 요인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에이즈 발병률은 계속 높아져 왔다. 이미 통계와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날로 심각해져 가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 더욱 심화되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에이즈 없는 사회를 꿈꾸기는 어렵다. 여기에 한미FTA 타결 이후, 예상되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 및 약값 인상까지 고려하면 전망은 더욱 어두워진다.
  
  '군사작전식' 에이즈 대책, 효과 없다
  
  하지만 에이즈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이런 거시적 문제의 해결과 함께 미시적인 정책 차원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 대표적인 게 보건 당국의 에이즈 예방과 관리 정책이다.
  
  이런 문제가 조금 더 일찍 공론화된 외국의 경우, 에이즈의 관리 방식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초창기에는 주로 국가 기구에 의한 강제 검진, 환자 색출, 그리고 색출된 환자의 격리와 치료 등 흡사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질환 관리 방식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일뿐 아니라, 예방 효과도 낮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다른 전염성 질환과 달리 에이즈는 환자가 발견됨과 동시에 그 환자가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 직면하게 되는 질환이다. 사회에 환자임이 알려짐과 동시에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질환인 것이다.
  
  이런 경우, 강제 검진을 통한 환자 색출 방식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 이런 질환의 경우에는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많거나 자신이 질환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검사를 회피하게 되고,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나오더라도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여 치료받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최근 이런 이유를 들어 에이즈 관리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즉 에이즈 예방 정책은 강제 검사 폐지, 익명 검사 활성화, 검사 정보 유출 금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상태에서의 치료 기회 제공 등이 근간을 이루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에이즈 대책은 콜레라 아닌 당뇨병처럼
  
  더불어 에이즈라는 질병 자체에 대한 개념도 많이 변화했다. 이전에는 이 질환을 전염성 질환으로 분류하여 전염성 질환에 고유한 관리 방식을 적용했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전염성 질환과는 달리 에이즈는 바이러스 감염 후에 10년 이상 지난 후에 증상이 나타나고, 감염 이후 생존 기간도 20년 이상 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이를 만성 질환의 카테고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연히 병의 관리 방식도 만성 질환 관리 방식을 따라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즉 에이즈에 대한 예방과 관리 방식은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방식보다는 고혈압이나 당뇨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방식과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질병 예방 및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 역시 지난해 국정브리핑 기고(내용)를 통해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고, 단순 만성질환일 뿐"이라며 "꾸준한 투약으로 에이즈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과 달리 현행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인권 침해의 요소가 있을 뿐 아니라, 효과도 떨어진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 왔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2005년부터 제도 개선을 작업에 착수했고 그 결과 2006년 9월 법안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개정안은 그간의 비판을 많이 수용하여, 감염인에 대한 사용자의 차별금지규정 신설, 감염인 사망시 신고제도의 폐지, 감염인 명부의 작성·비치 및 보고 규정의 삭제, 이름 등을 알리지 아니하고 받을 수 있는 검진제도 신설, 치료권고제도 신설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분명 현행 법안에 비해 진일보한 것임에 틀림없다.
  
  감염인 프라이버시 보호가 가장 좋은 예방 대책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을 관통하고 있는, 질환에 대한 관리 당국의 인식 자체는 그리 바뀌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실제로 상당수의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아직도 HIV 감염인의 프라이버시 및 인권 보장과 국민의 건강 보호가 마치 대립하는 것인 양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료들에게 감염인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질병 예방보다 감염인의 인권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정부의 질병관리정책과 건강한 국민들의 건강보호에 만족할 수 있는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이번 개정안이 실명을 포함한 신고 체계를 그대로 유지시킨 것이라든지, 환자의 개인 정보 유출 행위와 그로 인한 차별 행위를 적극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조치가 부족한 것 등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현재까지 에이즈 예방과 관리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진 것은, 에이즈로 의심되거나 진단된 환자들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 받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검사와 치료에 임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개인 정보가 질병 진단과 동시에 국가 기관이나 직장에 통보되는 일이 없는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집단에 대한 강제 검진은 못 하게 해야 한다. 또 환자가 원하면 누구나 손쉽게 익명 검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감염인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에이즈 예방과 관리 대책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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