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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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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한윤수의 '오랑캐꽃']

몸집이 아주 작은 태국 여성이 찾아왔다. 꼭 초등학교 5학년생만하다. 열여덟살 때인 5년 전에 한국에 왔다는데 그 동안 키가 전혀 크지 않았단다. 140센치나 될까?

이름이 차나타인데 별명은 빼다. 빼는 태국 말로 요람이다. 갓난아기 때 너무 자주 울었다는데 엄마가 요람에 태우고 흔들어주면 울지 않아서 별명이 빼(요람)가 되었다.

▲ ⓒ프레시안
빼에게 최대의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입국할 때 그녀는 이모와 함께 왔다. 하지만 2년 전 이모가 단속에 걸려 추방되는 바람에 혼자가 되었다.

그 날은 2007년 10월 13일이었다. 출입국 단속반이 공장에 들이닥쳐 공장 문을 막은 것은. 이모를 포함하여 모두가 불법체류자인 태국 여성 15명이 하나하나 잡혀 차에 태워지는 동안 빼는 조그만 종이 박스 뒤에 숨어 떨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나고 출입국 차는 떠나갔다. 공장 안에는 그녀만 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워낙 몸이 작아서 단속반의 눈에 띄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외로웠다. 동료들이 잡혀간 뒤 매일 밤 그 큰 공장에서 혼자 지냈으니까. 그녀는 밤마다 수원에 있는 태국인 여전도사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무서워요. 나 태국 가고 싶어요."

전도사는 그녀를 다독거렸다.
"일할 수 있을 때 하고 가. 언제 또 오겠어? 그리고 일요일날 꼭 교회 와요."
그녀는 부모가 헤어진 상태인데다가 소녀가장으로서 동생 셋을 가르치고 있어서 마음 놓고 집에 갈 형편이 못되었다.

그녀는 일요일날만 기다렸다. 교회에 가면 태국 사람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거기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남자 친구는 이모의 역할을 대신했다. 덕분에 그녀는 교회에 가야만 위로를 받았다.

2008년 10월쯤부터 공장에 일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2009년 3월 초 드디어 사장님이
"빼, 이제 그만둬야겠어."
라고 말을 꺼냈다.
빼는 사장님 말대로 그만두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월급에 퇴직금도 다 포함해서 주었다고 주장하면서.
억울하게 생각한 빼는 그래서 처음 발안센터에 온 것이다.

퇴직금을 계산하려면 급여명세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급여명세서가 있냐고 묻자, 빼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다 버렸어요."
기운이 빠졌다.
"왜 버려요? 급여명세서가 있어야 그 회사에서 일한 게 증명이 되는데. 급여명세서는 돈이나 마찬가지에요. 알아요?"
"예."
"그럼 *통장은 있어요?"
"없어요."
"그럼 그 회사에서 일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지 않아요?"
"예."
너무나 한심했다.
"혹시 증언해줄 사람은 있어요?"
"없어요."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다면 나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 회사에서는 그런 사람 근무한 적 없다고 잡아뗄 텐데, 무슨 수로 5년간 근무한 것을 입증해 보이나?
"그럼 우리도 못 도와줘요!"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그만 등을 구부리고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안되어 보여서 그날 저녁 내내 구부러진 등 생각이 났다.

다음날 다시 그녀를 불렀다. 전도사가 그녀를 또 데리고 왔다. 전도사가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전도사는 그녀의 수호천사였다.
그날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자료를 한 장도 내놓지 않았으니까. 하기야 나도 자료가 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결과가 어찌되든 일단 진정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친한 척 그녀 옆에 한참을 뜸을 들이고 앉아 있다가, 내 딴에는 최대한 곰살궂게
"좋아요. 여기 싸인하세요."
하고 말했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빼가 부시럭거리며 핸드백에서 급여명세서 넉 장을 꺼낸 것이다.
"아니, 왜 이렇게 급여명세서가 있는데 없다고 했어요?"
그녀는 희미하게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전도사가 대신 답변했다.
"태국 사람은 이해해주셔야 해요. 대부분 겁에 질려 있거든요."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녀는 너무 외롭게 지내다 보니 방어적이 되었고 방어만 하다 보니 주위 사람 모두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두렵다 보니 마음이 얼어붙었고 마음이 얼어붙다 보니 종이 한 장 꺼낼 엄두를 못 내게 된 것이다.
어쨌든 2006년 4월분 명세서와 2008년 11월 명세서가 있으니 최소한 2년 7개월은 근무한 게 틀림없고 그 기간만큼의 퇴직금은 받게 생겼다.

"이거 있으면 돈 받아."
내가 이렇게 북돋아주자 그녀는 비로소 얼었던 마음이 녹는지, 그렇게나 없다고 내놓지 않던 예금통장과 송금 영수증 수십 장을 꾸역꾸역 내놓기 시작했다. 나는 흥분했다. 월급을 받았으니 송금했을 거 아닌가. 송금영수증은 그녀가 그 회사에 근무했다는 간접 증거였다. 더구나 2004년 12월에 발행한 영수증까지 있으니 *최소 4년의 퇴직금을 받을 가능성이 생겼다.

노동부 출석날. 나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사장님이 나와도 얼지 말아요. 우리가 옆에 있으니까. 사실대로만 말하면 되요. 알았죠?"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선 사장님이 안 나오고 차장이 대신 나왔다. 그래도 그녀는 사뭇 떨었지만, 감독관의 질문에는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정확히 대답했다.

감독관 앞에서 우리 직원과 회사 차장 사이에 *양보와 타협이 이루어졌다. 빼가 다쳐서 일을 하지 않은 기간과 도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 기간 등을 모두 제외하고 퇴직금을 계산하니 305만 원 정도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그 금액을 40일 안에 두 번에 걸쳐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그녀는 태국으로 떠났다. 우리 센터에 모든 뒷마무리를 맡긴 채. 얼음공주는 늦어도 2개월 안에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통장이 왜 근무기록이 될까? : 임금을 예금통장으로 지급하면 통장에 기록이 남아 있게 되므로 그 회사에 근무한 증거가 된다.

*최소 4년의 퇴직금? : 만일 2004년 12월부터 계속 근무했다면 최소 4년의 퇴직금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근무기간 중 두 번 이탈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한 달 동안 나가서 다른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고 다른 한 번은 단속에 걸려 높은 담을 넘어 도망치다 다리를 다쳐서 한 동안 일을 못한 적이 있었다. 그런 기간을 제외하니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근무기간은 3년 정도밖에 안되었다.

*양보와 타협 : 회사 대표로 나온 젊은 차장은 합리적이고 샤프한 사람이어서 어렵지 않게 양보와 타협이 이루어졌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합리적이고 샤프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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