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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들의 성지, 기어이 밀어버려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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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들의 성지, 기어이 밀어버려야겠나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8> 음악 산업의 메카, 낙원상가

낙원상가의 또 다른 매력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악기 판매상이 밀집해 있다는 것이다. 가수 싸이의 성공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최근 문화 산업이야말로 우리나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먹거리로 인식하고 있다. 음악 산업은 문화 산업의 한 축이라 할 수 있고, 음악 산업의 하드웨어인 악기를 판매하는 낙원상가는 문화 산업 판매처로서 훌륭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음악 산업 하드웨어가 밀집한 장소에 소프트웨어마저 풍부하다면 이 지역은 문화 산업의 핵심지가 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의미를 평가 절하할 수 있겠으나, 사실 낙원상가는 국내 음악 산업의 중심지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악기 시장을 중심으로 많은 음악인(뮤지션)들이 낙원상가에 모여들었다. 1982년 야간 통행금지가 풀리면서 카바레와 나이트클럽 등 음악인들의 연주를 필요로 하는 공간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당연히 음악 연주자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다. 당시 악기 판매 중심지인 낙원상가에서는 연주자들에게 악기를 단기간에 가르치는 교육도 이루어졌는데, 선배 연주인들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고, 유명 뮤지션들이 직접 연주를 하는 공간도 있었다.

"또 하나의 문화가 사라진다. 1950년대 중반부터 종로 2,3가에 하나둘 생겨난 악기점들이 거대한 상가를 이루어 우리 음악 문화의 막강함을 세계에 과시했는데, (낙원상가가) 사라진다니 안타깝다." (가수 신중현 씨 인터뷰, <한국일보> 2009년 1월 30일)

오후 4~7시까지 500명에서 1000명 사이의 뮤지션들이 다양한 이유로 낙원상가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구인·구직 시장이 형성되었다. 음악인들에게 낙원상가는 성소와 같은 곳이었고,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1996년 가수 윤도현 씨 주연의 <정글 스토리>라는 영화는 성공을 꿈꾸는 로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무대로 낙원상가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음악인 구인·구직 시장으로서 낙원상가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심야 영업 금지 조치 및 가라오케와 노래방의 등장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나마 그 인근에 모였던,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은 1990년대 후반 홍대 클럽 문화가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그 무대를 낙원상가에서 홍대로 옮기기 시작하였고, 음악인들의 모임 장소로서 낙원상가의 역할은 종언을 고하게 된다.

만약 낙원상가가 음악인들이 모이는 장소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제공했다면, 주변에 음악인들이 연주할 공간들이 제공되었다면, 우리는 홍대의 성공을 오히려 낙원상가 주변에서 마주하였을지 모른다.

음악이나 문화 등과는 거리가 멀던 베를린은 도시의 문화 산업 지원 정책(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공간 지원)으로 말미암아 유럽 음악 아티스트들을 흡입하는 블랙홀로 변화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베를린에서 보여주는 변화와 똑같은 변화는 아닐지라도 낙원상가는 변혁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 음악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낙원상가는 여전히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 산업 하드웨어 취급지이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지원책이 존재한다면, 베를린의 성공을 우리는 낙원상가 주변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원책은 낙원상가 철거 후 재개발과 같은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원책은 건물 철거와 같은 하드웨어 위주의 것이 아니라, 음악인들에게 실질적 혜택(공간 사용에 대한 지원)이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적인 것이어야 한다.

더군다나 음악 산업은 창조 산업으로 분류된다. 음악을 만들고 판매하는 영역에 해당하는 다양한 개인들과 회사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은 물론 음악 산업 관련 기획자, 악기를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들까지 매우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다. 과거 뮤지션의 활동 무대였던 곳, 그리고 음악 산업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장소로서 낙원상가는 창조 산업인 음악 산업의 본거지였고, 어떤 기능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시 본거지가 될 수 있다. 창조 산업 육성이 진정으로 중요하다면 낙원상가 철거와 같은 주장은 그만두자.

특히 낙원상가의 진화를 이해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과거 낙원상가라는 오프라인에서 일어났던 사업들이 이제는 온라인에서도 활성화되고 있다. 낙원악기상가 웹사이트에서는 중고 매물 거래가 매우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구인·구직에 대한 입질도 많다. 낙원상가는 인터넷 시대에도 적응할 만한 비즈니스 역량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낙원상가의 악기 상가라는 오프라인 시장이 위축된 것도 아니다. 과거 2~3층에 밀집했던 음악 관련 상점들이 이제는 전 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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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만든 그는 왜 잊혔나
<5>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6> 박정희 시대 요정 정치 산실, 꼭 헐어야 했나
<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딍' 탄생사

'낙원삘딍' 철거가 해법인가?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원상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의 대안은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그동안 서울에서 많이 자행되어 왔던 방식으로 낙원빌딩을 철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낙원빌딩의 가능성을 무시한 매우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접근이다.

둘째는 기존 낙원상가 건물을 남겨둔 채, 그 내부를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용도의 건물로 전환하는 것일지 모른다. 낙원빌딩을 대학생들 기숙사나 호텔 등으로 기능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예일 것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낙원아파트를 바라보는 시각을 알게 될 때에는, 이 역시 생각조차 되어서는 안 될 위험한 방안이다.

"교동초등학교 주변 지역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는 낙원아파트와 운현아파트예요. 특히 낙원아파트는 방음도 잘되고, 층간 소음도 별로 없고. 잘 지어진 아파트에요." (낙원상가 지하 재래시장 상인 인터뷰, 2013년 4월 30일)

엄연히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선호하는 아파트를 단순히 외양이 억압적이다 또는 남산 조망을 가린다, 외부인인 본인이 걷기에 1층이 너무 컴컴하다는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특히 남산 조망권을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는데, 이 주장이 타당하다면 낙원아파트(15층 건물) 바로 옆 24층 프레이저스위츠 호텔은 어떻게 해야 하나.

▲ 북쪽에서 바라본 15층 낙원상가와 24층 프레이저스위츠 호텔. ⓒ홍보영

낙원상가와 아파트는 건축적 리터치(retouch)를 통해서도 위압적이고 어두운 느낌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아래의 인테리어 사진은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 내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낙원아파트 내부 인테리어를 새롭게 했을 뿐이다. 내부를 업그레이드하듯, 기존 커뮤니티를 해체하지 않고 건물을 충분히 활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킬 수 있다.

ⓒAnLStudio

예를 들어 낙원아파트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환상적인데, 상가 꼭대기층 위 테라스를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 4층 낙원상가 영화관 앞 테라스는 야외 음악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민이 동의한다는 전제 아래, 5층 테라스 역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만약 수영장이나 스케이트장 등으로 사용된다면, 대도시 한복판에서 아름다운 산과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양식의 건축물을 함께 바라보며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겠나.

ⓒ김경민

많은 사람이 싱가포르에서 최근 지어진 마리나 베이 샌즈에 찬사를 보낸다. 지하에 위치한 카지노와 쇼핑몰 등 다양한 기능들을 한곳에 위치시켜 IR(복합 리조트, Integrated Resort)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 개발 전략은 2008년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많은 관광객을 싱가포르에 모이게 한 원인이 되었다. 또한 고난도의 건축 기술이 발현되었다는 점과 57층 꼭대기에 위치한 수영장과 그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정경은 이곳을 방문한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김경민

싱가포르가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는 이유는 어쩌면 워낙 보여줄 관광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 남아 있던 과거 전통적인 양식의 건축물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졌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전통 중국식 건물은 몇 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싱가포르는 실질적인 역사가 200년에도 못 미치는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도시 국가에 불과하다. 이 도시 국가는 인접한 말레이시아처럼 대단한 자연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한국과 중국의 고궁과 같은 역사 자원 또한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역사, 문화, 자연 자원 어느 것 하나 풍족하지 못한 도시들의 선택은 차별화를 위해 세계에서 보기 드문 메가스트럭처를 건설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싱가포르가 현대식 건물을 새로 지었기에 우리도 그것을 따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서울의 문화, 역사, 자연 자원은 싱가포르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풍부하기에, 이미 기존의 자원들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기능을 넣어서 경쟁력을 높이면 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진암을 부수고 비싼 외양으로 둘러싸인 현대식 호텔을 건설하였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가 있는 낙원상가의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부수지 않고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제공하는 독특한 특징을 낙원상가에서도 줄 수 있다면 과연 철거가 해답인가.

미래의 낙원상가는 경복궁-북촌-인사동-익선동166-종묘-창덕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매개체요 앵커가 될 수 있다. 특히 인사동에서 익선동166번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낙원상가를 또 다른 색안경으로 바라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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