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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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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춤

[한윤수의 '오랑캐꽃']<92>

우리 센터는 1년 내내 아무 행사도 갖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행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창립기념일에는 정기 총회를 갖고 총회 끄트머리에 외국인들이 간단한 공연을 해준다. 그날은 서울, 청주, 괴산, 전주, 심지어 부산에서까지도 회원들과 후원자들이 찾아오는데 외국인센터로서 달리 대접할 게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하는 공연은 춤이 제일 좋다. 노래는 외국어를 알아야 이해하지만 춤은 외국어를 몰라도 얼마든지 통하기 때문이다. 몸동작(바디 랭귀지)은 만국 공통의 언어가 아닌가!

작년 총회 때는 베트남 여성들이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농무(農舞)를 추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춤춘 사람들이 우리 센터에 신세를 진 노동자가 아니라 대학생들이어서 *교통비를 요구한 것이다. 8명에게 일인당 3만원씩 24만원을 주었지만 돈으로 춤을 산 것 같아서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올 총회 때는 태국 사람 넷이 춤을 추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도 전통의상 빌리는 값 1만원씩에 교통비 3만원씩을 요구했다. 4명 중엔 우리 *통역 2명이 끼어 있었는데도! 나는 그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돈도 없지만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한국 사람들이 한국 춤을 추기로 했다. 화성시 봉담읍의 아마추어 무용단이 기꺼이 무료 봉사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좋아할 터였다. 화성 지역에선 좀처럼 한국 춤 볼 기회가 없으니까. 그러나 한국인들은 무슨 재미로 그걸 보나? 불가불 외국 춤이 있기는 꼭 있어야 할 터였다.

▲ ⓒ한윤수

이즈음 U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이클한테 부탁해볼까요?"
마이클은 그녀가 부천 노동부까지 출장 가서 도와준 필리핀인으로, 이곳 화성지역 필리핀 모임의 회장이었다. 그는 U실장 때문에 못 받을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3년 근무를 마치고 필리핀에 갔다 올 때도 따갈로그-영어 사전을 선물로 사오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클도 난색을 표했다.
"일요일은 얼마든지 가능한데요. 토요일이라 춤꾼들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토요일은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요. 하여간 친구들한테 얘기해 볼게요."
마이클의 걱정과는 달리 가장 춤을 잘 추는 진짜 춤꾼 여섯 명이 다 모였다. 남자 셋에 여자 셋. 그 중에서 세 사람은 우리 센터에서 도와준 적이 있는 낯익은 노동자였다.

총회 당일 외국인들은 한국 춤에 열광해서 *카메라 플래쉬를 펑펑 터트렸지만,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최고의 인기는 역시 필리핀 사람들의 촛불 춤이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조그만 컵 안에 촛불을 들고 춤을 출 때 키 큰 남자들이 발로 스텝을 맞추며 여성 주위를 돈다.
특히 한국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보았다. 객석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스페인 춤하고 비슷해!"
물론 필리핀은 111 년 전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므로 춤이나 의상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고 이건 어디까지나 필리핀 사람들의 필리핀 춤이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노동자들의 우렁찬 합창이 있었지만 그건 베트남 사람들만이 좋아하는 프로였을 뿐이다.

공연이 끝나고 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 나는 마이클을 비롯한 필리핀 사람들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했다.
"너무 고마웠어요."
춤도 잘 추었지만 아무 대가 없이 공연해준 그 마음이 더 고마웠기 때문이다.
진짜 우정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니까!

*교통비 : 행사 때마다 불려다니는 직업적 춤꾼이나 아예 행사 자체를 기획하여 외국인 관련기관에 거액을 요구하는 행사꾼들에 비하면, 베트남 학생들이 달라고 한 교통비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며, 사실 양심적인 수준이다.

*통역 : 통역 중에 하나는 자신의 교통비는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카메라 : 외국인 노동자들 대부분이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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