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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통역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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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통역이 없을까?

[한윤수의 '오랑캐꽃']<112>

출석요구서를 받고 근로감독관에게 전화하면 그분들이 으레 하는 얘기가 있다.
"통역 데려올 거죠?"
물론 우리 센터는 외국인노동자 혼자 보내지 않고 통역을 데려가거나, 직원이 가서 직접 통역해준다.

하지만 답답하다. 지금 한국의 현실이, 노동부에 출석할 때 외국인노동자 혼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 정작 노동부에는 통역이 없을까?
내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외국인노동자가 50만이 넘는 시대에*노동부에 통역이 없다는 사실이다.
민간단체에는 통역을 데려오라고 하면서 왜 노동부에서는 통역을 준비하지 않을까? 예산이 없어서? 아니면 T/O가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준비성이 없어서?

노동부에 가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 중 하나가 감독관과 외국인 노동자가 소통이 안 되어서 서로가 답답해하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센터의 G실장이 스리랑카 노동자의 체불 사건으로 노동부에 갔다. G실장은 유능한 영어통역이기도 해서 영어를 쓰는 노동자와 한국말을 쓰는 사장님의 이견을 좁히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따라서 사건은 쉽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옆 자리에서는 K감독관이 까다로운 필리핀 노동자를 만나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K감독관이 G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돈 몇 만 원 때문에 얘가 매일 와서 괴롭히는데 미치겠어요."
감독관과 노동자는 소통이 거의 안 되는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서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결국 G실장이 나섰다. 필리핀 노동자에게는 눈물이 쑥 빠지게 야단을 치는 대신에 앞으로 그의 모든 고충은 우리 센터에서 해결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로써 말끔하게 교통정리가 되었다. 감독관은 까다로운 외국인한테서 해방되고 노동자는 든든한 보호자를 만났으니까.

그 후부터 감독관들이 G실장에게 이지가지로 부탁하기 시작한 것이다.
"통역 좀 해주실 수 있죠?" "이왕 도와주시는 거 수요일마다 오셔서 통역해주시면 안될까요?"
G실장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글쎄 저보고 매주 하루 통역 봉사를 해달라네요."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니까.

물론 외국어 잘하는 당사자야 능력자로 인정받아 자랑스럽겠지만, 작은 민간단체를 꾸려가는 내 입장에선 그 말을 듣고 속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근로감독관만 몇 십 명이나 되는 정부기관이, 직원 3사람 밖에 없는 민간단체에 통역봉사를 해달라니 심하지 않은가? 우린 일할 사람이 없어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인데.
글쎄, 노동부 나름대로 통역을 못 쓰는, 말 못할 무슨 기막힌 사정이 있지 싶다. 하지만 사정이 있더라도 극복 못할 사정은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그쪽보다 사정이 열악한 일선경찰서에서도 통역을 불러 쓰고 하루 통역비로 10만원씩을 지급하지 않는가!
경찰서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통역을 정규 직원으로 채용 않더라도 여러 가지 고용방법이 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우리 센터의 S주임은 베트남에 10년 살다 온 사람으로 베트남어를 잘해서 통역을 겸하고 있다. 기막힌 것은 이 S주임이 베트남어 통역하는 것을 보고 옆 감독관이
"저도 태국어 통역 좀 해주실래요?"
하고 부탁한 것이다.
감독관들이 얼마나 통역 맛을 못 보았으면 베트남어를 태국어로 혼동할까!

좌우지간 감독관들 통역이 없어서 무지하게 고생한다.
높은 사람들이 해결해주기 바란다.

*외국인노동자가 50만명이 넘는 시대 : 법무부의 <2007년 외국인정책 통계>에 의하면, 총 거주 외국인 106만 명 중 근로자는 50만 2천 명이다.

*노동부에 통역이 없다 : 같은 노동부 소속이지만 고용지원센터에는 (간혹) 통역이 있다. 그러나 정작 노동부 본청, 특히 노동자와 사업주의 이해다툼을 정밀하게 조사해야 하는 근로감독과에 통역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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