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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교 청년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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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교 청년의 좌절

[한윤수의 '오랑캐꽃']<79>

동남아시아의 화교(華僑)가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화교는 한국에 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물게 그들 중에서 몇은 한국에 온다. 왜? 돈이 목적이라기보다는 한국이란 미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서다.

타와차이는 싱가폴에 거주하는 태국인이다. 아버지의 국적은 싱가폴, 어머니의 국적은 태국이지만 혈통은 중국계 즉 화교다. 그는 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의 국적을 따랐다. 부모는 싱가폴에서 태국음식 전문점을 경영하는데, 그는 장남이므로 가업을 이으라는 가문의 압력을 받고 있다. 하여간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영향을 벗어나 독립하기를 원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싱가폴 폴리텍 대학에서 컴퓨터 디자인을 전공하던 중, 2학년을 마칠 때쯤 태국에 놀러 갔다가 한국에서 일할 노동자를 뽑는다는 태국 정부의 공고를 본 것이다.

태국에서 한국에 오는 데는 두 가지 루트가 있다. 하나는 브로커를 통해서 오는 루트. 이건 시험도 볼 필요가 없다. 그저 돈만 주면 된다. 그러나 최하 20만 바트(8백만원)가 든다. 집 팔고 논 팔아야 된다. 원래는 이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탁신이 집권할 때 개혁이 이루어져 또 하나의 길이 생겼다.

그 길이 태국 정부가 시행하는 한국어 시험에 합격하는 것. 합격만 하면 왔다다! 응시료, 신체검사비, 교육비, 항공료까지 다 포함해서 2만 바트(80만원) 밖에 안 드니까. 거저 먹기지! 탁신이 욕도 많이 먹지만 이런 개혁 하나는 잘 해놓았다.

타와차이는 두 번째 길 즉 <한국어 듣기와 쓰기> 시험에 합격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에 왔다. 돈이 안 들었으니 마음이 무거울 리 없지! 그는 뭐든 한국을 배우고 벤치마킹한다는 기분으로 일했다. 한국은 새로운 세계이고 기회였다. 그는 꽤 규모가 큰 특수포장회사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는 일을 맡았는데, 사장 이하 전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 아, 저게 한국식 경영이고 단결이라는 거구나!

▲ ⓒ한윤수
그는 화성센터의 한글학교에도 참석하고 한글학교에서 경복궁이나 서울랜드로 놀러갈 때도 적극 참여했다. 돈도 잘 썼다. 집에 돈을 부칠 필요가 없으니까. 그는 영어에 능통해서 태국인의 대변자 역할을 곧잘 했다. 그렇게 만사가 순조롭고 즐거웠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답지 않은 사건이 생기는 바람에 일생의 계획이 헝클어졌다.

공장에 소음이 심하여 그는 이어폰을 끼고 지게차를 운전하는 중이었다. 무슨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한국인 과장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이어폰 하나를 빼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알아듣겠는데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어서
"뭐라구요?"
하자 과장의 주먹이 날아왔다. 한 대, 두 대, 석 대.
억울했지만 대항하지 않고 회사를 빠져나와 우리 센터로 왔다.

진단서를 떼어보니 2주 진단이 나왔다. 병명은 1. 기타 머리 부분의 얕은 손상 2. 턱의 염좌 및 긴장 3. 상세불명 복부의 타박상

그 자신이 과장을 처벌하는 것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는 맞은 사람치고는 차분하게 얘기했다.
"사람이 나빠서 때린 건 아닐 거예요."
내가 반문했다.
"그럼 왜 때렸다고 생각해요?"
"이성적이 아니고 감정적이라 그런 거지요."
그는 나이에 비해 성숙한 자세와 아량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에 강력히 항의했다.
"고소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사장님은 대신 사과하고 과장을 문책하겠다며 선처를 부탁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1. 사장님은 그날 저녁 벌로 과장에게 잔업을 시켰고 2. 거기에 더하여 과장은 자발적으로 일요일에 처자식을 데리고 나와서 공장 전체를 청소했다.
또한 과장은 타와차이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겉으로는! 그러나 뒤로는 끝까지 자기가 잘못한 게 없으며 진짜 잘못한 것은 타와차이라고 떠벌이고 다녔다.
"내가 여러 번 불렀는데도 대답을 안 하잖아! 그러니 이게(주먹이) 나갈 수밖에."
이 소리를 전해 듣고 기가 막힌 타와차이가 과장에게 가서 따졌다.
"만일 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당신은 나를 때릴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타와차이에게 직장을 옮겨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맞으면 무조건 돌아가는 태국인답게 모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더구나 싱가폴의 부모님 집은 장남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불난 집처럼 들끓었다. 엄마는 원래 "너 한국 가면 석달도 못 견뎌."하고 예언했었다. 그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러게 왜 한국에 가? 당장 돌아와. 알았니?"
하고 귀국을 재촉한 것이다.
타와차이가 짐짓
"엄마, 나 지금은 가고 싶지 않은데요."
하자 엄마는
"니가 안 오면 내가 데리러 가랴?"
하고 반문했다.

사실 타와차이는 삼촌이 사는 캐나다로 갈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우선 당장은 아니고 이젠 쉬고 싶을 따름이다. 그는 부모님이 있는 싱가폴로는 가지 않을 작정이다.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니까. 태국으로 일단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싱가폴로 갈지 캐나다로 갈 지 결정할 생각이다.

나는 회사에 얘기해서 임금과 퇴직금을 정산해주고 방콕행 비행기표를 예매해주었다.
그는 어제 한국을 떠났다.
내가 마지막 한 말은 "미안해요."였고 그가 마지막 한 말은 "미안하실 필요 없어요. 그런 사람은 어디 가나 있으니까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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