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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전화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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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전화 걸기

[한윤수의 '오랑캐꽃']<107>

외국인 노동자들이 취직하기 위해서는 일단 알선장에 나온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에겐 이 전화 거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한국말을 모르니까.
그래서 한국 사람이 대신 전화를 걸어주는 게 꼭 필요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좀처럼 없으니 어이할꼬? 내가 여러 번 *호소했지만 교회고 사찰이고 별 반응이 없다.

수원 고용지원센터를 나오다가 필리핀 노동자 로랜드를 만났다. 그는 우리 센터의 창립기념일에 촛불 춤을 춘 무용수로 내가 무척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가 무척 반가워하며 물었다.
"목사님, 차 있어요?"
"응."
"발안 가요?"
"응. 발안 가."
"나 타고 가도 되요?"
"응."
"친구 한 명 데려와도 되요?"
"응. 데려와."

▲ 춤추는 로랜드(왼쪽) ⓒ한윤수

하지만 그가 정작 데려온 것은 세 명이었다. 차가 꽉 찼다. 이들은 전부 구직 중인 노동자로 고용지원센터에서 알선장을 받아가지고 막 나오는 길이었다. 내가 물었다.
"한국사람 누가 전화 거는 거 도와줘요?"
"아뇨. 안 도와줘요. 우리가 전화해요."
"한국말 못해도 할 수 있어요?"
"예. 한국말 100프로는 못하지만 80프로는 하니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호, 80프로면 대단한 걸! 하지만 웬 걸? 그들의 한국말 실력은 20프로로 보면 맞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로랜드가
"양남면이 어디에요?"
하고 물었기 때문이다. 화성시에 양남면이라곤 없기에
"어디 좀 봐."
하며 알선장을 들여다보니 <양감면>을 양남면으로 읽고 있다. 그들은 또 <향남면>도 양남면으로 읽고 있었다.

이런 형편없는 한국어 실력으로 어떻게 회사와 통화하나 살펴보았더니 의외로 서두는 근사하게 풀어나갔다.
"사람 뽑아요?"
좋다!
"일자리 있어요?"
좋고!
뒷좌석을 힐끗 보니 그들은 저마다, 필리핀 사람들이 잘 갖고 다니는 분홍 파일케이스 위에 알선장을 착 펼쳐놓고서, 볼펜으로 체크해가며 핸폰으로 회사측과 통화하는 중이다.
"필리핀요."
하는 것은 어느 나라 출신이냐를 묻는 회사측 질문에 대한 답이고,
"네 명 괜찮아요?."
하는 것은 네 친구 모두 같은 직장에 취직하기 원하는 노동자측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한국말이 짧기에 더 이상 대화는 깊이 들어가지 못하였다. 더구나 회사측 반응이 시원치 않아서 수원역을 지날 때쯤에는 전화 걸기가 시들해졌다. 다만 한 군데 서신면에 있는 공장에서 필리핀 사람 하나를 뽑겠다는 긍정적 답이 왔다. 누군가가 물었다.
"목사님, 서신이 어디에요?"
"마도 옆에, 바닷가."
"그럼 (발안에서) 남양으로 가면 되요?"
"응, (발안에서) 남양으로 가도 돼. 하지만 수원역에서 버스 타는 게 더 빠른데. 여기서 내릴래?"
"아니요. 발안까지 갈래요. 발안 가서 버스 탈래요."

필리핀 사람들은 발안 성당을 중심으로 생활해서 그런지, 좀 멀더라도 발안에서 출발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보기엔 불합리한 행동이지만 그들에겐 그게 더 친숙하고 좋은 걸 어떡하겠는가!
통화가 별 소득없이 끝나자 그들은 따갈로그 어로 떠들기 시작했다. 오늘도 취직하긴 틀렸구나! 따갈따갈.
발안까지 차를 몰면서 따갈로그 어는 따갈따갈 들려서 따갈로그 어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호소 : 전국의 고용지원센터 근처에 있는 교회나 사찰에서 외국인을 대신하여 전화를 걸어줄 것을 이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호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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